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해맞이 여행 - [3부] 가고시마 쇼츄 여행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호텔에 들어가 온천에 몸을 담갔습니다. 역시 온천수는 생명의 물입니다. 다시 생기가 돌아왔어요. 오늘 저녁은 어디에서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컨시어지에 한 번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체크인할 때 도움을 주셨던 김 씨 성을 가진 한국분이 계시더군요. ‘쇼츄를 많이 가지고 있는 가게’를 소개해 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마 술을 안 드시는 분인가 봅니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일본 여성분을 데리고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여쭤봤습니다. ‘쇼츄를 많이 가지고 있는 가게’를 소개해 달라고. 그랬더니 알려주신 가게입니다. 야노지(家のじ)라는 이자카야입니다. 위치를 보니 어라? 유명 유튜버가 다녀갔다고 해서 들렀다가 실망한 그 이자카야 바로 옆 집이네요.
가게가 작아서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고 알려주셨었는데, 그런 걸 다 생각해서(?) 저는 오히려 늦게 방문했습니다. 8시 즈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아싸! 손님은 아예 저 혼자입니다. 시간 때문인지 그냥 제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게에 가기 전에 구글맵으로 조금 찾아봤거든요. 과거에는 코스 메뉴도 있었더군요. 하지만 오늘은 메뉴에서 코스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스터에게 혹시 코스 같은 걸 해주실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4천 엔짜리 그러니까 세금 포함해서 4,400엔짜리 코스로 구성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메뉴판과 씨름하기 싫어서 그걸로 부탁드렸습니다. 그래야 평소에 먹지 않던 것도 먹게 되지 않을까요?
한국에서도 쉽게 마실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청량하게 다이야메 소다와리로 시작했습니다. 목을 축이고 있으니 먼저 사시미 한 접시가 나오더군요. 도미, 방어 등살, 방어 뱃살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 방어의 기름 느낌이 평소에 먹던 것과 좀 다릅니다. 숙성 때문인가? 아니면 방어가 아니라 간파치나 여튼 뭐 좀 다른 애였을까? 여튼 사시미는 뭐, 그냥 평범했습니다.
다음 메뉴는 뭔가 생선을 바싹 구운 다음 끈적한 소스를 올린 것입니다. 뭐라고 설명은 해주셨지만, 사실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뭐 그게 중요합니까? 맛있는 게 중요하지. 너무 바싹 구워서 껍질 쪽이 과하게 타서 쓴 맛이 조금 느껴지긴 했지만 생선살 쪽은 괜찮았습니다. 탄내가 그리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어요.
예쁜 알바에게 마시기 쉬운 쇼츄를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해서 로꾸로 받았습니다. 어떻게 읽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이 가게에는 쇼츄가 꽤 많습니다. 그리고 쇼츄의 레이블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서 설명하는 ‘메뉴책’이 따로 있습니다. 특별한 몇몇 쇼츄를 제외하고는 한 잔에 660엔입니다. 모리이조가 가장 비싼데, 한 잔에 1,100엔이에요. 가장 흔한 몇 가지 쇼츄(시마비진, 미난카타 등)는 550엔이고요.
다음으로 나온 음식은 통통한 가자미 같은 생선의 조림이었습니다. 달달하고 끈적한 육수 위에 작은 새우튀김도 하나 올라가 있네요.
마스터에게 쇼츄 추천을 부탁하니 코토부키라는 쇼츄를 추천해 주시더군요.
예쁜 알바생은 독학으로 한국어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마스터가 알바를 급하게 부르더니, 공부한 걸 지금 써먹으라고, 연습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00라고 합니다. 라고 말하는데 발음이 엄청 좋더군요. 혼자 공부하면서 발음은 어디서 배웠을까요? 그래서 칭찬을 해줬습니다.
이후에도 뭔가 한국어로 얘기해주고 싶었으나, 마스터와 아저씨들의 얘기 그러니까 20여 년 전의 드라마나 영화 얘기, 만화 얘기들을 하느라 한국어를 써먹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아쉽게도.
다음으로 먼가 나베 요리가 나왔습니다. 토마토와 쿠로부타를 이용한 나베라고 합니다. 끓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는데요. 이게 참 맛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맛이냐면 고춧가루를 뺀 김치찌개 맛입니다. 고소한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 있고, 배추를 비롯한 야채가 가득합니다. 거기에 토마토로 감칠맛을 낸 거죠. 그러니까 결국 김치찌개와 비슷한 맛이 됩니다.
마스터에게 하나 더 추천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목표 중 아직 마시지 못했던 마오가 이 가게엔 있더군요. 물론 가격은 660엔. 결국 마지막 밤에 여행의 목표를 모두 달성하게 됐습니다.
마오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강함’과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술이었습니다. 엄청나게 향긋하고 가벼운 쇼츄였어요. 소다와리로 마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마스터와 마오의 맛에 대해 얘기하다가 ‘마오’의 ‘마’가 ‘악마’의 마 자가 아니라 ‘마법’의 마 자 같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맛이 마법 같은 맛이라고요. 3M 중에서 가장 가볍고 경쾌한 쇼츄입니다.
나베 요리의 마지막은 찌개에 밥 말아먹는 것이더군요! ㅎㅎ 배가 너무 불러서 모두 먹지는 못했지만 맛은 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잔은 향이 좋은 쇼츄의 소다와리를 부탁했는데 와인 맛이 난다면서 주신 쇼츄에선 정말로 희미하게 레드 와인의 맛이 느껴집니다. 이게 정확하게는 와인의 맛이 아니라 ‘타닌’의 느낌이더라고요. 하지만 머릿속에서 타닌은 와인을 마실 때 주로 느꼈던 것이니까 이 맛을 와인 같다고 착각하게 된다고 마스터가 알려 줍니다. 가만히 가만히 음미하며 마셔보니 그래, 와인의 맛이 아니라 자색 고구마의 맛이 납니다. 재밌는 쇼츄였어요.
음, 이 가게, 야노지는 엄청나게 대단한 가게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만족도를 조금만 낮추고 보면 마스터의 손맛이 있는 가게입니다. 쇼츄의 종류도 많고요. 아마도 가고시마에 다시 가게 된다면 한 번쯤은 들를 가게일 것 같습니다.
2차이자 가고시마 여행에서의 마지막 쇼츄를 마실 가게는 역시 SAO입니다. 이번 가고시마 여행 3일 모두 방문한 곳이네요. 앉자마자 첫 잔으로 만젠의 마에와리를 마십니다.
이곳 마스터 덕분에 만젠의 팬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얘기를 꺼냈더니 만젠의 빈티지 보틀을 꺼내오십니다. 당연히(?) 한 잔 마셨죠. 어라? 보틀이 자꾸 나옵니다. 만젠의 빈티지 보틀 3병(한 병은 만젠안이긴 하지만)과 백누룩인 미즈타케의 큰 병(5년 숙성한 것), 만젠의 겐슈(원주, 물을 섞지 않은 것) 등등 전부 꺼내오시고서는 ‘이것이 만젠의 전부입니다!‘라고 뿌듯하게 말씀하시네요. ㅎㅎㅎ
만젠의 겐슈는 너무 궁금해서 한 잔 마셔봤습니다. 아무래도 물을 섞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술의 개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겐슈겠죠. 마냥 구수한 맛은 아니고 날카로운 모습이 살아 있는 겐슈 특유의 강한 모습도 있습니다만, 역시 만젠은 만젠입니다.
다음 잔으로는 만젠의 겐슈로 담갔다는 우메슈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주 큰 인상이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슬슬 마지막 잔을 마시려고 소다와리를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뭔가 또 특별한 것을 보여주십니다. 일단 소다와리라고 하면 술에 소다수를 섞은 거잖아요? 헌데 이 소다와리는 좀 다릅니다. 마에와리에 탄산을 그대로 ‘주입‘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술에 물을 먼저 섞고 거기에 탄산을 넣어 버린다는 거죠.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잔의 입구에는 ’피티드 쇼츄‘를 살짝 뭍혀서 향을 입힙니다. 음? 피티드 쇼츄요? 하고 여쭤보니 사쿠라지마의 용암이 흘러내려 식은 돌을 가열해 거기에 고구마를 태우듯 익히고 그걸로 쇼츄를 만들면 위스키에서 나는 피트향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짝 맛도 보여주셨어요. 와, 정말 엄청난 소다와리입니다. ㅎㅎ
맛이요? 물론 설명해 주신 모든 게 다 느껴집니다. 일단 베이스가 마에와리니까 술의 요소요소들이 동글동글 부드럽게 어우러진 와중에 소다가 들어가서 상쾌해졌는데, 그 첫맛은 마치 피트 위스키 같은 탄 향이 함께 들어오면서 복잡한 레이어를 만든달까요?
마지막 밤을 멋지게 장식해 주시면서, 떠나는 걸 아쉽게 만들어 주시네요. 허허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은 라멘 단보가 장식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구마모토로 돌아가 좀 더 느릿느릿한 여행, 아니 여행이 아닌 생활이 기다리고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