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외국인과 사슴, 오늘은 수학여행 인파
아본 미야지마 신사
앱을 살펴보니 오전 8시가 만조였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했는데도 만조 시간에 맞추지는 못하고 조금 늦었다. 그래도 삽시간에 물이 빠지는 것은 아니니까, 물이 가득 들어찼다가 슬슬 빠져나가는 시간에 미야지마 신사(宮島神社)를 돌아봤다. 아, 다시 한번 첨언하자면, 정식 행정구역의 명칭은 이쓰쿠시마(嚴島)인데, 마치 별명처럼 사람들은 미야지마(宮島)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자료나 문헌을 찾아본 것은 아니고,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데... 왠지 일본에서 '미야(宮)'라는 글자를 사용하는 지명은 '신화'와 관련이 깊은 곳이었다. 미야자키(宮崎)도 그렇고 이곳 미야지마(宮島)도 그렇다. 왕족과 관련이 있는 신사는 신궁(神宮)이라고 부르는 걸 봐도 '미야(宮)'라는 글자는 일본의 기원, 신화 뭐 그런 것들과 관련이 있는 곳에 쓰는 글자가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섬을 이쓰쿠시마(嚴島)라고 부르는 것보다 미야지마(宮島)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실제로 구글맵을 살펴보더라도 미야지마에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신사가 있다.
어젯밤에 보았던 오토리이(大鳥居)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이로써 해 질 녘 주황빛의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장면, 깜깜한 밤 조명이 켜진 장면, 밝고 맑은 아침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장면. 커다란 붉은 문의 거의 모든 풍경을 구경했다. 미야지마에서 1박을 한 이유가 그것이기도 했고.
오전 9시가 되기 전이니 꽤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신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수학여행 온 듯한 학생들의 무리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역시 부지런한 학생들.
미야지마 신사는 도리이만 물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사 자체가 물 위에 떠 있었다. 아마 만조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일 거다. 간조 때에는 도리이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하니, 신사 아래에도 물이 다 빠지겠지.
미야지마 신사(이쓰쿠시마 신사)의 홈페이지에서 역사를 좀 살펴보면 역시나 이곳도 일본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인 아마테라스(天照)와 관련이 있는 신사인 걸 알 수 있다. 괜히 미야(宮)가 들어가는 동네가 아니라니까...
이곳에 온 목적이 오로지 이 커다란 문을 보고, 사진을 찍는 것이었으니 충분히 찍었다. 해가 질 때도 찍고, 밤에도 찍고, 아침에도 찍고, 산책하다가 건물 너머로 보여도 찍고...
자, 이제 드디어 미야지마 신사에서 벗어났다. 보고 싶은 것은 다 봤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녀 봐야 하지 않을까?
신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절에 잠깐 들렀다. 형형색색의 깃발과 천 조각들이 눈길을 끄는 곳이었다. 절의 이름은 다이간지(大願寺). 정확한 창건연도는 알려지지 않았고, 예로부터 미야지마 신사와 관계가 깊은 곳이었다고 하는 작은 절이다. 미야지마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식으로 작은 절과 신사가 매우 많다.
섬의 곳곳을 걷다 보면 꽤 멀리서도 높은 탑을 볼 수 있는데, 센조가쿠(千畳閣)라고 불리는 미야지마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목조 건물 옆에 있는 5층 탑, 고쥬노토(五重塔)다. 센조카쿠는 다다미 1,000장 규모의 건물이라는 뜻으로 규모가 아주 크다는 얘기라고 하는데, 원래 이름은 호코쿠신사(豊国神社)라고 한다. 센조가쿠는 별명인 셈.
봄이나 가을에 경주를 여행하면 엄청난 수학여행 인파를 만나는 것처럼, 이곳 미야지마에서도 수학여행 인파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여행하면서 일본의 수학여행 인파를 만났던 것은 나가사키(長崎)와 미야지마 정도. 나가사키는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된 곳이고, 미야지마는 일본삼경 중의 하나라서 학생들의 여행지로도 인기가 많은가 보다.
자, 이제 오늘의 나머지 일정을 위해 슬슬 섬에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오사카(大阪)까지 먼 길을 가야 하는 스케줄이다. 원래의 계획은 큐슈를 모두 돌아본 다음 시코쿠(四国)를 돌아보는 것이었지만,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외로워졌나보다.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오사카에 있는 친구와 도쿄에 있는 친구들이 올라왔다가 가라고 한다. 신칸센 비용이 꽤 비싸니까 다시 시코쿠가 있는 남쪽으로 내려올 수는 없겠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서너 시간은 더 있었어도 괜찮았다. 생각보다 오사카까지 가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아서 도착한 다음에 멍하니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까. 한두 시간이면 섬의 곳곳을 더 돌아볼 수 있었을 것이고, 점심도 먹을 수 있었겠네. 지금 생각해보니 아쉽지만, 당시엔 당시만의 이유가 있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