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가고시마 - 첫째 날 + 밤
제목이 좀 심심한가? 싶어서 1, 2편의 제목을 좀 바꿔봤습니다. 뭐 그런다고 엄청 재밌어지거나 궁금해지는 제목은 여전히 아니지만요...
체크인을 하고 방에 도착해보니 너무 예쁜 웰컴 종이학(?)이 놓여 있더군요. 그리고 방을 청소해준 분의 성함이 적힌 카드가 한 장. 매일매일 고맙다는 의미로 "아리가토 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라고 일본어를 적어 그려두었습니다. ㅎㅎ
그리고 배정받은 방은 호텔의 젤 구석에 있는 1인실인데,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뻔한 구조의 방... 인 것 같지만 묘하게 넓다는 느낌이 들어요. 며칠 묵으면서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침대 '옆'에 책상이 있는 게 아니라 침대 앞쪽에 책상이 있을 정도로 길죽한 구조의 방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방이 크긴 크다는 건가?
아, 물론 사진에 안 보이는 곳에 화장실 겸 욕실이 있는데 거의 사용을 안 했습니다. 어차피 이 호텔에는 온천이 무료니까!!!
자, 그럼 짐을 풀었으니 바로 온천부터 한 판!!! 사츠마노유(さつま乃湯)는 호텔 3층에 있는데, 3층으로 운행하는 엘리베이터가 별도로 있으니 표지판을 잘 보고 따라가면 되더라고요. 아, 그리고 당연하게도 투숙객은 무료이고 11:00~13:00 까지는 청소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습니다. 이거 몰랐다가 늦잠자고 기상 온천 못했던 날이 하루 있었어요. ㅠㅜ
아, 그리고 온천이 혼잡하면 입욕을 제한하기도 하나보더라구요. 그래서인지 방에서 TV로 온천의 혼잡도를 볼 수 있어요. 실시간으로 온천 내부를 보여주는 건 절대 아니구요 ㅋㅋ. 특정 채널에 안내 페이지 같은 게 있어서 남탕/여탕의 혼잡도를 알려줍니다. 널널하다. 혼잡하다. 뭐 그런 식으로요. 사진 찍어둔 게 없어서 아쉽네요.
온천 전용 엘리베이터가 3층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에 내리자마자 기념품 가게가 있습니다. 호텔에서 직접 브루잉하는 맥주를 마실 수도 있고요, 가고시마의 다양한 물건들을 살 수 있습니다. 귀국할 때 여기서 조카한테 선물할 가고시마 감귤 사탕이랑 젤리 같은 걸 사왔어요. 아, 물론 제가 마실 쇼츄도 한 병.
사실 그리 크지 않은 기념품 가게인데 다른 제품들보다 월등히 쇼츄의 종류가 많습니다. 전문 리커샵이 아닌 그저 호텔 기념품 샵일 뿐인데도 이 정도 수량의 쇼추라니. 역시 쇼츄의 도시 답네요. 입맛을 다시면서, 온천으로~
와, 온천은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꽤나 큰 현대식 온천이었습니다. '현대식'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면, 대부분 일본의 온천이라고 하면 영화나 드라마, 애니, 만화에서 본 것 같은 재래식의 온천들만 떠올린단 말이죠. 하지만 실제 여행을 다녀보면 현대식의 온천도 많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사우나 같은 것들이요. 그럼 온천이랑 목욕탕, 사우나가 뭐가 다르냐? 그건 말 그대로 인위적으로 데운 뜨거운 물을 쓰지 않고 인증 받은 '온천수'를 쓰는 곳은 온천인 거죠.
일단 온천에 입장하면 ①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둡니다. 이때 자기 신발을 체크할 수 있는 표식 같은 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② 비어있는 옷장을 하나 골라서 옷을 벗어 넣어두고, 열쇠를 챙깁니다. ③ 수건을 한 장 들고 안에 들어갑니다. (사실 탕 내부에서 수건을 쓸 일은 없는데, 이상하리만치 모두들 수건을 하나 들고 갑니다. 왠지 수건을 들지 않으면 발가벗은 느낌이고 수건을 하나 들면 그렇지 않은 느낌이랄까) ④ 온 몸을 씻고 머리도 감습니다. ⑤ 드디어 온천에 풍덩~ 뭐 이런 게 일반적인 순서입니다.
자, 사진에서 본 노천탕, 바로 그 노천탕과 만날 순간입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커다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와, 진짜 사진으로 봤던 바로 그 풍경이 펼쳐집니다. 앞으로 4일 동안, 매일매일 아침 저녁으로 다양한 하늘색으로 바뀌는 이 경치를 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숙박비가 아깝지가 않습니다. 이곳으로 예약하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INFP로서, 미리 여행을 계획하고 막 그러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즉흥적'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가고시마에서 가볼만한 지역들을 좀 체크해뒀었어요.
가고시마의 유명한 번화가인 텐몬칸(天文館)에는 지난 번(자그마치 7년전이지만;;)에도 들렀었으니 오늘 밤에는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어서 미리 체크해둔 지역인 메이잔보리(名山堀)를 목적지로 정했습니다. 가고시마의 곳곳을 찾아보다가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처럼 과거의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작은 골목들이 있는 거리'의 사진을 봤어요. 어느 가게에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발길이 닿는 곳으로 걷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가는 가게가 생기겠지요.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메이잔보리에 가고 싶다고 얘길했더니 어떻게 거길 아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봤다고 하니까, 거기 가서 뭐 할 거냐길래 술 마실 거라고 했더니 아, 그렇다면 거기 가면 술집들이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작은 교토'를 기대하고 간다고 했더니 묘하게 웃으시더군요.
그리고 택시에서 내려 5분 정도 골목골목을 걸어다녀보니 택시 기사님의 묘한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정도 까지는 아니었던 거죠. 물론 재밌는 가게들이 곳곳에 보이고, 카메라 각도를 잘 잡으면 운치있는 사진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골목들이 이어지고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가게들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설명을 듣고 머릿 속에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가 있다면, 결단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것보다는 못할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좋은 경험을 만들고 싶어 이 작은 동네를 다섯 바퀴가 넘게, 구석구석 돌아다녔습니다. 두 군데 정도의 가게가 마음에 들더군요. 하지만 두 군데 다 만석이었습니다. 한 군데는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서 시끌벅적 야키도리에 쇼츄를 마실 것 같은 가게였고, 다른 한 군데는 깔끔한 현대식 인테리어에 퓨전 오뎅 요리를 하는 젊은 가게였습니다. 평소 큰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닌 오뎅 요리에 관심이 간 이유는 가고시마의 옛 지명이 사츠마(薩摩藩)이고, 이 동네의 유명한 특산물 중 하나가 사츠마아게(さつま揚げ)니까 오뎅에는 일가견이 있는 도시가 아닐까 하는 연결점을 찾은 것 때문일끼요. 지난 번 방문했을 때 먹었던 쿠로미소 오뎅이 맛있었던 기억 때문일까요.
두 군데에서 까이고 나니, 이젠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저녁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당한 가게를 찾았습니다. 평범한 이자카야처럼 보였고, 바 좌석이 있어서 혼자 앉기에도 적절해 보였습니다. 아예 텅 비어 있는 가게는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드는데, 두 커플 정도의 손님이 있다는 것도 선택이 이유였죠. 지금 와서 다시 검색해보니 가게 이름이 GOAL이고 이걸 일본어로 剛流라고 썼나봅니다. 결국 일본어 발음으로 '고루'와 비슷하게 읽히는 거죠. 아마도 마스터가 축구를 좋아하나 봅니다.
일단 앉자마자 생맥주를 한 잔 주문합니다. 일본에서의 예의랄까. 메뉴를 살펴보기 전에 마실 것 한 잔 부터 주문하는, 보이지 않는 룰 같은 것. 생맥주 한 잔과 오토시를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이제 메뉴 고르기가 시작됩니다.
작은 가게에서 마스터 혼자 요리와 접객을 모두 하는 가게. 그날그날의 메뉴는 칠판에 손으로 적어두셨는데... 문제는 손글씨들은 번역기에서 인식이 잘 안 된다는 것. ㅠㅜ 그래서 추천을 좀 받아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뭔가 말이 잘 안 통합니다. 마스터가 소심하고 낯 가리는 분이라 그런가... 어쨌든 결국 혼자서 칠판을 들여다보고 이렇게 해석해보고 저렇게 검색해보면서 결국 히토리나베(一人鍋)라는 메뉴를 발견, 어떤 음식인지 물어보니 야채와 돼지고기를 넣은 나베 요리라고 해서 주문했습니다.
메뉴판을 찍어둔 사진은 없지만... 가고시마의 이자카야인데!! 소츄의 종류가 너무 적습니다. 다양한 쇼츄를 마실 수 없었어요. 시마비진(島美人) 한 잔과 미타케(三岳) 한 잔 정도를 마시고 일어섰습니다. 아, 가고시마에서 먹을 세 번의 저녁 중 하나를 이렇게 망쳐버렸습니다. 굉장히 허탈한 기분이었어요.
이때,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툭하면 교토에 가던 시절, 뻔한 번화가를 모두 섭렵하고 구석구석 숨어 있는 가게를 찾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떤 촉 같은 것도 무섭도록 발달해 있었죠. 발길이 닿는 곳으로 걷다가 느낌이 오는 가게에 들어가면 실패하지 않았던 때.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흘러 그때로부터 거의 10년 정도가 지났고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이유로 여행도 자주 하지 못했죠. 그러니 나의 여행력(power of travel)과 맛집촉(sense of good restaurant)은 예전처럼 날카롭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걸 스스로 인정해야 했습니다.
아, 이건 사족이지만... 이 가게에서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 노부부의 얘기를 의도치않게 계속 주워 듣게 됐는데, 부인분이 대단한 아이유 팬이시더군요. 3월 23/24에 요코하마에서 있었던 아이유 콘서트도 다녀오신 것 같았어요. 제가 들어가서 자리에 앉을 때부터 일어서서 나올 때까지 오로지 '아이유 칭찬'만 하시더라고요. -0- 왠지 끼어들고 싶었지만...
네, 그렇게 인정하고 결국 뻔한 동네, 뻔한 가게라도 실패하지 않을 곳들을 찾아가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괜한 똥고집을 부리다가 여행 전체를 망치고 싶진 않았습니다.
걸어서 약 10-15분 정도면 메이잔보리에서 텐몬칸(天文館)까지 갈 수 있더군요. 텐몬칸 앞의 커다란 건널목에서 텐몬칸 입구를 보다가 한자를 읽고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천문관? 텐몬칸이 천문관이라는 글자였어? 아니 왜 번화가...라기 보다 유흥가의 이름이 이렇게 까지 학구적인거야? 하는 웃음이었습니다.
검색을 좀 해보니 과거에 천체관측소가 있었던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좋게 말해서 번화가이고 유흥가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좀더 속되게 말하면 환락가에 가깝습니다. 밤이 되면 골목골목 호객행위를 하는 아가씨들과 아저씨들이 그득그득합니다. 그래도 어쨌든 결국 맛있는 식당과 좋은 바들은 모두 이 동네에 모여있습니다.
한 때는 북큐슈의 후쿠오카(아마도 나카스?)와 더불어 남큐슈의 텐몬칸이 큐슈의 2대 유흥가였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과거의 명성을 잃었다고는 하나, 어쨌든 번화한 곳이긴 합니다.
여기까지 걸어온 이유는 확실히 좋은 쇼츄바가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7년 전에 가고시마에 왔을 때 이미 들렀던 바, 바로 이시즈에(礎)입니다. 어차피 저녁은 망쳤지만 이후 마시게 될 쇼츄들은 망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으로 확실하게 보장된, 이미 들렀던 바를 찾은 거죠. 천 여종의 쇼츄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 가게이니, 뭐 쇼츄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천국같은 곳입니다.
앉자마자 '소다와리를 마시고 싶은데 추천해주세요. 야스다(安田)나 다이야메(DAIYAME) 같은 거 좋아합니다.'라고 했더니 플라밍고 오렌지(フラミンゴオレンジ)를 들고 오시길래 '아, 죄송한데 그건 마셔봤어요'라고 했더니 웃으며 가져오신 쇼츄.
이름이 매우 특이합니다. 무슨 라이트 노벨의 제목도 아니고 "상냥한 시간의 가운데(優しい時間の中で)" 라니. ㅎㅎㅎ. 한 모금 마셔보니 실제로 매우 부드럽고 화사한 향이 올라옵니다. 역시 요즘 쇼츄의 유행은 마시기 쉬운(飲みやすい, 노미야스이) 소츄들의 소다와리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야스다(安田)나 다이야메(DAIYAME) 같은 것들이겠죠.
'상냥한 시간...'도 결국 야스다와 플라밍고 오렌지를 만든 코쿠보 주조(国分酒造)에서 만든 것이니... 마시기 쉬운 쇼츄의 유행의 선두는 결국 코쿠보 주조인 건가요?
첫 번째 쇼츄를 마시고 있자니 오토시가 나왔습니다. 이곳이 가고시마, 옛 지명으로 사츠마인 것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듯(사츠마 이모. 라고 고구마가 유명합니다. 그걸로 쇼츄를 만들죠) 고구마 튀김이 왼쪽에 있고, 가운데에는 훈제 오리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와사비 소스에 올려둔 메추리알이 있더군요.
그나저나 지난 번에 이곳에 방문했을 때에는 손님이 없어서 한적했었는데, 이날은 아주 그냥 좌석이 꽉꽉차서 돌아가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가게가 됐더라구요. 아니면 지난 번이 특이한 날이었던 건가...
이시즈에에는 사장님을 제외하고 마스터를 비롯해 4명 정도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는데요. 그중 한 분이 지도를 가져와서 '가고시마의 쇼츄'를 지역별로 설명해준다고 하시더군요. 사실 그렇게까지 일본어를 알아 들을 수는 없는 실력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마시게될 쇼츄들은 지도에서 양조장을 짚어 주시겠죠? 막걸리 전문 가게에 가면 우리나라 지도 그려두고 어디 출신의 막걸리인지 설명해주잖아요. 그런 느낌입니다. 실제로 가게의 한쪽 벽에는 사진의 저 지도가 아주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보아하니 너 쇼츄 좀 먹어본 녀석 같은데 재밌는 걸 보여주지' 하는 느낌으로 가져오신 쇼츄입니다. 므기홋카(麦ほっか). 이걸 보고 제가 좀 웃었습니다. 그랬더니 왜 웃느냐고 해서, 핸드폰에서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드렸습니다. '나, 이 가게에 7년 전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이걸 추천해주셨다'고 했더니 서로 웃게 되었죠. 당시에 마셨던 다른 쇼츄 사진도 보시더니, 이제 그 쇼츄는 없다면서 운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쇼츄도 매우 매력적인 쇼츄입니다. 분명히 보리로 만든 쇼츄인데 마셔보면 분명히 커피 맛이 납니다. 그래서 '재밌는' 쇼츄를 소개해주실 때 이걸 추천하시나 봅니다.
세 번째 쇼츄도 역시 재밌는 것으로 가져오셨습니다. 뜨거운 쇼츄 마셔본 적 있냐고 하시더니 없다고 하니 한 번 마셔보라면서 가져오셨는데 뜨거운 물을 섞은 오유와리가 아니라 쇼츄 자체를 데운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아츠깡(熱燗)이라고 니혼슈를 데워 먹는 것이야 익숙하지만 높은 도수의 쇼츄를 직접 데워 먹는다고?
군고구마 맛이 날거라고 하셨는데, 솔직히 말하면 '데운 술'에서 오는 알콜향이 지배하고 있고 군고구마 향까지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심지어 레이블에도 군고구마(やきいも)라고 써 있는데 말이죠. 재밌는 경험으로 만족.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추천받은 쇼츄. 미야가하마(宮ヶ浜, MIYAGAHAMA Aroma). 평범한 듯하지만 아주 깔끔한 쇼츄였어요. 굳이 오크통 숙성으로 향을 입히지 않은 깔끔한 위스키의 느낌이랄까. 이부스키(指宿)의 쇼츄였는데, 모래 찜질하러는 못가보지만 이렇게 쇼츄라도 한 잔 마시게 되네요. 레이블이 아주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고 세부 정보를 적어두는 방식도 외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한 느낌. 해외 진출을 생각하는 건가? 하고 별 정보 없이, 그냥 혼자 생각해봤습니다.
어느 정도 쇼츄'욕'을 해결했으니 이젠 라멘으로 해장을 할 차례입니다. 일본 여행에서 하루의 마무리는 항상 라멘으로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구글맵을 뒤져 가까운 곳에서 라멘집을 하나 찾았습니다. 일단 이름에 돈(豚)이 들어가니 돼지 국물, 돈코츠겠죠. 하카타의 라멘을 기대하진 않지만 그래고 맛있는 국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돈토로(豚とろ 天文館本店).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문에 '가고시마에서 가장 맛있고 유명한 라면입니다' 라는 한글이 보입니다. 스스로 이렇게 까지 자부할 정도로 맛있는 집이라고? 기대감이 점점 커집니다.
기본 라멘을 주문했어요. 입이 짧은 편이라서 많이 먹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추가하면 결국 다 먹지 못하고 속만 불편해 지거든요. 비쥬얼과 냄새가 좋았는데, 안에 들어있는 면을 꺼내보니... 아... 그래 여기는 하카타가 아니잖아....
네, 저는 하카타식의 얇은 면을 좋아하거든요. 헌데 여기는 면이 짜장면처럼 굵은 면이더군요. 그래서 일단 실망을 하고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의외로 맛있습니다. 매우 진한 돈코츠 국물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진한 국물인데도 신가하게 잡내가 별로 없습니다. 국물 자체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라멘입니다. 네, 면이 제 스타일이 아닌 것이 아쉽지만 말입니다.
라멘을 먹고서 호텔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라멘을 먹고나니 왠지 한 잔을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구글맵을 켜서 뒤지다가 발견한 가게 ASAYAN이라는 와인바입니다. 일단 앉아서 잔 와인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바로 스파클링 와인을 잔으로 하나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감자 사라다를 주문했는데 오토시가 있는 줄 알았다면 굳이 주문하지 않아도 됐을...
술에 취한 상태이긴 했지만 스파클링에 탄산이 좀 많이 빠져서 섭섭했던 기억입니다. 그러면서 가게를 둘러보는데 참 신기한 가겝니다.
분명히 와인바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야끼도리 화로가 있습니다. 구글 리뷰에도 야끼도리가 맛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와인이 주력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더니 가게 구석구석에 리델과 숏쯔위젤 박스가 가득합니다. 와인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많은 와인잔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겠죠.
뭔가 숨어 있는 재밌는 가게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레드 와인을 한 잔 더 마셨습니다. 스페인 와인이었는데, 꽤 품질이 좋은 와인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와인을 이 가격에 잔술로 판다고? 싶었는데, 뭐랄까 늦은 시간이라 팔다가 남은 술을 한 잔 준 건가.. 싶기도 ㅎㅎ
이 즈음... 해서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았죠. 아무래도 이 동네가 번화가(유흥가)이다 보니 택시는 아주 많더라고요. 택시를 타고 호텔로~ 그리고 완전이 뻗었죠.
아마 제 기억이 맞다면, 택시를 타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서 술 깨는 약... 뭐 그런 걸 사서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야 내일의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