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가라쓰와 요부코 - #19 노미도코로 후지야
4박 5일 중 세 번째 저녁입니다.
오늘은 이자카야 같은 곳에서 저녁을 먹고 싶었어요. 맛있는 사가의 니혼슈도 함께라면 좋겠죠.
그런 마음을 가지고 구글맵을 탐색하고 있는데, 후지야(ふじや)라는 가게가 눈에 띄었습니다. 인기가 많은 가게라기보다는 숨어 있는 현지인들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리뷰의 숫자도 적었기 때문에 미리 알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적었습니다. 타베로그에는 아예 등록도 안 된 가게더라고요.
뭔가 촉이 왔습니다. 모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꽤나 자주, 이런 식으로 '맛집을 찾아내는 촉'이 발동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가게 앞에 도착하니 지도를 보지 않았다면 절대 찾을 수 없었을, 그런 가게입니다. 간판에 안쪽에 숨어 있어서 가게라기보다는 일반 주택처럼 보여서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이더라고요.
노미도코로(呑処) 후지야(ふじや).
'呑処'는 '飲み処'를 예스럽게 쓴 것이라고 합니다. 직역하자면 '마시는 곳', 즉 '술 마시는 곳'이라는 뜻이니까 결국 '술집'이라고 써 둔 거네요. 이자카야(居酒屋)나 사카바(酒場)라고 하지 않는 것도 뭔가 색다른 느낌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손님은 없고, 주인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혼자 맥주를 마시고 계시더군요. 제가 한 명이라고 말하니까, 이곳은 예약 손님만 받는 곳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예약만으로 운영을 하니까 거리에 간판을 꺼내둘 필요도 없는 곳이었던 거네요.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가게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그렇다면 어디에서 저녁을 먹어야 할지 다시 구글맵을 들여다보는 순간, 주인장이 뛰쳐나오더니 일단 들어오라고 합니다.
이곳은 메뉴판이 없는 곳입니다. 술을 마시면서 먹기 좋은 제철 요리를 쥔장이 알아서 내주는 곳인 거죠.
예약을 했다면 더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준비해 뒀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재료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시네요.
첫 잔은 일단 이모 쇼츄(고구마 소주)를 소다와리(탄산수 섞은 것)로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토리레바(鳥レバー)가 나왔습니다.
닭의 간을 간장에 조린 거예요. 간 특유의 질감과 향이 있고 간장 덕분에 먹기도 편합니다. 약간은 퍽퍽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럴 때 쇼츄를 한 모금 마시면 싹~ 씻겨 내려갑니다.
쥔장이 고래 고기를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한국에도 고래 고기는 있으니까 먹어본 적은 있습니다만 그리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고개를 좀 갸우뚱거렸는데, 정말 맛있으니까 한 번 먹어보라고 권하시더군요. 그래서 좋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고래고기는 다른 고기를 잡다고 혼획되어 올라오는 경우에만 유통되니까 신선한 고기를 먹기가 힘들거든요.
그렇게 다음 접시는 쿠지라 아카미(クジラの赤身)가 나왔습니다. 고래의 붉은 살이라는 뜻인데, 참치처럼 꼭 등 부위를 말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지방이 없는 순살 부위를 부르는 말이라고 하네요.
위에 생강을 잔뜩 갈아서 올려주셨길래 냄새가 좀 있는 부위인가? 하고 걱정했지만 잡내 하나 없이 완전히 깔끔하고 상쾌한 맛에 놀랐습니다. 간장에 살짝 절인 것이 신의 한 수라고 할까요. 양을 너무 적게 주셔서 아쉽다고 생각이 들 만큼 맛있었어요. 지방이 없으니 씹기에도 부드러웠고요.
다음으로 나온 것은 칸파치(カンパチ)와 나노하라(菜の花)입니다. 잿방어랑 유채꽃을 간장에 살짝 절인 것이에요. 취향 저격 당하듯이 제가 좋아하는 생선과 야채가 나오네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퀄리티가 나온다면, 미리 예약하고 왔을 땐 얼마나 더 맛있는 걸 준비해 주실까요. 분명히 내공이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가심을 위한 소다와리를 다 마셨으니, 본격적으로 니혼슈를 마셔봐야겠습니다.
첫 번째로 추천받은 것은 이와노쿠라 준마이긴죠(岩の蔵 純米吟醸)입니다. 시치다(七田)로 유명한 텐잔주조(天山酒造)에서 한정적으로 유통시키는 니혼슈라고 하네요.
첫 한 모금을 마시고는 바로 납득했습니다. 이 가게의 니혼슈는 진짜구나.
요즘 유행하는 모던 계열의 니혼슈처럼 화려한 향을 내뿜지는 않습니다만, 쓸데없는 쌀의 잡맛이 느껴지지 않는 깔끔한 스타일입니다. 덕분에 마시기에도 편하고, 산뜻한 음식들과도 잘 어울립니다.
다음으로는 김을 조금 잘라서 내주셨습니다.
음? 그냥 김만 내준다고? 뭔가를 싸 먹으라는 뜻인가? 하면서 의아했는데, '아리아케해(有明海)에서 가장 좋은 김'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네요.
참고로 아리아케해는 사가, 나가사키, 구마모토로 둘러싸인 큐슈의 내해를 말합니다. 가라쓰는 사가현의 북쪽에 있어서 아리아케해에 맞닿아 있진 않아요.
조직이 치밀해서 맛있는 김이긴 했는데요, 솔직히 그렇게까지 극찬할 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좋은 김들을 매일 먹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타라노 시라코(鱈の白子), 그러니까 대구 이리는 일본에서 꽤 고급 식재료입니다. 한국에선 다양한 탕을 끓일 때 부재료처럼 사용해서 존재감이 약하잖아요. 일본에서는 제철이 되면 찾아서 먹을 만큼의 고급 식재료로, 가격도 꽤 비싸다고 알고 있어요.
신선한 대구 이리를 폰즈 소스 위에 올렸습니다. 신선한 이리는 잡내 없이 크림처럼 부드럽습니다. 일본의 대구와 한국의 대구가 다른 것이 아닐 겁니다. 신선한 것을 잘 조리해서 먹을 때의 맛이 좋은 거겠죠.
니혼슈를 한 잔 더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두 병을 가져오셨습니다. 조금씩 따라서 주시더니, 마셔보고 고르라고 하시더군요.
왼쪽 것은 요코야마 준마이긴조 초카라구치 실버 7(よこやま純米吟醸SILVER超辛7生詰)입니다. 이키섬(壱岐島)에 있는 오모야주조(重家酒造)에서 만든 모던 계열의 니혼슈라고 하네요.
이키섬은 행정구역상 나가사키현에 속하지만 가라쓰의 바로 북서쪽에 있는 섬입니다. 가라쓰에서 정기선이 운항하고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네요. 갑자기 나가사키의 술을 추천해 주신 것이 이해됩니다.
모던 계열이라 그런지 깔끔한 맛이 특징인데, 향이 꽤 치고 올라옵니다. 하지만 단맛은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초카라구치인데 향이 풍부하다는 독특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술이라고 합니다.
오른쪽 것은, 오오! 코우에이기쿠(光栄菊)입니다!
여기서 이것을 만났네요. 코우에이기쿠주조(光栄菊酒造)는 2019년에 완전 새로 부활한, 사실상 신규 양조장인데요. 사가의 아라마사라고 불릴 정도로 가장 핫한 모던 계열 니혼슈 중 하나라고 합니다. 신규인 데다가 생산 수량도 적어서 양조장의 홈페이지도 없이 인스타그램만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컬트한 곳이에요.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사가에 가면 마셔봐야 할 니혼슈를 몇 개 찾아봤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코우에이기쿠였습니다. 생각보다 가라쓰가 작은 도시라서 이런 희귀한 술을 마시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산미가 중심이 되는 모던 계열의 니혼슈. 향도 많이 올라오고 전반적으로 깔끔한 맛입니다. 이곳의 술들은 실험적인 것이 많다고 들었는데, 수카이는 오피셜 라인이라서 그런지 잘 정돈된 느낌도 있네요.
결국 두 종류 모두 한 잔씩 마셨습니다.
이곳, 후지야의 니혼슈 라인업은 아주 좋네요. 일반적으로 구할 수 없는 술들이에요. 유명 양조장의 술이더라도 한정적으로 유통시키는 라인이라거나, 너무 핫해서 구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잖아요. 이런 곳이라면 꼭 다시 한번 찾아가고 싶은, 그런 곳이네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쥔장 아저씨랑 얘기하다가 제가 아라마사랑 주욘다이를 좋아한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래서 모던 계열의 니혼슈들을 추천해 주신 걸까요?
카부 아사즈케(かぶ浅漬け)를 한 접시 주셨습니다. 순무를 가볍게 절인 것이라고 하는데요. 니혼슈에 잘 어울린다면서 내주셨어요.
우리나라에선 순무를 잘 안 먹잖아요? 일본에선 순무를 자주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익숙하지 않은 식감과 맛 때문에 여행 중이라는 기분이 들게 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물론, 말씀대로 니혼슈에 잘 어울렸고, 맛있었습니다.
이번 요리는 제가 알아듣는데 오래 걸린 요리입니다. 일반적인 부위가 아니라서요. 일단 아코야가이(あこや貝), 그러니까 진주조개는 우리가 자주 먹는 조개가 아니잖아요.
거기다가 그냥 가이바시라(貝柱), 그러니까 관자가 아니라 관자 옆에 있는 히모(ひも)라는 부위입니다. 정확하게 한국어로 대응하는 부위가 없는 것 같아요. 언젠가 서천에서 젓갈을 살 때 '조개띠젓'이라는 걸 산 적이 있는데, 가리비 관자를 둘러싸고 있는 부위로 만든 젓갈이었거든요? 아마 그런 것과 비슷한 부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튼, 이거 술안주로 좋네요. 관자랑 비슷하면서도 더 쫄깃한 느낌인데, 감칠맛이나 고소함이 아주 좋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가라쓰에서 시라스(しらす), 그러니까 뱅어를 먹으려면 아직은 이르냐고 여쭤봤습니다. 물론 제가 여쭤본 건 나마시라스(生しらす)를 후루룩 마시듯이 먹는 걸 물어본 거죠. 그건 5월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시더니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서 접시에 담아 주십니다. 나마시라스는 아니지만 시라스를 삶아서 살짝 말린 거네요. 옆에는 매운 무를 갈아 간장을 살짝 뿌려서 함께 올려 주셨습니다.
이것도 좋은 안주가 되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에서, 쥔장 아저씨와 둘이서 얘기하면서 만들어 주시는 안주들을 먹는 게 좋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재료나 요리들이 범상치 않고, 특히 니혼슈 리스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예약 손님만을 받는 곳인데, 우연히 예약 없이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