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E Trip to Paris 2
수학여행으로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UNESCO와 OECD에 다녀왔다. 오슬로 대학교에서는 희망하는 각 학생들에게 2000 크로네씩 (한화 27만 원 정도) 지원까지 해준다. 물론 나머지 경비는 개인부담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꽤 많은 돈이 지원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나는 외국인에게 무료로 석사과정을 지원해주는 오슬로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꽤나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한국과 비교를 하며 아주 과분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이렇게 적지 않은 돈을 지원받으며 오게 된 수학여행의 기회는 과분함을 너머 이해가 되지 않는다랄까. 공짜로 뭔가를 받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인지 수학여행을 하는 내내 ‘왜 나는 여기에 왔을까. 무엇을 배워가야 할까.’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에 내가 대단한 공헌까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약간의 부담이나마 느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인 건지.
파리에 온 첫째 날과, 둘째 날은 특별히 공식 일정이 없어서 (정확히 말하자면 일정 하나가 취소가 되어서) 각자 자유 시간을 즐겼다. 나는 3년 전, 파리의 중요한 관광지들은 대부분 다 돌아봤기 때문에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여행 중 가보지 못했던 국립 도서관과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정도는 다녀오기로 했다. 책, 나는 책을 정말 좋아하니까.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책일지라도. 그 여정에 헬렌, 이난, 스테프가 가끔 함께 하기도 했다. 가끔 비가 내렸지만, 오슬로보다 더 따사로운 햇살을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도.
여행자와 세미나에 참여하는 학생 사이 마음가짐의 간극은 제법 컸다. 여행자였다면 지나가는 시간들을 아쉬워하며 새로운 모든 것 가운데 하나라도 더 보려고 발걸음을 재촉했을 텐데, 중요한 시험을 앞둔 마음 무거운, 그리고 배움을 목적으로 두고 온 학생으로서 나는 세미나 참석 이외의 시간들을 조용한 곳에서 머릿속을 정리하며 공부나 하자는 마음가짐이었다. 다행히 나는 그런 시간들을 꽤 즐기는 편이었다.
셋째 날이 되어 유네스코 하위 기관 중 하나인 IIEP (International Institute for Educational Planning)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45분까지의 긴 시간을 보냈다. 오전부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지, 어떤 연구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상세히 안내를 받았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유엔 산하기관인 유네스코는 국제사회가 당면한 주요 이슈 연구 및 대응 전략 수립 (Laboratory of ldeas), 주요 국제 이슈에 대한 규범 마련 (Standard-Setter), 지식 정보의 수집과 보급 (Clearing House), 회원국들의 역량 강화 (Capacity-Builder), 국제 협력을 위한 촉매제 역할 수행 (Catalyst for cooperation)의 역할을 한다. 유네스코 7개 산하 기관 중 하나인 IIEP는 국제 교육 이해당사자들의 네트워크로서 포괄성 및 형평성과 양질을 추구하며 모두를 위한 평생학습을 증진하기 위한 것을 공통 비전으로 삼고 있다.
세미나 후 우리에게 사전에 요청한 것을 바탕으로 각자의 논문 주제와 관련된 책을 골라주었다. 자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복사를 요청할 수도 있었다. 나의 경우 사전 요청한 대로 교사 교육과 다문화에 관한 책을 건네받았지만, 딱히 내 연구에 요긴하게 쓰일만한 자료는 아니어서 몇 권 더 훑고는 말았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수많은 자료들에 접근하는 경로도 안내받았는데 이 점이 꽤 유용했다. 세계 어디에 있던 이러한 방대한 자료를 인터넷으로 무료로 접근할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굳이 멀리 유학을 안 오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영어로 된 양질의 논문을 인터넷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니 말이다. (혹시라도 세계 교육에 관한 자료가 필요하다면 프랑스 본사 IIEP 홈페이지에 가서 자료검색만 하면 접근할 수 있다.)
마지막 날, OECD에서는 PISA 테스트에 관한 세미나를 듣게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온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세미나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강의를 맡은 제프리라는 중국계(인 것 같은) 청년이 OECD의 PISA 테스트 분석을 맡고 있는 연구원이라고 소개한 후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세미나는 PISA 테스트에 대하여, 그리고 어떤 나라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한국에서 권재원 선생님의 책을 읽고 온 터라 나는 PISA 테스트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었고, 그 외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다만 그의 프레젠테이션 실력에 감탄할 뿐. 매끄러운 영어와 청중들에게 가끔씩 던지는 질문들과 흥미로운 발문들이 2시간이라는 시간을 몰입할 수 있게 했다. 한국에서 청년들도 세미나에 참가해보거나 혹은 인턴과정을 통해 견문을 넓히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말고도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도 왔는데, 정말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학생들로 구성되어있다. 그중 외국인 학생들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학생들의 국적이 중국인, 인도인이었고 한국인은 나와 유리 샘 둘 뿐이었다.
피사 결과는 의도와는 다르게 순위를 내는 것 때문에 각 나라의 자존심이 걸려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 곳, 이렇게 여러 나라 학생들이 앉아있는 세미나 장소에서도 그와 다를 바 없는 미묘한 공기가 흘렀다. 그러나 OECD가 전 세계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듯 피사 또한 확대해석까지 할 필요는 없다. 랭킹이 전부를 설명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경우 학업의 낮은 효율성과 낮은 행복도를 고려해야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의 교육은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형평성이 보장되고 있는 편이다. 이와 달리, 상당수 나라들은 여전히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아 그 결과로 일반화 자체가 어렵다. (PISA 시험은 기본적으로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나라들의 포괄성, 형평성, 양질이 보장된 교육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여행 중에 끊임없이 던진 물음 ‘왜 우리는 여기에 왔을까. 무엇을 배워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결론을 어떻게 해서라든 내려야 할 것 같아 다음과 같이 마무리 짓고자 한다.
우리 학과는 CIE 즉 Comparative and International Education 비교 및 국제 교육 학과이다. 우리 학과의 특성상 전 세계의 교육 정책과 실태를 비교하는 것을 주로 하는 학과이다 보니 좀 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물론 나의 경우는 한국의 공립 초등학교 교사로서 유학을 온 경우이기에 연구 주제가 우리 한국과 타국을 비교 함으로써 한국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이미 스스로 한정하고 있는 중이지만. 개인적으로 유네스코와 OECD로 온 수학여행은 내게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첫째, 실제 현장에 대한 견문 넓히기. 책과 강의로만 본 국제기구를 직접 방문하는 경험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을 좀 더 현실로서 인지하게 해준다. 국제기구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각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과정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진로에 대한 시야. 몇몇 학생들은 과정을 마치고 인턴으로 경험을 해 보고 싶어 할 수 있겠다. 세미나 말미에 강사가 인턴에 지원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여기에 온 학생들 뿐 아니라, 한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 이 곳에서 경험을 쌓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야를 넓혀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연구원 제프리를 보고 나니, 나 또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영어가 아직도 서투른 데다 프레젠테이션에 어려움이 있는데,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셋째, 친구들. 처음 학과 친구들과 나흘을 같은 숙소에서 보냈다. 저녁에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우리 숙소에 동아시아 3국에서 온 친구들이 모여있었는데, 정치와 역사에 관한 매우 민감한 주제에 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한국의 전 대통령 탄핵 및 구속에 관한 생각 차이가 흥미로웠다. 미국이나 노르웨이 친구들의 경우 우리가 느끼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가 잘 실현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반면, 중국 친구의 경우는 그보다는 부패한 전직 대통령들이 당선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듯하다. 각 나라의 언론이 그들에게 어떤 방향을 비추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다. 또한 우리와 감정적 문제가 풀리지 않은 옆 나라에서 온 친구는 다른 나라와 견주었을 때도 유독 북한을 굉장히 혐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에 대한 정보의 차이도 꽤 커서 유감스럽기도 했다. 이 또한 지금 수난을 겪고 있는 그들의 정치 지도자와 왜곡된 교육 때문이겠지. 감정을 배제하여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니 옳든 그르든 그들의 솔직한 생각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