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사가입니다.

2026 카라츠와 요부코 - #1 프롤로그

by zzoos




2017년의 큐슈 일주를 포함해, 웬만한 큐슈는 다 가봤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제가 아직 사가현(佐賀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지어 큐슈를 일주하면서도 빼먹었던 거죠. 사가현에서 유명한 도시를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빼먹을만해서 빼먹은 건가 싶기도 합니다. 여행 중 만났던 일본인들도 '그럴만하다'는 반응이기도 했어요.


이번에 여행을 계획할 때, 사가현이 떠올랐습니다. 후쿠오카 바로 옆인데 이상하게 유명하지 않은 동네, 이번엔 거길 가보자. 일단 사가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역시 사가시(佐賀市)입니다. 현청소재지이기도 하고 현 내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만, 아무래도 여행으로 방문하기에는 재미없는(?) 도시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그래서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들을 찾아보니 카라츠(唐津)와 우레시노(嬉野)가 물 위로 떠오릅니다.


※ 이번 여행기에서 唐津 Karatsu 에 대한 한글 표기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가라쓰'대신 일본어 발음과 영어 표기를 기준으로 실제 발음에 더 가까운 '카라츠'로 통일합니다.




하도미사키에는 소라구이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계신다.




작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시오타(塩田) 강변의 모습이 매력적일 것 같은 우레시노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더군요. 봄을 기다리는 겨울의 시기에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만 저는 이번 여행의 목적지를 카라츠로 결정했습니다. 구글맵을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요부코(呼子)와 하도미사키(波戸岬)를 봐버렸거든요.


여행 다큐멘터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주도의 올레길을 벤치마킹해 큐슈에서도 '올레길'을 만들었다는 얘기. 여러 코스 중 카라츠 코스의 종착점이 바로 하도미사키였어요. 그리고 그곳에는 낡은 나무 건물에서 아주머니들이 소라를 구워주는 풍경이 있었고, 제 뇌리에는 그 장면이 깊이 남아 있었어요. 바로 그 소라구이가 먹고 싶어 졌습니다.


네, 여행의 목적지는 이렇게 순간의 기분으로 결정하는 거죠. 그런 겁니다. 꽂히면 가야죠.


※ 참고로 규슈 올레길 홈페이지에서 카라츠 코스를 찾을 수 없더군요. 검색해 보니 2017년에 폐쇄했다는 얘기도 있고, 2025년에 종료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현재 '올레길'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봅니다.




살아 있는 오징어를 그대로 투명하게 회를 떴다. 이게 바로 요부코 이카.




큐슈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오징어를 살아 있는 그대로 회를 떠서 다시 원래의 모양 그대로 접시에 옮겨 담은 오징어회, 즉 이카 이케즈쿠리(イカ活け造り)를 취급하는 이자카야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카 이케즈쿠리는 요부코에서 특히 유명해지면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카 이케즈쿠리를 요부코 이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이것도 유명한 곳에서 한 번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이었어요. 하도미사키와 요부코. 뭔가 여행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이 두 곳을 목적지에 넣고, 카라츠에서 며칠 지내는 걸로 계획을 잡으니 대략적으로 이런 스케줄입니다.


후쿠오카 공항 → JR로 카라츠 → 버스로 요부코 → 1박 → 버스로 하도미사키 → 버스로 카라츠 → 이후 카라츠 3박 하면서 천천히 둘러보기 → JR로 후쿠오카 공항 → 귀국


자, 여행의 윤곽이 잡혔으니 그다음은 실행입니다. 요부코의 료칸, 카라츠의 호텔을 예약하고 후쿠오카까지 갈 비행기를 예매했습니다. 그렇게 드디어 2026년 2월 10일.


다시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차 시간이 맞지 않아서 메이노하마역에 내려 지쿠젠마에바루역까지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했다.



10시 50분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12시 30분 정도에 후쿠오카에 착륙했고, 입국 수속을 마친 다음 오후 1시 50분 즈음에는 국내선 청사의 지하철역에서 메이노하마(姪浜)로 가는 전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시간을 잘 맞춘다면 지쿠젠마에바루(筑前前原)까지 바로 가는 걸 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필이면 제가 탄 건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 열차였어요.


메이노하마역에는 오후 2시가 좀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내렸던 플랫폼과는 다른 곳에서 지쿠젠마에바루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습니다.




지쿠젠마에바루역에서는 드디어 카라츠까지 가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지쿠젠마에바루역에 도착하니 바로 옆 플랫폼에서 오후 2시 40분에 출발하는 카라츠행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이게 두 번째 환승이네요.


사실 공항에서 카라츠까지 아예 환승 없이 직통으로 쭉~ 가는 기차가 있기는 있다고 하는데, 평일 기준 하루에 두 번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딱 두 번이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여행의 경우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추기보다는 공항 - 메이노하마 - 지쿠젠마에바루 - 카라츠 코스로, 대략 1~2번의 환승을 염두에 두는 것이 속 편할 것 같아요.


참고로 공항에서 가라츠까지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치쿠히선을 타면 편하게 갈 줄 알고 버스를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시간이 잘 맞으면 이게 더 나을 수도 있겠네요.


결론적으로 카라츠까지 가는 건 '시간이 잘 맞으면' 빠르고 편한 방법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러 번 기차를 갈아타고 좀 오래 걸려서 가야 한다. 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그 코스를 겪고 있고요.


그나마 위안이라면 요부코까지의 모든 구간에서 아이폰에 등록해 둔 ICOCA 카드가 통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용하던 교통 카드와 일본의 교통카드 둘 다 '익스프레스 교통카드'로 설정해 두어도 됩니다. 일본에서는 ICOCA 카드로, 한국에서는 T MONEY 카드로 알아서 결제되더라고요.




몇 번 기차를 갈아타다 보니 이제는 시골 기차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지금까지는 꽤 깔끔한, 신식 지하철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쿠젠마에바루에서 갈아탄 기차는 시골의 낡은 기차 느낌입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낡은 기차의 덜컹거림과 낯선 냄새. 흐리기만 하던 창 밖으로는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낡고 덜컹거리는 기차의 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흐리기만 하던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행기, 버스, 기차를 갈아탈 때마다 조금씩 색깔과 냄새와 소리가 달라지고 있었던 걸, 이제야 확연하게 깨닫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서서히 저는 일상에서 여행으로 스며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낡은 기차의 창 밖으로 겐카이나다(玄界灘) 그러니까 익히 현해탄(玄海灘)으로 알고 있는 그 바다가 보일 때 완전하게 여행 모드의 스위치가 켜졌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카라츠역.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버스 정류장. 빨간 트렁크는 내 것.


구글맵으로 버스 시간을 체크했지만, 정류장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현금으로 버스를 탄다면 반드시 뽑아야 하는 세리켄(整理券). 교통카드는 탈 때와 내릴 때 모두 터치.




드디어 카라츠역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어요. 오늘은 요부코까지 가야 하거든요.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지 몰랐습니다. 구글맵으로 검색해 보고는 '오호, 공항에서 기차 한 번만 타면 카라츠까지 갈 수 있고, 거기서 버스 타고 잠깐이면 되는구나!'라고 아주 쉽게 생각했거든요.


자, 카라츠역에서 요부코까지 가는 버스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카라츠역 앞에서 바로 출발하는 버스고 이건 약 35분 정도가 걸립니다. 다른 하나는 카라츠의 모든 버스가 모이는 곳인 오테구치(大手口)에서 출발하는 버스고 이건 좀 돌아가는 버스라서 약 50분 정도가 걸립니다.


마침 저는 운이 좋게 카라츠역 앞에서 바로 출발하는 버스랑 시간이 맞았습니다. 럭키!




어쩌면 내일 타게 될지도 모르는 유람선


조용한 항구 도시 요부코의 첫인상




오후 4시가 넘어서, 드디어 요부코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은 흐리지만 어느새 비가 그쳤어요.


요부코는 정말 작은 항구였습니다. 완전하게 조용하고 고요한 곳이었어요. '이제! 드디어! 집에서 나선 지 12시간 만에 도착했다!!'는 안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오늘 예약한 료칸까지 걸어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바로 이곳이 요부코


멀리 보이는 요부코대교(呼子大橋)




료칸까지, 금방 걸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구글맵에서 도보로 27분이나 걸린다고 표기되어 있는 걸 왜 무시했을까요? 심지어 마지막 구간에는 꽤 심한 오르막길도 있어서 트렁크를 끌고 올라가기가 꽤 힘든 길이었습니다. 짐을 끌고 걸었더니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어요.


비가 그쳤으니 다행이지 비가 계속 오고 있었다면 '료칸까지 걸어가겠다'는 결정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후회했을 겁니다.


결국 내일 체크아웃하면서 알게 되는데요, 제가 버스 내렸던 곳에서 료칸까지 버스가 있더군요. 다만 배차 간격이 아주 길어서 시간이 잘 맞아야.... 어쩌면 오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시간이 잘 맞아야 된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일정 규모 이하의 작은 도시들을 여행할 땐 '버스 시간 확인'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자그마치 30분이 넘는 시간을 걸어서 드디어!!! 료칸에 도착했다.


다다미 6조의 전형적인 료칸 객실. 낡았지만 깔끔하다.




드디어 오늘의 숙소인 오노우에 료칸에 체크인했습니다. 저녁 식사는 6시에 예약을 해두었으니 일단은 욕탕에 가서 씻기로 합니다. 아, 이곳은 온천은 아닙니다. 그냥 대욕장이 있을 뿐이에요. 요부코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료칸을 예약한 이유는 바로 위에서 설명한 요부코 이카를 먹기 위해서입니다. 료칸에서의 저녁 식사에 바로 요부코 이카가 나오거든요. 욕탕에서 씻고, 잠깐 쉬고 있으면 드디어 저녁 식사를 하게 되겠죠. 기대가 아주 큽니다. 후후.


자, 이곳 오노우에 료칸에서의 저녁 식사는 다음 포스팅에 정리해 볼게요. 이미, 이 포스팅은 너무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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