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큐슈의 모지코에서 배 타고 5분이면 혼슈의 시모노세키입니다.
어제저녁에 모지코(門司港)는 충분히 돌아봤다. 별로 큰 동네가 아니라 그 정도면 됐다. 오늘은 시모노세키(下関)로 건너갈 예정이다. 반나절 정도면 시모노세키의 남쪽 항구 주변은 돌아볼 수 있겠지. 그런 다음은 신칸센을 타고 히로시마(広島)로 넘어가야 한다.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하는 날이구나.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천천히 걸어서 모지항 옆에 있는 간몬연락선 매표소로. 배를 타고 5분이면 시모노세키로 건너갈 수 있다. 아, 오후에는 시모노세키에서 기차를 타고 히로시마로 갈 계획이라 돌아오는 배표는 사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넘어오긴 해야 했는데... 어쨌든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어린아이들이 소풍을 나왔나 보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분위기로 간몬해협을 건넌다. 창밖을 보니 무지개다. 아이들도 신기해서 모두 창밖을 보고 있다. 갑자기 맑아진 날씨 덕분에 햇살이 강렬했다. 연락선이 바다를 헤치며 퍼뜨리는 물보라에 햇살이 퍼지면서 생긴 무지개. 아이들의 번잡함과 시끄러움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는데, 무지개 덕분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변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유쾌함이 배 안에 가득했고,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선생님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서 귀여운 초보의 순수함이 느껴졌고, 능숙하게 아이들을 정리하는 선생님의 중후한 몸집이 믿음직스러웠다.
날씨가 좋아서였을까? 배에서 내린 다음 바로 걷기 시작했다. 모지코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에 내리면 아루카 포토(あるかぽーと)에 내리게 된다. 간몬연락선 매표소가 있고, 카이코칸(海響館)이라는 수족관이 있고, 하이! 카랏토요코초(はい!からっと横丁)라는 놀이공원이 있는 바닷가 구역을 아루카 포토라고 부르는 듯. '포토'는 port의 일본식 발음이니까, 결국 아루카 항구라는 뜻이다.
짙푸른 바다와 구름 없이 파란 하늘에 딱 시원할 정도로 불어오는 바람과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데워주는 햇볕. 배에서 내린 다음 코인 락커에 짐을 넣어놨기 때문에 어깨도 가벼워서 산책하기에 딱 좋은 상황.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작은 놀이공원이 나타난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이 공원의 이름은 하이! 카랏토요코초(はい!からっと横丁)인 듯. 일본식 줄임말로는 하이카랏! 정도 되나 보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어서 독특한 분위기. 담장이 낮아서 굳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지 않아도 크게 밖으로 돌면서 분위기는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관람차! 채도 높은 무지개색으로 칠해진 관람차는 보자마자 '어떻게 찍어야 잘 찍었다고 소문이 날까!!'하는 고민이 시작될 정도로 사진빨 잘 받게 생겼다. 그래서 다양한 각도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느라 공원을 한 바퀴 크게 돌 수밖에 없기도 했다.
날이 좋아서 산책에 맛이 들었다. 구글맵을 열어서 어딘가 걸어갈 만한 곳이 없을까? 찾아보니... 히노아먀(火の山)라는 산이 가까운 곳에 있는데, 로프웨이가 있는 걸 발견했다. 그렇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올라가, 높은 곳에서 간몬교과 간몬해협을 바라볼 수 있겠네? 좋았어!
목적지를 히노야마로 정하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어차피 지나가는 방향이라 가라토 시장(唐戸市場)을 관통하기로 했다. 역시 복어로 유명한 시모노세키, 가라토 시장이다 보니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복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포장해서 판매하는 집도 많이 보인다. 그 외에도 다양한 수산물을 볼 수 있었는데, 고래의 다양한 부위를 판매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아랫줄 가운데 사진).
가라토 시장에서 나와 큰길을 따라 걸으려고 하니 바로 길 건너에 빨간 신사가 하나 보인다. 가까이 가서 이름을 확인하니 아카마 신궁(赤間神宮). 이름에 빨간색이 있어서 그런지 신사 전체가 채도 높은 빨간색이다. 마침 하늘이 너무 파래서 유난히 눈에 띄었던 곳.
큰길을 따라 걸으니 간몬교 아래를 지나게 된다. 길 건너에 도리이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사진만 한 장 찍어두고 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에보시 바위(烏帽子岩)라는 것이 있었던 자리. 구글 스트리트뷰로 살펴보니 바다 위에 작은 바위가 하나 놓여 있고, 도리이를 지나면 작은 사당이 하나 있다.
한참을 걷다 보니 히노야마 입구에 도착. 분명히 케이블카가 운행 중이라는 표지판을 봤다(사진을 찍어두지 못했네 ㅠㅜ). 그래서 꼬불꼬불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기분 좋은 산책은 슬슬 땀이 나는 등산 내지는 트래킹으로 변하고 있었다. 해가 높아지면서 햇살도 뜨거워졌고, 걸은 거리도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히노야마 로프웨이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지만, 경사가 꽤 급했고 계단을 많이 올라야 했다. 드디어 겨드랑이와 목덜미 아래쪽에는 땀이 흥건하게 차오르기 시작했을 즈음... 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했는데, 오늘 정기휴일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보니 지금 운행 중이라는 표지판도 보인다. 뭐냐! 뭐냔 말이다! ㅠㅜ
결국 케이블카는 타지 못했다. 날씨 좋은 날 높은 산에 올라 간몬해협을 바라보는 경치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아 마신 다음 올라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왔다.
굳이 구글맵이나 타베로그로 식당을 찾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카몬와프(カモンワーフ)에 가면 식당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1층과 2층을 빙 둘러보면서 복어 정식을 먹을만한 곳을 찾다가 이로도리야(彩や)라는 가게에 들어갔다. 사진을 보고 복어회가 있는 정식을 주문했다. 나중에 카몬와프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이 메뉴의 이름은 이로도리 후쿠 즈쿠히 고젠(彩りふくづくし御膳)이라는 이름이었나보다. 굳이 어설프게 해석하자면 잘 갖춘 복어 모둠 진지.
복어회를 1인분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좋지만, 복어 육수로 만든 밥, 복어 튀김, 복어 이리 튀김, 복어 껍질 무침, 복어 지리. 정말 복어로 가득한 한 상을 받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좀 더 저렴한 정식을 먹었던 것 같은데, 구성은 이번이 훨씬 좋다.
코인락커에서 짐을 찾아 택시를 타고 시모노세키역(下関駅)으로 이동. 신칸센을 타고 히로시마로 가겠다고 했더니 일단 고쿠라역으로 가서 신칸센을 타야 한다고;;; 응? 시모노세키에서 신칸센을 탈 수 없다고? 뭔가 이상한데??? ... 나중에 다시 찾아보니... 신칸센을 타려면 신시모노세키역(新下関駅)으로 가야 했다. 어차피 택시를 탔으니 목적지를 그쪽으로 했다면 굳이 간몬해협을 다시 건너지 않아도 됐을 테지만, 거리가 꽤 되는 곳이라 택시비가 기차 요금보다 비쌌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