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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Mar 11. 2020

7. 후쿠오카에서 사세보로

하카타 라멘을 먹은 다음 사세보 버거를 먹으러

옷차림은 여름의 여행인데 날씨는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지막이 일어났다. 피곤이 쌓여있던 것일 수도 있겠다. 호텔을 나서는데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치길래, 워낙 셀피를 찍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의 여행 복장을 한 번 찍어둘까? 하는 마음으로 한 컷 남겨두었다. 가벼운 흰 티셔츠와 편안한 청바지 그리고 언제나 나의 여행을 함께하는 줄무늬 빅백.


여행을 시작한 곳이 저~ 먼 남쪽의 오키나와 미야코섬이다 보니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있었는데, 10월 중순에 접어든 큐슈는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고 있었다. 어차피 여행 일정이 초겨울까지 이어질 거라서 여행 중간에 외투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그 시점이 좀 빨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캐널시티 하카타. 좀 오래된 쇼핑몰이긴 한데, 라멘 스타디움 때문에 가끔 들르는 곳이다.


호텔을 나서서 곧장 캐널시티()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형 쇼핑몰에서 외투를 구입하고 점심도 해결하겠다는 깜찍한(?)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겨울 외투가 많이 비싸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옷도 없어서 외투는 사지 못했다.


기본적인 수준은 되는 하카타 라멘. 쇼다이 히데짱. 이런 게 하카타 라멘이지!


어젯밤에 먹은 이치란 라멘이 너무X100 실망스러워서 더럽혀진 입을 씻으러 캐널시티 5층에 있는 라멘 스타디움에 들렀다. 전국의 가게가 모여있는 라멘 편집샵(?) 같은 곳인데, 매출이 떨어지는 가게를 탈락(?) 시키고 새로운 라멘을 입점시키며 퀄리티를 유지한다고 알려진 곳이다.


이번에 선택한 곳은 쇼다이 히데짱(初代 秀ちゃん). 진한 돼지 국물에 얇은 면을 사용하는 하카타식의 라멘. 입구에 있는 자판기에서 가장 기본 라멘을 선택하고 반숙 계란을 하나 추가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티켓을 건네며 면을 카타멘(かた麺)으로 주문했다. 참고로 카타멘은 살짝 덜 익혀서 심지가 살아있는 면을 말한다. 스파게티의 알단테를 생각하면 될 듯. 나의 취향은 국물을 찐하게 한 다음 카타멘으로 먹는 것.


잠시 후에 받아 든 한 그릇의 라멘은 '아! 그래! 이게 나의 취향이야!'라고 외칠 만큼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젯밤에 먹은 엉망진창 라멘으로 더러워진 입을 깔끔하게 씻어줄 수 있는 정도의 맛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하카타 역(좌), 헷갈리면 안 되는 미도리 익스프레스(우)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나서 캐리어를 질질 끌고 하카타  역까지 걸었다. 숙소(나카스) - 캐널시티 - 하카타역. 커다란 가방을 메고 걷기엔 좀 멀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거리였지만 천천히 걷다 보니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후쿠오카현에서 바로 나가사키현으로 넘어갔다. 중간에 있는 사가현은 가본 적이 없네...


하카타에서 출발해 사세보까지 달리는 '미도리 익스프레스'에 앉아서 어젯밤 정리한 내일과 모레의 일정을 다시 한번 체크해봤다.


내일은 늦잠을 자고 싶다. → 체크 아웃을 뒤로 미워야 하니까 → 2박을 해야겠군.

구쥬구지마를 구경 하려면 전망대를 돌아다녀야 하니까 → 렌터카 예약.


사세보 역에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 호텔을 예약하고, 내일은 렌터카도 하나 예약했다. 참고로 렌터카 예약은 영어로 된 International 앱을 이용하면 훨씬 비싸다. 나 같은 경우는 자란넷(www.jalan.net)을 이용해서 렌터카를 예약했는데,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고 일본어 번역 페이지의 도움을 받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예약할 수 있었다. 외국인이라 안 빌려주는 거 아냐? 하고 걱정을 좀 했지만 여권만 있다면 본인 확인 과정이 그리 복잡하지도 않았고 이후에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아, 그리고 사세보까지 가는 '미도리 익스프레스'를 탈 때에는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하우스텐보스 익스프레스'와 헷갈리면 안 된다. 하카타 역에서는 미도리 익스프레스(녹색)와 하우스텐보스 익스프레스(빨간색)가 각 4량씩 총 8량이 함께 출발한다. 그러다가 중간에 하이키 역(早岐駅)에서 두 열차를 분리해 하우스텐보스 익스프레스는 남쪽으로 미도리 익스프레스는 서쪽으로 출발한다.


다시 말해서 사세보에 갈 건지, 하우스텐보스로 갈 건지 목적지에 따라 '동시에 출발하는 기차'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열차를 탑승해야 한다는 것. 사세보 방면은 녹색, 하우스텐보스 방면은 알록달록한 붉은색 열차다.


사세보 역 1층에는 유명 사세보 버거 체인인 로그킷이 있다.


약 두 시간을 달려서 드디어 사세보 역(佐世保駅 )에 도착했다. 처음 방문하는 도시에 대한 왠지 모를 긴장감과 기대감을 안고 기차에서 내리니 '아! 역시 사세보인가!' 싶은 느낌이다. 대합실 1층에 바로 사세보 버거 체인점이 있다!


사세보 버거는 특정 브랜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제주 흑돼지를 제주의 특산물이라고 말하지만 '제주 흑돼지'라는 체인점이 있는 것은 아니고 흑돈가, 칠돈가 등등의 브랜드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의 사진에 있는 체인은 로그킷이라는 사세보의 유명 체인 중 하나. 당연히 이곳의 특산물이 햄버거이다 보니 유난히 햄버거 가게가 많은 편인데 일반적으로 빅맨(佐世保バーガー BigMan 上京町本店  )을 사세보 버거의 시작으로 본다(결국 이곳은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 링크를 남겨본다).


참고로 사세보는 1880년대부터 미국의 해군 기지가 주둔하던 곳이고,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던 햄버거 가게들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일본 햄버거가 시작된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부대찌개도 미군부대에서 시작된 음식이고, 오키나와에서 스테이크를 자주 먹고 스팸에 익숙한 이유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인 걸 보면 역사의 흐름은 분명히 다양한 곳에 흔적을 남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 얘기하겠지만, 사세보의 밤거리에는 미군 헌병이 돌아다닌다.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고 아마 자기들 병사가 사고 치는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의 순찰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더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역사 안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의자나 테이블도 없이 햄버거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관광 안내소에 들러 정보를 좀 얻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얻는 정보로는 부족한 것이 있는 느낌. 내일 렌터카를 타고 전망대를 둘러봐야 하는데 정확하게 '어디'를 가야 구쥬구지마(九十九島)를 제대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안내소에 들러 구쥬구지마(九十九島)를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렌터카를 이용할 거라고 했더니 바로 추천해 준 곳은 덴카이호 전망대(展海峰 ) 였다. 다음 포스팅에 소개하겠지만... 정말 좋은 곳이었다. 관광 안내소에 들러서 물어보길 참! 잘했다.


처음 보는 사세보의 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다.


역사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면 바로 바다를 볼 수 있다. 사세보 군항 크루즈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 보이고 저 너머에는 사세보 시사이드 파크가 있는 곳. 오른편에는 사세보 시청과 쇼핑몰들이 모여있는 번화가다. 이곳이 바로 사세보 5번가(させぼ五番街). 같은 이름의 쇼핑몰도 있다.


사세보의 유명 체인인 히카리 버거 사세보 오번가점.


조금 이른 점심을 먹어서 그런지 아직 저녁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배가 조금 고파졌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세보 버거! 라고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눈에 띄는 히카리 버거(ハンバーガーショップヒカリ させぼ五番街店 ). 사세보에서 가장 오래된 햄버거 체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쉽게도 여기서 핸드폰 사진 앱에 오류가 생겨서 햄버거 사진이 남아있지 않은데, ㅠㅜ. 꽤나 매력적인 버거였다. 주문하고 나서 체감상 약 15분 정도 뒤에 나온 버거는 갓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번도 패티도 아주 뜨거운 상태였다. 두툼하고 육즙이 좔좔 흐르는 패티는 아니었지만 짭조름한 맛으로 확실히 중심을 잡아주는 패티였고, 그 위에 고소한 모짜렐라 치즈와 '후라이'가 아닌 달걀 오믈렛(스크램블?)을 덮어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맛이었다. 솔직히 이 집을 추천하지 않는 글도 많이 봤는데, 나에게는 괜찮았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해 우산을 꺼냈다. 하카다에서 이미 꽤 걸었기 때문인지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았다.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인 사세보 팰리스 호텔()로 이동, 체크인하고 한 시간 정도 푹 쉬었다. 심지어 방금 햄버거를 먹었으니 제대로 저녁이 먹고 싶을 리가 없다;;


그래! 오늘은 여기다. 바다의 냄새를 좀 맡아보자.


하지만 저녁을 굶을 수는 없는 법! 비가 내리고 있으니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을 검색했다. 나의 레이더망에 걸린 곳은 이자카야 산페이(三平 ). 호텔 근처에 확~ 땡기는 식당이 없었는데, 그중 메뉴와 가격대가 괜찮아 보였다.


참고로 일본 여행할 때 주로 타베로그를 사용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구글맵의 활용도가 더 높았다. 장소 저장을 해두고 바로 네비게이션으로 쓸 수도 있다는 점과 광고가 없다는 것이 강점. 하지만 타베로그를 쓰지 않을 수는 없었는데, 가게의 평점을 보고 줄을 서야 하는지 짐작해 본다던가(3.5 이상이면 90% 이상의 확률로 줄을 서야 한다), 도시의 지도를 띄워서 술집이 많은 번화가를 짐작해본다던가 할 때 유용하기 때문이다. 바로 전화를 연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타베로그는 일본 앱스토어에서만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일본어 버전을 말한다. 영어 버전과는 내용이 확연히 다르다.)


시마아지 사시미(좌). 작은 새우튀김(중). 사케(우)


이곳은 주문하기가 매우 어려운 식당이었다. 메뉴에 사진은 없고 손으로 흘려 쓴 필기체의 메뉴판. 차라리 인쇄된 메뉴판이라면 사진을 찍어 번역기를 돌려볼 수 있을 텐데...


정말이지 한참을 들여다봤다. 고시 공부하듯이 들여다보고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을 주문했는데, 그중 하나가 시마아지(줄전갱이) 사시미. 마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종이 보이길래 바로 주문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안주로 주문한 작은 새우튀김. 아마도 중하였겠지.


산페이(三平)의 가게 분위기. 2층에는 단체석이 있다는 것 같았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안주나 음식을 더 주문하지는 않았고, 술만 조금 더 마셨다. 분명히 엄청나게 두툼한 메뉴판인 걸 보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있었을 텐데... 다양한 걸 주문하지 못해서 좀 아쉬웠다.



비가 오니 날씨가 쌀쌀하기도 하고 매일 밖에서 마시니 여행 경비가 자꾸 늘어나는 것 같아서 호텔로 돌아와 티비를 보면서 하이볼을 마셨다.


내일은 드디어 구쥬구지마(九十九島)를 보러 가는구나. 아, 그러려면 오키나와가 아닌, 일본 도시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구나. 교통 신호는 잘 볼 수 있으려나?


뭐 그런 생각을 하는 밤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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