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좋은 날, 성곽길

한양도성 낙산구간

by zzoos




아직 찬바람이 불기 전, 그래서 산책하기 좋았던 완연한 가을이었던 시절. 겨우 두세 주 전의 이야기인데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때. '이런 좋은 날씨는 흔하지 않아. 이럴 때 자꾸 산책하러 나가야 해!'라는 강박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의 을지면옥. 여전히 맛있어요.




점심은 을지면옥에서 먹었어요. 새로 올린 건물에서 처음 먹는 것이었네요. 여전히 맛있는 곳입니다.




서순라길은 예쁘지만, 왠지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




점심을 먹고 나서 서순라길을 구경했습니다. 궁금했어요. 요즘 그렇게 핫하다던데. 하지만 저에게는 큰 감흥을 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예쁜 카페가 많은 길이었어요. 종묘의 서쪽 담벼락을 따라 걸었습니다. 카페 앞에 앉아 담벼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은 불편했습니다. 길이 별로 넓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시선이 얽힐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들도 저와 비슷한 수준으로 불편하지 않았을까요.


월요일이라 문을 닫은 가게들도 많아서 그 '힙한'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는 없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저와 어울리는 골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종묘 외대문의 잡상


종묘 외대문 위로 멀이 보이는 북한산




종묘 앞에서는 언제나 사진을 찍게 됩니다. 외대문 위로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풍경은 꼭 사진에 담아두고 싶은 풍경이에요. 마침 날씨도 너무 좋아서 이런 날은 뭔가 하나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상옥 의사 기념 사업회


서울 복음 교회




김상옥로를 따라 한양도성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연동교회와 효제초등학교가 있는 이 길은 독립운동가인 김상옥 의사의 이름을 딴 길입니다.







한양도성박물관 옆길을 따라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드디어 성곽길이 나옵니다. 아마 이 구간이 한양도성 낙산구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곽길을 제대로 걸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잠깐씩 구경한 적은 있을지 몰라도 이렇게 제대로 코스를 따라 걷는 것은 처음이에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남산 타워를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것 같은 거.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사람에게 서울의 관광 명소들은 '일부러 찾는 곳'은 아닙니다. '언제든 쉽게' 갈 수 있기 때문에 평생 가보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곳들인 거죠.







굳이 이유를 만들어 보자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입니다. 루미와 진우가 몰래 만나는 곳이 바로 성곽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낙산 구간이죠.







지도를 보면서 서울 곳곳의 산책 계획을 짤 때 한양도성 낙산구간에 눈이 간 것은 분명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장면을 내 눈으로도 보고 싶다는 이유는 아닙니다. 정말로 외국인이 많이 찾아오는지 궁금했습니다. 물론, 저도 아직 못 가본 곳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외국인이 많았습니다. 평일 낮이니까 관광객의 시간이기는 하죠. 약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를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들은 동네 주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인이었습니다. 대략 20여 명 정도를 마주쳤던 것 같아요. 분명히 외국인이 많긴 하더라고요. 그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이 길을 알고 찾아오셨나요?'라고 물어보지는 못했거든요.







서울시의 한양도성 홈페이지에는 성곽길 각 구간의 난이도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낙산 구간은 난이도 하(下) 구간이에요. 아무리 난이도가 낮다고 하더라도 오르막 구간이에요. 평지를 걷듯이 마냥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중간중간 벤치나 정자 같은 것들도 있고, 물을 마실 수 있는 음수대도 있습니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른편으로는 멀리 창신동이 보입니다. 왼편에는 성곽을 따라 작은 찻길이 있고, 찻길 앞에는 민가들이 붙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관광객이 많아져서 그런지 카페나 식당을 만들기 위해 공사 중인 곳도 많이 보입니다.







낙산공원에 가까워지면 예쁜 카페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이화동 골목을 구경할 수 있죠. 이번에는 이화동을 코스에 넣지 않았는데, 다음에는 이화동을 구경하러 한 번 가봐야겠어요.







낙산 공원에 도착하면 드디어 오늘의 코스가 끝납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면서 경치를 구경하다 보면, 오늘 참 잘 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을지면옥부터 시작한 이 코스가 나름 좋은 코스였다는 스스로의 피드백으로 마음이 뿌듯합니다.




대학로는 변했지만 마로니에 공원은 그대로




이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낙산공원에서 마로니에 공원으로 내려갑니다. 젊은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동네예요. 하지만 많이 변했네요. 예전의 활기차던 대학로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어요. 그나마 마로니에 공원은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네요.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이후의 계획을 구상하면서, 오늘의 산책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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