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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May 06. 2020

31. 일본삼경, 세계문화유산. 미야지마

사진으로만 보던 곳에 드디어 도착했다.

시모노세키 → 고쿠라 → 히로시마로 기차를 갈아타고 이동


시모노세키(下関)에서 바로 신칸센을 탈 수 있을 줄 알았으나 기차역을 잘못 찾아가는 바람에 다시 고쿠라(小倉)로 이동해서 신칸센을 타야 했다. 하루에 간몬해협을 세 번 건넌 거다. 배 타고 올라가면서 한 번, 일반 기차 타고 내려가면서 한 번, 신칸센 타고 올라가면서 한 번. 고쿠라에서 히로시마(広島)까지 신칸센으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히로시마역에서 미야지마구치역까지 일반기차로


히로시마역(広島駅)에 내리니 외국인 - 그러니까 동양인이 아닌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커다란 백팩을 매고 있거나 트렁크를 끌고 있는 사람들. 미야지마(宮島)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알려진 곳일 뿐만 아니라 일본삼경(日本三景)이라고 해서 일본에서 가장 멋진 풍경 세 군데 중에도 꼽힌 유명 관광지. 그러다 보니 외국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던 거다. 그러고 보니 야쿠시마(屋久島)도 세계자연유산으로 알려진 곳이었고 외국인이 많은 곳이었다.


그저 밀려가는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가면 됐다. 길을 헷갈릴 이유도 없고, 길을 잃을 가능성 자체가 없었다. 인파에 밀려 미야지마구치(宮島口)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30분 정도 기차(라고 하지만 지하철 같은 느낌)로 이동하는 동안 주위는 온통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영어였다.


배를 타고 10분이면 미야지마에 도착한다.


미야지마구치(宮島口駅)역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방향을 찾기 위해서 구글맵을 켜야 하나?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역시나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이동할 수 있었다. 굳이 내가 지도를 볼 필요가 없는 상황. 모두가 일행은 아니지만, 목적지는 같다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잠깐 걸어가니 미야지마로 건너가는 페리의 표를 사는 곳이 나온다. 여기서 좀 헷갈릴 수 있는 게, 선박 회사가 여러 개다. 그리고 터미널이 하나가 아니라 회사마다 각각의 승강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표를 산 다음 돌아다니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면 헷갈릴 일이 없지만, 자칫 배 시간 남았다고 돌아다니면 '어라? 내가 배 타야 하는 곳이 어디지?'하고 헷갈릴 수도 있을 듯.


각각의 회사에서 배가 출발하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가장 빨리 출발하는 배의 표를 샀다. 미야지마 마츠다이 키센 페리(宮島松大汽船フェリ)라는 회사.


미야지마의 첫인상


10분 정도 배를 타고 이동해 미야지마 선착장에 내렸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살짝 넘어가는 해와 커다란 백팩을 둘러맨 외국인 가족 그리고 새끼 사슴이 보였다. 아, 드디어 온 건가. 일본삼경(日本三景) 중의 하나라는 미야지마에. 참고로 일본삼경 중 나머지 두 곳은 교토의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 미야기의 마쓰시마(松島)라고 한다. 미야기는 가본 적이 없지만, 교토는 엄청 다녔는데 아마노하시다테에 가 볼 생각은 못 했네... 라고 생각하고 위치를 보니, 교토부에 있긴 하지만 교토와는 엄청 먼 곳이네... 어쨌든 나는 드디어 미야지마에 도착했다.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간단하게 설명을 들었다. 카니와(鹿庭荘)는 게스트하우스였지만 새로 지은 건지 아주 깔끔한 곳이었고, 주인장은 세련된 느낌의 젊은이였다. 나중에 여행이 끝난 다음 집으로 돌아와서 '일본 게스트하우스 100'이라는 책을 봤는데, 여기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거리는 온통 사슴 천지. 나라(奈良)의 사슴보다 덜 무섭고 좀 더 쾌활하달까?


해가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숙소에 짐만 풀어두고 바로 미야지마 신사(宮島神社)를 보기 위해 나왔다. 아, 미야지마(宮島)는 일종의 애칭 같은 것이고 공식 명칭, 행정적인 명칭은 이쓰쿠시마(嚴島)라고 한다.


신사까지는 별로 먼 거리가 아니었는데, 가는 내내 사슴과 놀고 있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나라(奈良)에서 만났던 사슴들 같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먹이를 주면 달려드는 그 사슴들. 개인적으로는 나라에서 만났던 사슴들보다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좀 더 개구진 느낌. 나라에서는 '잘못하면 내가 물리거나 받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좀 긴장했었는데, 이 동네 사슴은 동네 꼬마들이 장난치면서 노는 걸 구경하는 느낌이다.


가게 앞에 TV 촬영팀이 몰려 있길래 궁금해서 구경하다가 하나 사서 먹었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 동네는 굴이 유명하다고 한다. 게다가 마침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올해의 첫 굴이 나올 시기. 가게마다 굴에 양념을 발라 구워 먹는 다양한 음식을 파는데, 그중의 한한 가게에 TV 촬영팀이 붙어서 뭔가를 촬영하길래 궁금해서 들여다보다가 결국 하나를 사서 먹었다. 나중에 보니 꽤 정비된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는 펫따라폿따라(ぺったらぽったら本舗)라는 가게였다. 찹쌀을 뭉쳐 구운 떡(?) 위에 간장 베이스의 소스를 바른 굴을 올려 구운 건데, 음... 솔직히 뭐 그냥 그랬다. 역시 굴은 외국에 나가서 먹을 음식은 아닌 것 같다. 일단 가격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니까 말이다. 


미야지마 신사에 가까워지자... 사진을 찍기위해 몰려 있는 엄청난 사람들


멀리 미야지마 신사가 보이기 시작하니까 사람들도 엄청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모두 카메라를 들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 이 섬에 온 사람들은 모두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왔을 테니까...



사진으로만 보던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니 기분이 남달랐다. 게다가 히로시마와 미야지마는 이번 여행에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곳. 마음 내키는 대로 일정을 잡다 보니 들를 수 있었던 곳이다.


신사 바로 앞까지 사슴들은 가득


각자의 방식으로 물에 잠긴 커다란 도리이(鳥居)를 느끼고 있는 사람들


해가 지고 있어서 신사 내부를 구경하지는 않았다. 내일 아침에 다시 구경하러 오면 되니까. 대신 신사 앞에 앉아서 물에 잠긴 도리이와 함께 먼 산 뒤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봤다. 한참을 바라봤다. 주위에는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또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풍경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사슴들은 여전히 사람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장난을 걸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었다.


오늘의 저녁은 이곳의 특산물인 아나고(붕장어)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 식당들이 모여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어느 가게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탐색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의 레이더에 걸린 곳은 마메타누키(まめたぬき)라는 가게. 어차피 이 섬 안의 가게들은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게일테니 동네 사람들의 맛집을 찾아내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겠지... 그렇다면 깔끔한 가게로 가자! 라는 것이 선택의 이유.


자리에 앉자마자 마실 것을 하나 주문했다. 아직 해피아워 중이라고 해서 맥주 한 잔. 그런 다음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보는데, 아나고 사시미가 보인다. 미야지마의 특산물이라고 하기도 하고, 일본에서의 아나고 사시미는 어떤지 궁금해서 주문.


접시를 받은 다음 좀 놀랐다. 우리의 아나고회는 기다란 몸통에 직각으로 뼈째 썰어내는 방식으로 오돌오돌한 식감으로 먹는 회였는데, 여기서는 아예 뼈를 발라낸 회가 나온 거다. 썰어낸 방식이 아예 다르다 보니 맛도 아예 다르다. 그리고 와사비는 왜 주지 않는 걸까? 한점 먹어보니 고소한 맛이 싹 퍼지면서 약간 비릿한 바다의 느낌이 뒤에 따라온다. 그걸 가리기 위한 용도로 파, 레몬 등을 사용하나 보다. 고소한 맛을 끌어 올리기 위해 가쓰오부시를 쓰고. 결론만 말하자면 아주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으나 다른 방식의 아나고회를 먹어본다는 경험으로는 좋았다.


혼자서 잔뜩 시킨 느낌적 느낌.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맥주에 회를 먹으려니 뭔가 어울리지 않아서 니혼슈를 마시려고 메뉴판을 살펴보니 히야오로시(ひやおろし) 3종 세트가 있길래 주문. 역시 가을에는 여기저기에서 히야오로시를 마실 수 있어 좋다. 배를 좀 채우기 위해 오뎅도 함께 주문. 달걀, 무, 우엉이 들어 있는 오뎅.


(좌) 야끼카키(구운 굴) (우) 타케쓰루 준마이(清酒竹鶴純米)


메뉴판을 좀 더 살펴보다가 굴도 이 동네 특산물이라는데 한 번 더 먹어볼까? 아까 먹었던 건 별로였잖아. 싶어서 이번엔 야끼카키(구운 굴)을 주문했다. 결론은 역시 해외에서는 굴을 먹지 말아야지 라는 결심. 우리나라 굴이 너무 좋다. 가격도 성능도.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점원을 제외한 모든 손님이 외국인이다. 다른 손님들이 보기엔 손님 중에 동양인은 나 혼자인 상황. 이곳은 일본인데, 주위에 들리는 것은 온통 영어뿐이니 뭔가 특이한 기분이다.


식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니혼슈를 한 잔 더 주문했다. 타케쓰루 준마이(清酒竹鶴純米). 평범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야경을 구경하러... 사진은 대실패


저녁을 먹고 나서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좀 돌아다녔다. 마침 만조이기도 했다. 물이 가득 올라왔을 때의 풍경도 궁금했다. 삼각대도 없이 핸드폰으로 찍다 보니 사진은 모조리 실패. 하지만 눈으로 찍어서 머리에 저장했으니 됐다. 이제 내일 아침에 다시 만조가 돌아오니 그때 돌아와서 신사 내부도 구경하고 밝을 때의 풍경도 돌아볼 예정이다.


아, 참고로 여행할 때 간조와 만조를 체크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바닷가의 풍경을 보러 갈 때는 특히 중요하다. 간조 때와 만조 때의 풍경이 천지 차이인 곳들이 많으니까. 그래서 물때를 확인하는 앱을 하나씩 사용하는 게 좋다. GPS를 이용해 위치 정보까지 알아서 체크해주는 앱들이 많다.


술 마실 곳을 찾고 있는데 사슴이 배회하는, 비현실적인 풍경


자, 이제 오늘의 하루를 마무리해야지. 미야지마에도 바가 있을까? 하고 검색을 해보니, 있다 있어! 가까운 곳에 밤비노(バンビーノ)라는 카페 겸 바가 있다. 다시 식당들이 많았던 상점가로 들어가 보니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한적해진 거리에 사슴이 배회하고 있는 비현실적인 장면. 혹시라도 사슴이 놀라 달아날까 싶어 조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작은 바라고해도 하큐슈와 야마자키를 마실 수 있어


모든 가게기 일찍 문을 닫기 때문인지 작은 바에는 손님들이 들락날락했다.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와서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마시기도 하고, 부부가 와서 칵테일을 한 잔씩 마시기도 한다. 나는 혼자 앉아서 하큐슈 하이볼을 먼저 주문했다. 안주는 우엉 칩. 우엉을 튀긴 안주는 처음 먹어보는데 꽤 괜찮은 안주가 된다. 두 번째 잔은 야마자키 하이볼. 역시 나는 하큐슈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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