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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후 Aug 31. 2021

'더 많이, 더 많이!'

내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물건이 나를 소유한다.

최근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졌다. 미니멀 라이프란 '적게 가지고 절제하는 삶'인데 처음엔 와닿지 않았다. 항상 '더 많이'를 외쳤던 나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더 많이' 가져야 '잘 사는 삶'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아니, 모든 사회가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많은 부를 향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전혀 반대였다. 그들은 필요 없는 물건을 소유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욕망을 절제하며 꼭 필요한 곳에만 소비하고 있었다. 옷이나 양말 이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가전제품, 가구, 잡동사니 등 저렇게 살아도 되려나? 싶을 정도로 줄이고 줄인다. 대부분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사람들의 거실엔 TV 하나밖에 없고 TV도 없는 분들도 많다. 텅 빈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의 집을 둘러봤다. 우리 집은 5평 원룸인데 내가 누우면 거의 다 찰 만큼 좁다. 왠지 모를 답답함과 좁은 공간에 숨이 막혀오던 찰나에 나도 미니멀 라이프로 살아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물건을 정리하려는데 엄두가 안 났다.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버려" , "이건 필요한 물건이야" , "이건 추억이 담긴 물건이야" 등 갖가지 변명을 대고 보니 버릴 수 있는 물건이 많이 없었다. 고작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나 책 몇 권이었고 그중 정말 안 쓰는 카메라나 악기는 중고나라에 팔았다. 마지막까지 정리를 해봤지만 다른 미니멀 라이프 삶을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나 물건이 많았다. 필요한 물건, 추억, 욕망 등 여러 가지 나의 자기 합리화와 욕심 때문에 물건들을 쉽게 놓지 못했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책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법정 스님의 책을 보게 되었다. '홀로 사는 즐거움'이었는데 무심코 그 책을 펼치게 되었는데 그 한 파트의 구절들이 나를 바꿔놓았다. 내 불필요한 욕망과 소유에 대한 욕심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스님의 아는 지인분에 대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한 어머니는 가로, 세로 각각 1미터 80 센터 미터 되는 한 평의 공간에서 요즘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아들이 공부하러 떠나고 난 뒤 그가 거쳐하던 방을 이리저리 정리하고 보니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틈새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평소에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맨 먼저 기도실을 만들어 불화를 걸고 향로와 촛대를 올려놓고 화병에 꽃을 꽂아 아침마다 그 앞에서 기도를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남의 이목에 신경 쓸 것 없이 기도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정의 변화를 염불이나 독경 소리에 담아 삭여버린다. 두 번째는 화실. 컴퓨터 프린터가 있는 책상의 한쪽을 이용해서 화판을 올려놓는다. 그 위에 스케치북과 화구를 놓아두니 열 평의 화실이 부럽지 않은 공간이 된다. 그 어머니는 아들이 남겨준 한 평의 공간에서 이렇게 조촐한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작고 비좁은 곳에서도 살 줄 아는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법정 스님 - 홀로 사는 즐거움. p31)



 


 5평 정도 되는 원룸도 작다고 불평불만이었던 나다. 한 공간 안에 책상, 악기, 냉장고, 세탁기, 옷장, 에어컨 실외기, 책 등 꽉꽉 채워져 있어 내 몸 하나 누우면 거의 자리가 없다. 항상 좁은 공간이 불편해 돈 많이 벌면 넓은 공간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건들을 치워 공간을 넓힐 생각은 아예 안 하고 더 넓은 공간에 더 많은 물건들을 채울 생각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1평짜리의 공간에도 행복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내 공간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기도를 하고, 작고 비좁은 곳에서도 살 줄 아는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이 '더 많이'를 추구하는 내 삶을 반성하게 되고 돌아보게 만들었다. 공간이 문제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욕망하는 '나'의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지 않아서 오는 불행보다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느 티베트 노인의 말을 들려주셨다.




북인도의 오지인 라다크 지방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한 티베트 노인은 현대인들이 불행한 이유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말한다. "아마도 당신들은 당신들이 갖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이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겨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을 것이다. 당신들이 불행한 것은 가진 재산이 당신들에게 주는 것보다도 빼앗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데 가슴이 아팠다. '더 많이' 가질수록 우리는 불행하다. 너무나 많은 물건과 재산이 우리의 기운과 시간을 뺏는다는 말이 맞았다. 불필요한 물건들에 얽매이게 되고 비싼 물건을 들고 다니면서 항상 고장 나고 흠 날까 노심초사하며 살고 있었다. 물건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내면에서는 '이 물건을 지켜야겠다'하며 무의식적으로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흔히 명품백이 나를 소유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나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나를 속박하고 얽매이게 하는 모든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릴 수 있었다. 비싼 것은 기존의 값 보다 훨씬 싸게 팔아버리고, 과감하게 내가 못 놓았던 악기, 전자제품, 옷들도 싹 버렸다. 물건에 대한 나의 애착, 집착을 내려놓는 순간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었다.





옷 20가지, 노트북 하나, 신발 4개, 주방식기, 악기 하나, 세면 용품 등 내가 가진 것들의 전부다. 좀 더 버리고 싶다. 버리는 중독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속이 시원하고 자유로워졌다.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사람들이 왜 '자유롭다'라고 한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소유한 물건이 없을수록 얽매임도 없어진다. 내면의 집착과 애착, 소유 욕망이 사라지자 잡생각이나 번뇌도 싹 사라졌다.





 절약과 소비를 통제하려면 자신의 철학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나 하나로도 충분하다'라는 생각이다. 물건이 나를 치켜세워주고 잘나게 보이게 만들어 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 하나로 충분하다, 나는 당당하다'라는 마인드로 살면 물건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허름한 옷, 남들이 우월하게 보지 않는 가방, 신발을 착용하고도 당당할 수 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 재화들은 잠시 일 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남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자기 살기에도 바쁘다. 이것은 진리다. 아무튼 오히려 그것들을 소유하고 구매하기 위해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노동에 에너지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책 한 권 읽고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삶을 바라왔던  것은 아닐까. "적게 가질수록 부자며 많이 가질수록 가난하다"라고 말한 법정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 어떤 것에도 집착과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는 뜻인 듯하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것도 부족하다며 '더 많이'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스님, 아니 가까운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사람들만 봐도 내가 가진 것이 너무도 많다고 느낀다. 현대인들은 너무나 많은 편의시설 속에서, 너무나 많은 음식을 섭취하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고 행복할 줄도 모른다. 당연한 줄만 알며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며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질환과 자살률은 너무나도 높다는 것이다.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실행이긴 했지만, 비우고 나니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탁 트인 넓은 공간이 집을 들어올 때마다 반겨주고 있다.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하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적게 소유할수록 자유로울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다가온다. 




"만족할 줄 알면 부자요, 만족하지 못하면 가난한 자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물건과 재산을 소유하고 있나? 그것들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너무나도 많이 불필요한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지 소유됨을 당하고 있는지, 어찌 보면 그런 물건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속박하고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자. 나의 불필요한 집착과 욕망을 줄이는 일이 첫 번째다. 이 욕망들은 어려운 사람들, 주위에 힘든 사람들을 향해 돌려보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 싶다. 나부터 행동해야 하겠지만..



"결국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 이 육신마저도 버리고 훨훨 날아갈 것이다."  



법정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나는 또 필요 없는 물건이 어딨나하며 찾는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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