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환기미술관
환기 미술관에 처음 갔던 게 언제였더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이십 대 후반이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고교 시절에는 아직 미술관이 생기기 전이었고, 대학 시절엔 미술관을 즐겨 찾지 않았습니다. 이십 대 후반에 니콘 FE를 들고 주말마다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던 시절, 환기 미술관과 클럽 에스프레소가 하나의 코스였고, 성곡 미술관과 미술관 카페가 하나의 코스였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던 날,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감동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네요.
환기 미술관은 주로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전시합니다. 미술관의 이름도 거기서 딴 것이죠. 가끔 다른 작가의 특별전이 열리기도 하지만 특별전이던 상설전이던 주로 김환기 화백의 작품 전시가 주력인 미술관이에요. 그래서 좋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언제 봐도, 다시 봐도 좋거든요.
김환기 화백에 대한 설명은 위키피디아의 설명 중 일부를 가져와 대신합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위키피디아에 가서 확인해 보세요.
한국의 서양화가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다. 김환기는 추상 계열에서 벗어나 구상을 추구하면서도 오히려 조형수단의 자율적인 표현을 추구했다. 또한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면, 선, 형태, 색채, 리듬 등으로 대상을 조형적으로 새롭게 표현했다.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오늘은 부암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번 부암동에 갔을 때, 환기미술관이 휴관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는데, 재개관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클럽 에스프레소 앞을 지나고, 동양 방앗간 앞을 지납니다. 환기 미술관을 향하는 골목은 예전과 조금은 다른 모습입니다. 얼마 만에 다시 찾는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환기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습니다. 특히 건물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건물 외부의 사진을 더 많이 찍었습니다.
환기 미술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이 좋고, 미술관이 위치한 부암동의 분위기도 좋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다른 것입니다. 미술관 건축 자체가 좋습니다.
1994년 이수근 건축상을 받은 환기 미술관은 우규승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하는데요. 메인 전시실의 1, 2, 3층을 관통하는 커다란 큐브와 그 주위를 둘러싼 계단이 중심입니다. 큐브에서 출발해 1층에는 커다란 부채꼴을 옆으로 붙이고, 3층에는 그 위에 두 개의 볼트를 얹는 등 단순한 조형 언어들을 조합한 디자인인데요. 단순한 조합으로 작고 복잡한 대지에 대응하면서 다양하고 재밌는 외부 공간들이 만들어집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장면은 1층 전시실의 큐브 중심에 서서 양쪽으로 돌아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완전한 백색의 벽면과 천장은 3x3의 정방형 큐브를 떠올립니다. 그 큐브의 한쪽 면에는 양쪽으로 돌아 올라가는 계단의 시작점을 슬쩍 보여주는 슬릿이 위치합니다. 이 장면은, 환기 미술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요. 누구든 이 장면을 보고 나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 거라고 장담합니다.
하지만 미술관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장면은 언제나 눈과 마음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언제나 1층 전시실 한가운데 한참을 서 있는 이유입니다.
현재는 [Whanki_심상의 풍경: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그 외에도 별관과 달관에서 김환기 화백의 일본 시절과 브라질 시절에 대한 자료도 전시 중인데, 전시관이 좀 작긴 하지만 평소엔 보지 못하던 특별한 자료들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환기 미술관은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곳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보니 칭찬을 계속하게 되는데요, 아직 방문해보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면 꼭 방문해 보세요. 제가 왜 이렇게까지 칭찬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시를 관람하고 나니 오후 4시가 살짝 지났더군요.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싶어서 강석종에 다시 들렀습니다. 환기 미술관에서 강석종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 왠지 앞으로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