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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18. 로컬 열차 타고 작은 불상들 찾으러 지겐지 공원

2025 새해맞이 여행 - [3부] 가고시마 쇼츄 여행

by zzoos





오늘도 어제와 같은 아침 루틴입니다. 여덟 시 반 즈음 일어나서 온천을 하고 아홉 시 반 즈음 마지막 타임의 조식을 먹으러 내려옵니다. 조식을 먹고 나면 마당에 나와서 사쿠라지마를 한 번 보고는 다시 방으로 올라가 모자란 잠을 보충합니다.





매시 20분과 50분에 호텔의 셔틀버스가 출발합니다. 아슬아슬하게 21분에 내려오는 바람에 버스를 놓쳤습니다. 30분을 기다리러 다시 방에 올라갈까 하다가, 그냥 호텔 로비 앞에 있는 무료 전시를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사츠마 키리코를 전시와 함께 판매하고 있더군요. 가격이 어마무시합니다. 음... 뭐 유리 공예는 개인 적으로 그리 관심이 있는 분야는 아니라서 보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때웠습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고시마 츄오역에 내려 신칸센이 아닌 로컬 전차를 타러 왔습니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모델인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규슈에서는 많이 보이는 200DC계 열차입니다. 가고시마의 로컬선은 노란색이군요.





노란 로컬 열차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서 지겐지(慈眼寺) 역에 내립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단순하게 구글맵으로 여기저기 스크롤하다가 찾아낸, 지겐지 공원입니다. 특별히 볼 것은 없는 그냥 자연 그대로의 공원이라는 리뷰를 보고 무작정 선택했어요. 지겐지 역에서 천천히 걸어가는데 오늘 날씨가 좋네요. 완전히 한적한 시골입니다. 커다란 나무도 많고요. 널찍한 잔디 공원도 있어요. 그러다가 지겐지 공원의 입구를 만났는데... 음 이게 입구 맞나요? 뭔가 시시한 이 느낌은 뭐지?





그렇게 공원 입구로 들어섰는데, 와 진짜 원시림 같은 분위기가 좀 나네요. 야쿠시마에서 트래킹 할 때의 기분이 아주 조금 듭니다. 울창한 나무와 여기저기 잔뜩 끼어있는 이끼들.





그냥 대충 산책하려고 했는데, 여기저기로 갈라진 길을 보니 구석구석 다 가보고 싶어 져서.... 이거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왕(仁王)상이라던가 불상들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습니다. 이 공원은 정확하게 지겐지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고 지겐지가 ‘있던’ 자리인가 봅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면서 매력적인 풍경들이 계속 나타납니다. 솔직히 저에게는 아주 재밌는 곳이었어요. 너무 극단적인 역광 때문에 사진 찍기 어려운 곳이 많긴 했지만, 어쨌든 살랑살랑 돌아다니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작은 불상들을 계속 발견하게 됩니다. 길 위에 잘 보이도록 놓인 것도 있고, 구석에 숨겨 둔 것도 있습니다. 같은 불상은 없는 것 같았어요. 하나하나의 인상이 모두 다릅니다. 이게 뭘까? 하고 좀 찾아보니까 아마도 팔십팔 석불(西国八十八所の石仏)인가 봅니다. 구석구석 숨어 있는 석불들을 찾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만 구경했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걸으며 조금씩 산을 오르다 보니 어라? 갑자기 큰 찻길이 나옵니다. 그러더니... 엄청나게 가파르고 높은 계단이 나타났어요. 고민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거, 올라가는 게 맞는 걸까? 올라가면 타니야마 신사(谷山神社)가 있다고는 하는데... 정말 이 길이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뭐, 그렇다고 저에게 다른 선택지가 생기진 않더군요. 올라갔습니다. 천천히 한 계단씩 올라갔습니다.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점점 다리에 힘이 빠지고 후들거리는데, 계단의 경사가 너무 가파릅니다. 뒤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쇠로 된 난간을 꽉! 붙잡습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한 계단을 더 올라섭니다.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결국 계단을 모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지만 여기서 쓰러지면 정말 뒤로 굴러 떨어져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 같은 것이 저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올라갔더니 결국 조금 다른 방향에서 사쿠라지마를 바라보는 것... 뿐인가요. 게다가 뒤를 돌아보니... 주차장이 있습니다. 차로 올라올 수 있는 곳이었던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왜!!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계단으로 올라온 걸까요.


쏟아지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일단 경치를 구경합니다.





뭔가 이런 뷰 포인트도 있더군요.





결국 보이는 것은 가고시마 만과 사쿠라지마입니다. 역시 사쿠라지마는 가고시마의 상징 같은 것인가 봅니다.





아직 새해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러지 신사에는 참배객이 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죠. 저는 자판기에서 물이 아니라 에너지 드링크를 하나 뽑아서 마시고는 다시 산책을 계속 이어 나갑니다.





신사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 Cascade(이탈리아식 계단 분수) - 지겐지 공원 안내도에 진짜로 カスケード(イタリア式水階段) 라고 적혀 있음 - 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주 넓은 잔디밭이 있고, 잔디밭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습니다. 잔디밭 앞에는 가고시마 시립 지역사 박물관이 있어요. 공원이 넓고 예뻐서 아이들과 함께 와서 주말 오후를 보내기에 좋아 보이더군요.





그리고 공원 앞의 큰길을 따라 지겐지 역으로 돌아가는데 아까 봤던, 나의 목숨을 위협하던 계단을 다시 만났습니다. 천천히 큰길을 따라 돌아갔으면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필요는 없었던 것이군요. 그 사이에 두 명이나 저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부디 무사하기를...





천천히 걸어서 다시 지겐지 역입니다. 퇴근 시간과 하교 시간이 맞물렸나 봅니다. 가고시마 츄오 역까지 앉을 수 없었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말이죠. ㅠㅜ 어서 호텔로 돌아가 온천에 몸을 담가야겠습니다. 그래야, 마지막 밤에 다시 쇼츄를 마실 수 있을 테니까요.


아, 그래서 지겐지 공원은 가고시마 여행객들에게 추천할 수 있느냐? 고 한다면... 가볼 만한 곳이긴 한데, 우선순위가 낮습니다. 역시 가고시마 여행은 사쿠라지마와 센간엔이 우선이죠. 그리고 시내에 시로야마 전망대라던가 가고시마 시립 미술관 같은 곳들을 모두 다 둘러보고 나서 갈 곳이 없을 때, 한 번 즈음 가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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