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부암동의 작은, 동네 술집

부암동 산책 (4/4) - 강석종

by zzoos




어쩌면 '산책'이란 것은 핑계일 지도 모릅니다. 전시를 관람하거나 숲길을 걸으면서 몸을 좀 피곤하게 만든 다음 마지막 코스, 즉 술을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한 준비작업일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다고 해야겠네요. 산책이란 음주의 준비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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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암동 산책의 메인 코스는 바로 이곳입니다. 강석종. 큰 길가에 보이는 작은 술집.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시는 곳입니다. 메뉴의 종류도 그리 많지 않은 곳이에요. 가격도 비싸지 않고요. 많은 분들이 '우리 집 앞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작은, 동네 술집.




사장님의 성함으로 전각한 간판




가게 이름은 사장님의 성함이라고 합니다. 간판은 그걸 그대로 나무에 전각해서 걸어두셨네요. 좋은 느낌의 간판입니다. 가게의 인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크라고 해야 할까요? 가게 안에 걸린 깃발에 문장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요. 그것도 사장님의 성인 '강(姜)'을 도안화 한 것입니다.




부타피망. 피망 위에 고기민찌를 올려서 먹는다.


전복찜. 아래엔 내장 소스가 깔려있다. 서비스로 초양념된 밥을 조금 주셨다.




강석종의 음식들은 일본풍이 강합니다. 제가 일본 음식이라고 하지 않고 일본풍이라고 말한 이유는 정통 일식을 표방하고 있는 음식이라고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타피망이라는 이름이나 전복찜과 내장소스를 쓰는 방식, 쯔께모노 등 일본 요리의 이름을 쓴다거나 일본의 방식으로 요리를 하고 계신 것은 분명한데,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동네 식당의 느낌이 섞여 있단 말이죠. 물론 저는 요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저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고사리 쯔께모노. 줄기 부분이 더 좋았다.


열무 쯔께모노. 시원하고 아삭한 느낌이 일품.


달걀 쯔께모노. 보기와는 다른 상큼한 산미 때문에 계속 먹고 싶은 맛.




사장님은 일본 여행을 다시면서 쯔께모노에 관심이 많이 생기셨다고 해요. 신선한 야채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느끼셨나 봐요. 그래서 다양한 쯔께모노를 직접 만들어 보신다고 합니다. 고사리, 열무 같은 쯔께모노는 처음 먹어봤어요. 둘 다 아주 맛있었고요. 심지어 달걀 쯔께모노도 만드셨더군요. 산미가 도드라져서 독특했지만 맛있었습니다.




얇은 잔에 시원하게 담긴 생맥주. 가격도 저렴하다.




저는 보통 이런 가게에 들르면 일단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합니다. 강석종은 이 첫 번째 맥주가 기분 좋은 곳이었어요. 일단 제가 좋아하는 잔을 사용하시더라고요. 이런 걸 우스하리 잔이라고 하죠. 아주 얇은 잔. 이렇게 비싼 잔을 사용하시면 잔이 깨질 때마다 마음이 아프시겠다고 여쭤봤더니 사장님도 이렇게 얇은 잔에 맥주를 마시는 걸 좋아한다고 하시면서 손님께도 그렇게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시더군요.




하루시카 스즈로


갓산 토쿠베츠 준마이 이즈모


키노에네 준마이긴조 하나야카 타쿠미노카오리


키쿠노츠유 VIP 골드


쉬어가는 타임으로 레몬 사와 한 잔


키노에네 준마이긴조 나츠노카오리


갓산 토쿠베츠 준마이 이즈모 한 잔 더


샤베이 더블 앤 트위스티드




대여섯 종류의 니혼슈를 잔술로 마실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 종류는 자주 바뀌겠죠. 저도 네 종류 정도 마셔봤습니다. 위스키도 한 종류 마셨고, 서비스로 고쥬도 한 잔 마셨습니다. 각각의 시음 노트는 인스타에 올렸던 걸 그대로 가져와 봅니다.




- 하루시카 스즈로 白鹿 すずろ
저렴하고 마시기 편한 니혼슈. 일반주라 주정을 사용했을 거라서 좀 튀는 알콜의 맛이 있다.

- 갓산 토쿠베츠 준마이 이즈모 月山 特別純米 出雲
내가 싫어하는 쌀맛이 없어서 좋다. 첫맛은 상쾌하고 뒷맛은 화사한 단맛.

- 키노에네 준마이긴조 하나야카 타쿠미노카오리 甲子 純米吟醸 華やか匠の香り
하루에 두 번이나 내가 싫어하는 맛이 없는 니혼슈를 만나다니! 갓산보다 보다 덜 달고 더 깔끔하다. 풍성한 과일향에 약탄산감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단맛.

- 키쿠노츠유 VIP 골드 菊之露 VIP ゴールド
백바에 보이길래 판매하시는 건 줄 알고 여쭤봤다가 괜히(?) 조금 서비스로 얻어 마신 고주. 오키나와의 아와모리 중 3년 이상 숙성한 것들만 고주라고 이름이 붙는다.

- 쉬어가는 타임으로 레몬 사와 한 잔. 탄산수에 레몬을 살짝만 입힌 가벼운 느낌.

- 키노에네 준마이긴조 나츠노카오리 甲子 純米吟醸 夏の香 (여름한정)
같은 브랜드의 여름 한정판. 시원하고 깔끔한 느낌이 좋다.

- 갓산 토쿠베츠 준마이 이즈모 月山 特別純米 出雲 를 한 잔 더
역시 좋았다고 한 잔 더 마시면 느낌이 좀 다르다. ㅠㅜ

- 샤베이 더블 앤 트위스티드 Charbay Doubled & Twisted
캘리포니아의 위스키. 독특하게 맥주를 먼저 만들고 맥주 자체를 증류했다고 한다. 게다가 맥주는 세 종류나 섞었다고. 처음 마시고는 위스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깔바도스나 꼬냑 같은 느낌. 기존의 위스키와 아예 결이 다르다. 아주 특이한 위스키.




오후 4시에 오픈한다는 걸 보고 방문했는데, 정말 오후 4시에 가게가 열려 있더군요. 덕분에 이른 시간부터 눈치 보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천천히, 이것저것 먹고 마시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네 시간 정도 마신 것 같네요. 일찍 마시고 일찍 끝내니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도 무겁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마신 술을 전부 앞에 세워두웠더니, 장관이 되어버렸네;




부암동에 산책 가실 일이 있다면 참고하실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녁 먹기엔 좀 이른 시간에 좋은 잔에 시원하게 따른 생맥주 한 잔의 유혹은 쉽게 뿌리치지 못하실 겁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거든요. 저는 다음에 부암동을 다시 방문할 때 꼭 여기서 맥주 한 잔을 마실 생각입니다. 그렇게 자리 잡고 앉아서 계속 마시게 될까 봐 걱정이긴 하지만요.




ⓒ All photos taken by zzoos on an iPh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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