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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후 Oct 17. 2021

부모를 부모가 아닌, 한 '사람'으로.

약간 미안한 관계.

 어떤 정신과 의사가 한 환자를 상담하면서 부모의 이야기가 나왔다. 환자가 은연중에 엄마를 이렇게 칭하면서 말했다. "그 사람,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렇지만 간섭이나 관심도 이제 별로 신경 안 써요. 그 사람도 내 부모이기 전에 한 여자이고 한 사람이니까."



 그때 정신과 의사는 말했다. 언제부터 부모를 그 사람으로 불렀냐고. 환자는 잘 모른다고 했다. 당신이 부모를 부모가 아닌 '한 사람'으로 처음 불렀을 때, 그때가 당신이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한 첫날이라고.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자신의 희생이 자식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그 '희생'이 결국 자식과 부모의 원수지간을 만든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라고 하면서.



 아직도 자식이 부모의 소유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말로는 자식이 잘 되길 바라면서 무의식 중에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길 바란다. 평생을 자신의 생각대로, 덕지덕지 붙은 욕심과 집착으로 키운다. "내가 어떻게 낳은 자식인데!"



 이 정신과 이야기를 들으며 난 깜짝 놀랐다. 난 어느 순간부터 부모를 부모로 보지 않고 '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나 보다. "당신들도 당신들의 인생이 있으니, 서로 각자의 삶을 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부모에게 의지할 마음이 전혀 없어졌고, 그렇게 돈만 버는 삶이 잘 사는 삶이라고 평생 살아온 부모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성숙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부모가 크게 필요가 없어졌다. 떨어져 지내면서 한 가지 바라는 것은 건강하고 잘 사는 것뿐. 그것도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다. 어차피 세상은 내 뜻대로 안 되니까. 그때부터 외적인 돈이나 물질 중심의 관계 유지가 아니라 진짜 부모와 내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건강한 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 서로에게 대하는 기대가 적어질수록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부모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마저 집착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낳았는데, 내 꺼인데 라는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생각, 집착. 평생을 그 집 착안에서 자식들과 자신을 얽매이며 산다. 


 


"스스로의 능력을 정확히 재단해서 해드릴 수 있는 것과 해드릴 수 없는 것을 통보하기를. 그분들도 성인이다. 당신들이 부모처럼 부모를 돌보는 순간 약한 그분들은 아기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잊지 말기를. 약간 미안한 관계가 가장 좋은 관계라는 것을."         

                                                                                         공지영, 책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에서.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함께 기뻐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한다. 한 세계에 태어난 인간으로서 우리는 각각 한 인간으로 존재할 뿐이다. 태어난 것도 만난 것도 운명일 뿐. 태어난 인간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유, 그 사람이 하고 싶고 되고 싶은 삶을 사는 것, 자기 다울 수 있는 삶. 그것을 위해 살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조금 일찍 깨달았다. 즉, 이것들을 존중해주는 관계, 응원해주는 관계가 진정한 사랑의 관계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한 사람으로 온전히 존재한다. 개개인마다 자유와 자기 삶을 살 권리가 있다. 그것은 오직 자신만의 것이다. 그게 부모든 친구관계든 연인관계든 마찬가지. 진정 정신적으로 독립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아닐까. 부모도 자식도 아니,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기 안에 깊숙이 박힌, 자신을 얽매이는 그 한 오라기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을 힘들고 불행하게 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무엇이 진정 중요한 것인 지 스스로가 매번 돌아봐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삶이 다 했을 때, 자신의 삶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기억하자. 우린 이 세상에 잠시 왔다 잠시 가는 존재 일 뿐. 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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