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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May 14. 2020

34. 친구와 함께 와카야마로

일본인 친구가 안내한 와카야마 여행의 시작은 쿠마노코도

오전 10시. 신오사카역(新大阪駅) 앞.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와서 근처의 패밀리 마트에서 간단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1박 2일 동안 렌터카를 빌려 와카야마(和歌山) 쪽을 여행하기로 했다. 철저하게 모든 일정은 친구들에게 맡겼다. 식당도 숙소도 모두 맡겨두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볍다. 그리고 오랜만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와카야마현은 오사카의 남쪽, , 시코쿠에서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친구들은 모두 일본인이고 오사카 출신이다. 이번 여행을 위해 휴가를 냈다. 한 명은 도쿄에서 일하고 있는데 고맙게도 이번 여행을 위해 오사카까지 내려왔다. 심지어 이번 여행 내내 운전까지 도맡아주었다. 나도 국제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일본인 어쩌면 오사카인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분명히 내가 일본에서 운전하면서 만난 차들은 모두 얌전한 차들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마치 한국 사람이 운전하는 느낌이다. 낯설지가 않다. 흠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어쨌든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니 좋다!


중화소바를 먹으러 들른 이데쇼텐


한 시간 반 정도 달렸을까? 라멘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는지 와카야마에서 유명한 라멘집 앞에 차를 세웠다. 이름은 이데쇼텐(井出商店). 간판에 중화소바(中華そば) 전문점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라멘 먹으러 간다며?'하고 물어보니 중화소바가 라멘(ラーメン)의 다른 말이란다. 나중에 좀 찾아보니, 라멘의 기원이 중국의 면 요리라서 초기에는 중화소바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라멘이라는 단어를 혼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두 단어를 모두 사용한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가게 주인 마음대로.


페이스북에 중화소바 얘기를 올렸더니 후배 녀석 하나가 재미난 댓글을 달았다. 라멘은 일본식 중국 요리이고, 짜장면은 한국식 중국 요리인데 외국인들이 생각할 땐 라멘을 일본 요리라고 생각하고, 짜장면을 한국 요리라고 생각한다는 얘기.


점심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는데, 가게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서 있었다. 기다리면서 미리 중화소바를 한 그릇 주문했다. 2~30분 정도 기다리고 나서 입장한 다음 자리에서 계란을 하나 추가했다. 일본 라멘의 짠맛에 익숙하고, 그 맛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아주 괜찮은 라멘이었는데, 그 짠맛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좀 힘들 수도 있는 맛이다.


어디로 가는지 신경 쓸 필요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맘 편히 앉아 있었다.


친구들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동안 멍하니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친구들의 잡담은 당연하게도 모두 일본어. 신경 써서 듣지 않으면 나에겐 그저 기분 좋은 화이트 노이즈일 뿐이다. 그리고 나의 미천한 일본어 실력으로는 모두 알아듣지도 못하고;;;


쿠마노코도 인포메이션 센터 근처의 풍경


드디어 알게 된 오늘의 목적지는 쿠마노코도(熊野古道).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와카아먀의 순례길이다. 와카야마현과 미에(三重)현에 걸쳐 있는 이 지역을 쿠마노(熊野)라고 부르는데, 예로부터 신들의 영지로 불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왕실이 있는 교토(京都)에서부터 이곳까지 3~40일을 걸으며 왕족과 귀족들이 순례를 다녔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 부근에는 역사가 오래된 신사나 사찰들이 많다고. 참고로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순례길은 세계에서 딱 두 개라고 한다. 다른 하나가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


우선은 정보를 좀 얻기 위해 쿠마노코도 인포메이션 센터(熊野古道館)를 찾았다. 헌데 생각보다 얻을 정보가 없다. 그냥 인터넷으로 정보를 더 찾아보기로 하고, 잠깐 운전도 쉴 겸 근처를 둘러보았다.


(좌) 근처의 작은 신사 (우) 말린 은어를 팔고 있는 상점


센터의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신사에 들렀더니 이제 막 순례길을 시작하는 외국인 무리를 볼 수 있었다. 쿠마노코도 순례길은 여러 개의 코스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근처에서 시작하나 보다. 우리는 내일 순례길을 일부를 걸어볼 예정이니, 오늘은 패스하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리이


다음 목적지는 쿠마노혼구타이샤(熊野本宮大社)의 오토리이(大鳥居). 일본에서 가장 큰 도리이라고 하는데, 사실 일본 외에 도리이가 있을 리 없으니까, 결국 세계에서도 가장 큰 도리이인 거다.


친구들과 함께 걷는 게 얼마만인지


도리이는 신사의 입구에 세우는 문이다. 우리의 사찰로 얘기하면 일주문(一柱門)과 비슷하달까? 헌데 이 도리이는 신사에서 꽤 먼 곳에 세워져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5~10분 정도 걸어야 실제 신사를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엄청 큰 도리이


도리이를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실제 신사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이 방향이 '안'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공원처럼 가볍게 산책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고, 오래된 건물들이 터만 남아 있는 것 같은 유적지가 좀 남아 있다.


가벼운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 같은 느낌


본격적으로 신사를 보기 위해 걸어가는 길. 작은 마을을 지나게 된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쿠마노혼구타이샤(熊野本宮大社)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쿠마노코도의 중심이 되는 신사. 쿠마노코도를 보러 왔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신사 앞에서 다시 만난 도리이. 꽤 많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동안 가봤던 어떤 신사나 신궁과도 다른 분위기였다.


일본의 주장으로는 2000년이 넘은 건물이 있다고 하는 곳이다. 정확한 년도는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본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신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미야자키 신궁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화려하고 큰 것에서 오는 위압감이 아니라 작고 수수하지만 오래된 시간이 주는 경건함 같은 것.


(굳이 '일본의 주장'이라고 쓴 이유는... 그들이 오래된 역사를 말할 때 숫자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야쿠시마에서도 조몬스기가 7,000살이 넘었다고 모든 안내문에 적혀 있었지만, 실제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나이는 약 2,000살 정도였다.)


다섯 시가 넘으니 해가 져버렸다.


쿠마노혼구타이샤를 구경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일찍 해가 진다. 11월인데 오후 다섯 시면 주위가 깜깜하다. 차를 타고 약 4~50분 정도의 거리. 마지막으로 쿠마노하야타마타이샤(熊野速玉大社)에 들렀다. 이곳도 역시 쿠마노코도를 여행한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라고 한다. 쿠마노혼구타이샤에 비하면 도심(?)에 있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특별하지는 않았다. 너무 어두울 때 구경해서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숙소. 민숙 코사카야.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약 20분 정도를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온천민숙(温泉民宿)이라고 쓰여 있는 코사카야(小阪屋). 오사카(大阪)에서 출발한 세 명이 코사카(小阪)에 도착했다. 하...하하.


민숙에서 준비해 준 저녁. 참치 대가리가 웅장(?)하다.


숙소에 도착하니 바로 저녁 시간이다. 참치 까스, 참치알, 참치 회, 꽁치구이, 톳 그 외에도 다양한 반찬들. 너무 푸짐하게 준비해주셔서 다 먹질 못할 정도였다. 식사 도중에 준비해 주신 참치 대가리 조림은 너무 웅장(?)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음식은 투박한 스타일이었지만 시골의 인심이 느껴지는 밥상의 느낌.


내일은 본격적이진 않더라도 쿠마노코도의 일부분을 같이 걸어보기로 했다. 문득 생각해보니 시코쿠도 순례길로 유명한 곳이다. 시코쿠를 포기하고 오사카로 올라왔더니 친구들과 함께 쿠마노의 순례길을 걷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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