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를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시내를 산책하다.
오늘은 시마바라(島原)로 출발해야 하는 날이다.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가사키 역사 문화 박물관(長崎歴史文化博物館)을 찾았다. 박물관에는 코인로커가 준비되어 있어서 짐을 편하게 맡겨두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박물관 1층에는 커다란 료마의 동상이 서있었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나 드라마, 소설, 만화에도 엄청 등장하는 사람이다. 유명인이라서 그런지 그의 동상 아래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의 눈길을 끈 전시품은 부산에서 가져왔다는 한국의 도자기들이었다. 나가사키는 무역항이었고, 특히 부산과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많았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나가사키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나 보다. 돌을 이용해 아치 구조를 만드는 방식을 이용했는데, 그 대표적인 다리가 바로 나가사키의 메가네 바시(めがねばし, 안경다리)와 이시하야(諫早)의 메가네바시라고 한다.
안경(めがね) 다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반원형의 아치가 수면에 비치면 온전한 원형이 되어 두 개의 원이 나타나서 안경을 닮았기 때문.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전시물은 개항 당시의 그림들이었다. 우리의 풍속화와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림 안에는 다양한 피부색의 외국인들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 동양의 그림에 서양인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색다른 느낌이었달까.
박물관에서 봤던 안경다리(めがねばし)를 찾아 산책을 시작했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니까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날씨가 약간 흐리고 날이 쌀쌀해서 그런지 노면 위로 전차가 달리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쓸쓸한 운치를 느끼게 했다.
마음에 드는 전차 사진을 찍기 위해서 시간을 좀 보냈던 곳인데, 이상하게 건널목에 보행자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지 않는 거다.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릴 땐 상관이 없었지만 다시 출발하려고 할 때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위를 살펴보니, 버튼을 눌러야 파란불이 켜지는 시스템. 아마 보행자의 통행량이 적은 곳이었나 보다.
안경다리 그러니까 메가네 바시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봐서 관광객인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학생들의 무리도 볼 수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이날은 안경다리에 꽂혀 있었다. 어차피 시마바라(島原)로 가기 위해선 이사하야(諫早)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니 이사하야에 있는 안경다리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가사키에서 시간을 더 쓸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이사하야로 움직여 그 동네도 좀 돌아다녀 봐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역으로 가서 사세보 방면으로 올라가는 SSL의 티켓을 끊었다.
쓸데없는 정보 추가. SEA SIDE LINER는 전기 열차가 아니라 디젤 열차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기차들을 숫자로 분류해서 '00계'같은 식으로 표현한다고 하는데, SSL은 200DC라고 쓰여 있으니 디젤 엔진을 사용한 200계 열차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전혀, 1도 열차덕이 아닌데 기차의 출발 시간을 기다리면서 열차 위에 쓰여있는 200DC라는 게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 검색해 본 내용이다.
어쨌든 이사하야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