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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 Apr 24. 2024

상심한 상담사는 한강으로 갑니다.

작은 사람의 오리지널리티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미루고 미루던 길거리 상담소를 위해 퇴근길 한강으로 향했다.


우리 상담소는 지하에 있어서 비가 온다는 친구의 연락을 보고 '아이고 오늘도 가는 날이 장날인가?' 했는데 퇴근즈음 비가 그쳤다. 이마저도 못갔다면 참 많이 속상했을텐데 다행이었다. 사실 오늘 꽤나 속상한 일이 있었다. 상담을 위해 크몽, 네이버 등 여러 플랫폼에서 활동중에 있는데 우연히 꽤나 잘 나가고 있는듯 보이는 전문가의 서비스 소개 페이지에 낯이 익은 글을 발견했다. 그 글은 내가 우리 상담소의 상담소개 및 설명을 위해 쓴, 지금도 해당 플랫폼과 우리 상담소 홈페이지에서 핵심 가치관을 소개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글이었다.


너무 놀랐고,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미 우리 상담소보다 큰 입지를 다져두고 있는 전문가라는 것에도, 글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에도, 무엇보다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하는듯한 장황한 소개와 함께 다른 사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져다 쓰고 있는 모습이 그랬다. 잠시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사실 마음같아서는 급발진을 당기고 싶었지만) 조심스레 메세지를 보냈다.


"저희 상담소에서 작성한 글과 동일한 내용인데 직접 작성하신게 맞을까요?"


나는 몰입을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롯이 집중하여 상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상담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답장이 왔을까?' '뭐라고 왔을까?' '어떻게 해야할까?' 따위의 생각들이 떠오르곤 해서 내담자분께 혼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애를 먹었다.


일정이 모두 끝나고 지난주에 배송 받은 작은 입간판을 챙겼다. 입간판을 넣고 다닐 에코백도 함께 구매했는데 아주 딱 맞아서 넣을 때마다 고생스럽다. 그래서인지 잘 넣으면 기분이 또 좋다. 밤이 늦긴 했지만 오늘도 미루고 싶진 않았다. 사실 놀라고 당황한 스스로에 숨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마침 비 내린 직후, 미세먼지 보통의 녹색 공기였으니 더욱.


상담소를 종종 찾으시는 내담자분 중에 변호사님이 계셔서 조심스레 문의를 드렸었는데 마침 연락을 주셨다. (정말 흔쾌히 도와주셔서 그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사례들과 대처, 대응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그 덕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내면의 방황을 멈출 수 있었다. 몇몇 주변에도 이 일을 나눴는데 역시 그 덕에 당장의 속풀이를 할 수 있어서 참 고마웠다.


한강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비가 왔었기 때문인지 한산한 한강공원에는 그만큼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대강 벤치가 있고 어둡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챙겨온 입간판을 세웠다. 

예전에 한 친구에게 '길거리로 나가서 고민을 들어줄거야', 라고 하니 '용기가 필요하겠다' 라고 신기하듯 말해주었다. 아니다. 되려 이렇게 작은 내게 와서 이야기를 내어줄 그 사람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요즘(어쩌면 항상)은 믿을 사람 하나 없어보이는 세상인데 모르는 누군가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꺼내준다는건 참 쉽지 않을 일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면서 눈 앞에 야경을 살폈다. 사람들 소리가 들리면 괜히 귀를 쫑끗하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 티 안나게 노력했다. 그러고보니 오랜만이다. 그저 가만히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상담소에 있으면 대체로 약속을 잡고 내담자를 기다린다. 상담소 안에 있는 조명들을 켜고, 무드에 맞는 음악을 틀고, 차를 준비한다. 그런 일들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일이 퍽 어색하고 낯설었다. 그 자리에 내가 앉았다. 별 얘긴 하지 않았지만 그저 내 마음과 함께 있어준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괜히 오늘을, 그리고 앞으로의 길거리 상담소에서의 사소한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소제목을 참 그럴듯하게도 써놓고는 그냥 일기를 쓰게 된 것 같다. 그래도 이 생각을 짧게나마 남겨두자면 사실 과장 꽤 많이 보태서 '아! 종종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의 상품을 가로챈다고 하던데 이런 기분일까?' '아! 작품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표절을 당할 때 이런 기분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엄마는 아이고 나쁜 새X 라고 욕해주시면서도 '니가 참 탐나게도 만들긴 했나보다' 라며 너스레를 떨어주셨다. 음~ 맞긴해!


'텍스트는 따라할 있어도, 본질은 따라할 수 없다.'


사실 지금도 자꾸 가슴이 답답하고 싸~한 기분이 든다. 예전에 스스로에게 말하듯 써놓은 당당하고 자신감 있던 문장은 여전히 내게 있지만.. 그렇다. 오리지널리티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유명해지면 나을까? 돈이 많아 유명 법무법인을 쓸 수 있다면 괜찮을까?


거참, 작은 사람의 오리지널리티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아, 아직 답장은 없다. 안읽음은 사라졌지만 그뿐이다.

아, 근데 괜찮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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