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가고시마 둘째 날 - 조식 / 돈까스 / 중고 LP 가게
사실 출발하기 전부터 몸이 좀 안 좋았습니다. 하필이면 딱 그때 감기 몸살에 걸려가지고, 약을 엄청 먹고 여행을 시작했죠. 그래서 영양제랑 비싼 비타민 같은 것들도 챙겨 갔더랬습니다. 거기다가 오랜만의 여행이라 무리해서 음주를 했더니 아침에 몸이 안 좋더라고요. 매일매일 마시면서도 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늙는다는 건가요. 아, 세월이여...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바로 그 호텔. 시로야마 호텔 가고시마는 조식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호텔 홈페이지에 '조식'을 자랑하는 섹션이 따로 있을 정도예요. 각종 여행 사이트(자란넷, 라쿠텐트레블, 트립어드바이저 등)에서 높은 순위를 꾸준히 기록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3박에도 모두 조식을 포함했는데요. 처음 맞이하는 가고시마에서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온천도 한 판 하고(아, 그 경치는 정말... 캬~) 부지런히 조식을 먹으러 갑니다.
원래 아침을 거르는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고 여행에서도 아침에 늦잠을 푹 자는 편이지만, 나이 드니 아침잠이 자꾸 없어지기도 하고 조식도 맛있는 곳이라고 하니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죠.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엄청난 종류의 음식이 차려져 있는 조식은 아닙니다. 아닌데! 필요한 것들은 다 있습니다. 거기에 계절에 맞춰 특별 메뉴들도 준비가 되더군요. 일단 오늘은 기본적인 것들만 체크해봅니다.
가고시마니까 사츠마아게(さつま揚げ)도 몇 종류 먹어보고, 가고시마 쿠로부타(黒豚) 삶은 것도 조금, 그리고 봄 느낌나는 작은 덮밥(春ちらし)을 첫 번째 접시에 가져왔습니다. 두 번째 접시에는 치즈와 야채를 골고루 넣은 오믈렛을 부탁해서 받아오고, 샐러드와 야채 스프를 마지막 세 번째 접시에는 후식으로 조각 케잌과 커피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가져왔습니다. 입이 좀 짧은 편이라 이 정도면 충분하더라고요. 오늘 먹지 못한 음식들은 다른 날 공략해보기로 합니다.
조식을 먹고 나서는 방으로 올라가서 좀 누워 있었습니다. 두 시간 정도 였던 것 같네요. 오늘도 열심히 달려야 하니까 오전은 휴식의 시간으로. 잠깐 눈을 좀 붙였던 것 같기도 하네요. 아침 일찍부터 온천하고 조식 먹느라 힘들었어요. ㅎㅎㅎ
호텔이 시로야마 위에 있다보니 시내로 나갈 때마다 셔틀 버스를 타야 합니다. 경치 좋고 시설 좋고 직원들 친절하고 온천도 좋고 정말 모두가 좋은데 딱 하나 귀찮은 점이죠. 내려갈 때 셔틀을 타야하고 술 마시고 나서는 택시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점. 그래도 셔틀 시간만 잘 맞추면 뭐, 괜찮더라고요.
출발하기도 전부터 첫 번째 점심은 돈까스로 결정해두었더랬습니다. 가고시마는 쿠로부타(黒豚) 그러니까 흑돼지의 고장이거든요. 지난 번 여행에서 흑돼지 구이랑 오뎅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뇌리에 아주 깊히 박혀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오늘의 점심 메뉴는 돈까스! 저녁 메뉴는 샤브샤브! 뭐 이렇게 정해두었습니다.
열심히 검색해서 결정한 곳. 쿠로부타 후쿠야(黒豚ふくや). 가게 앞에 갔더니 한 팀이 대기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제가 대기표에 이름을 적은 다음 한 팀이 더 늘었고요. 그래서 인기가 있는 가게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가게 앞에 조그만 안내가 붙어 있었습니다. 점원이 적어서 가게 안의 손님 수를 제한하고 있다는 내용의 안내였어요. 그래서 대기팀이 있는 건가?
구글맵에서 돈까스로 검색한 다음 리뷰를 좀 자세히 들여다 보고 고른 가게였는데요. 미슐랭 스타를 받은 쉐프가 조언을 해주고 있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요일별 점심 정식 같은 게 있고 가격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주문하려고 자세히 보니... 돈까스 종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좀 비싸지만 흑돼지 등심 까스로 주문을 했습니다. 그걸 먹으러 온 거니까요.
아, 물론, 당연하게도 여행자의 특권! 낮술! 생맥주도 한 잔 같이 주문했죠. 사실 낮술 마시는 거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요. 괜히 다른 손님들한테 '나는 일하는 중 아니지롱~'하는 자랑을 하고 싶었달까요.
돈까스는 참 좋았습니다. 비계부분이 꽤 두터웠지만 아주 고소했고 튀김옷도 착~ 달라 붙었는데 전체적으로 맛이 아주 깔끔하더라고요. 한점 한점 먹으면서 '오늘 가게 참 잘 골랐네'하고 스스로를 계속 칭찬하게 되는 맛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메뉴를 흑돼지 샤브샤브로 결정해두었는데, 이 집에도 그 메뉴가 있길래 '저녁도 여기서 먹을까?'하는 고민을 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가게였습니다.
자, 점심을 먹고 나서는 여유롭게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구글 검색을 하다가 나가시마 미술관을 찾아냈어요. 어떤 종류의 소장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시를 보고 나서 언덕 위에서 바다를 내려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동 거리가 좀 있어서 전차를 타고 이동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텐몬칸도리역(天文館通駅)에서 전차를 타고 나카스도리역(中洲通駅)에서 내린 다음 택시를 타고 미술관으로 가면 될 것 같았습니다. 구글맵이 알려준 길은 전차가 아니라 버스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차를 타고 싶었고, 미술관 근처에서 택시를 타면 될 거라는 생각이었죠. 걷기에는 좀 먼 거리였어요. 도보로 약 35분 정도니까요.
나카스도리역에서 내린 다음. 뭔가 쌔~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나가는 택시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우버 같은 걸 부를 수 있나? 하고 검색을 해보니... 가고시마에서는 택시 앱을 쓰지 않더군요. 그래서 콜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그것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본어 실력이 미천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근처에 내 위치를 알려줄 수 있는 랜드마크가 없었습니다. 카페나 식당 같은 것도 없고, 건물들이 모조리 다 간판도 없는 그냥 오피스 건물들 그리고 무슨 공사를 하는 건지 도로 위는 공사판이더라고요.
3-40분을 걸어서까지 나가시마 미술관에 가고 싶진 않았습니다. 나올 때도 같은 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저 커피가 마시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근처를 걷다보면 카페는 있겠죠. 라고 생각하고 반대 방향으로 그냥 걸었습니다. 쉽게 카페가 나타나질 않아서, 구글 맵에서 카페를 검색하면서 걸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군데 마음에 드는 카페가 없더군요.
그렇게 걷다 보니 가고시마츄오역(鹿児島中央駅前)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동네를 옮겨서 카페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다시 전차를 타고 시야쇼쿠마에역(市役所前駅)에서 내렸습니다. 이 동네는 미술관이 많은 동네니까 분위기 좋은 카페도 많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찾은 곳이 Luck Apartment 라는 카페입니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가 아니었고, 날씨도 갑자기 좀 쌀쌀해졌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가려던 곳을 가지 못한 데다가 쓸데없이(?) 많이 걸었으니... 휴식이 필요한 상태였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의자에 앉았더니 뭔가 몸이 급속충전되는 느낌입니다.
아이패드에 그동안 쓴 돈을 정리하고나서 카페를 둘러보니, 카페 쥔장이 아무래도 음악에 관심이 많은 분 같더군요.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LP와 커다란 스피커 그리고 진공관 앰프를 비롯해 뭔가 오래됐지만 관리를 잘 한 것 같은 장비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있자니 피로가 풀...
어라? 그러고보니 한쪽 벽면에 가득 LP가 있습니다. LP? LP! 최근 이상하게(?) 불어닥친 LP 붐으로 국내에서는 중고 LP의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졌습니다. 그래서 아예 국내에서는 중고 LP를 사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단 말이죠. 하지만 일본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워낙에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어서 그런지 중고 물건의 관리도 잘 되어 있을 뿐더러 중고 LP의 가격이 국내처럼 오르지 않은 상태입니다. 국내의 모 LP 판매 사이트는 일본의 중고 LP 가게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가져다 파는 것 같은 목록을 보여주기도 할 정도로, 일본과 국내의 중고 LP 가격은 차이가 많죠. 그동안 여행다니면서 지인들의 부탁을 받아서 중고 LP를 사가기도 했었어요.
가고시마에도 중고 LP 가게가 있겠지? 용기를 내서 가게 쥔장으로 보이는 분에게 혹시 근처에 중고 LP를 살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지도를 검색해서 가게를 하나 알려주셨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더라구요. 걸어서 약 10분 정도의 거리.
우산을 쓰고 걷다보니 지난 번에 가고시마에 왔을 때 산책하던 미술관 앞의 그 거리입니다. 그리고 멀리 시로야마(城山)의 등성이에 제가 묵고 있는 호텔이 보입니다. 멀리서 봐도 저렇게 크게 보이는 정도로 규모가 아주 큰 호텔이군요.
그렇게 찾아온 중고 LP를 살수 있는 가게, MOCKING BIRD(モッキンバード). 입구에 들어서면서 다짐했습니다. 그래, 여기서는 아끼지 말자.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자!
뭔가 LP들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분류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분류 태그들이 모조리 가타카나라서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하나하나 차근차근 '전부'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고 싶은 LP를 고르는데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한 시간 정도를 서서 뒤졌던 것 같네요.
토토, 사이먼 앤 가펑클, ELO, 비틀즈, 에릭 클랩튼... 뻔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지고 싶은 LP들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의 푸른 산호초(青い珊瑚礁)를 집에서 듣기 위해 그녀의 베스트 앨범 중 하나를 골랐죠. 대략 장당 1,000~1,500엔 정도의 가격이었습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떠날 때까지 계속 눈에 밟히던 LP가 두 개 있었는데,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郎)의 크리스마스 이브(クリスマス・イブ) 도너츠판과 FOR YOU 앨범. '크리스마스 이브'는 정말 갖고 싶었지만 도너츠판이라 보관이 힘들 것 같았고, FOR YOU 앨범은 꼭 갖고 싶었던 앨범이 아닌데 가격이 만만치 않더라구요. 그래,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사진을 보니, 또 아쉽습니다. ㅠㅜ
쇼핑을 마치고 나니 슬슬 피곤하기도 하고 배가 고파오는데, 아직 저녁을 먹을 시간이 아닙니다. 다섯시도 안 된 시간.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카페를 하나 검색해봅니다. 비가 오고 있기 때문에 저녁을 먹을 곳과 가까운 곳이면 좋겠더라고요.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길래 가봤지만, 빈 좌석이 없어서 패스. 다시 구글맵을 켜서 근처 카페를 하나 찾아서 가봅니다. 이름은 카히칸(可否館). 지도를 보고 찾아가보니 지하에 있더군요. 별 생각없이 들어가서 따뜻한 라떼를 한 잔 시켜서 마십니다. 그리고 가계부 정리를 위해 아이패드를 꺼냈는데... wi-fi가 안된다는 겁니다. 그거야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전화도 안 터지는... 지하 깊숙한 곳의 카페.
뭐 어차피 중요한 연락을 받을 것이 있는 건 아닌지라 큰 상관은 없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연결이 끊긴' 채로 한 시간을 보내려니 꽤나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패드로 낙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진을 하나 골라서 그림도 그리고요. 결과물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여기에 올리진 않을 거지만, 뭐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선 둘째 날의 '밤'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얼마나 맛있는 저녁이었는지, 또 어떤 쇼츄바를 찾아서 다양한 쇼츄를 마셨는지. 뭐 그런 얘기들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