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zoos Mar 18. 2020

12. 잉어와 함께 걷는 거리 시마바라(島原)

거리에 흐르는 도랑에 잉어가 헤엄치는 곳

이사하야에서 시마바라선을 타고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 역까지 오는 데는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작고 한적한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 역. 지금은 시마바라후나츠(島原船津) 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내일 구마모토로 넘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 숙소는 시마바라 항구 근처에 잡아 두었다. 그래서 시마바라 역이 아니라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 역에서 내렸다. 아주 작은 시골역인데 지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응? 이게 무슨 말이오!!! 결항이라니!!


역을 나서는데 뭔가 느낌이 쌔~ 한 공지가 하나 보였다. 모두 제대로 읽을 수는 없지만 [熊本 ~ 島原]는 구마모토에서 시마바라를 연결하다는 뜻인 것 같고 [欠航]은 '결항'이라고 읽는 게 맞겠지??? 오늘 아침에 결항이 있었다는 얘기구나...


그래, 21호 태풍 '란'이 오늘 새벽 오키나와에 상륙했다는 뉴스를 봤다. 그래도 이곳은 작은 바다니까 배가 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에 결항이 됐었구나. 그럼 [見合わせ]라는 건 무슨 뜻이지? 정상 운행했다는 뜻이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방금 해석해보니, '보류'라는 뜻이라고...


만약 태풍 때문에 배가 뜨지 않으면 아리아케 해(有明海)를 빙 돌아서 구마모토로 가야 한다.


오늘의 숙소를 시마바라로 잡은 이유는 내일 배를 타고 구마모토로 건너가기 위함이었다. 아마 배를 탈 수 없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이사하야나 시마바라를 굳이 들를 이유는 없었다. 사세보에서 나가사키로 내려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시마바라에서 배를 타면 30분 만에 넘어갈 수 있는 곳인데, 배가 뜨지 않으면 말 그대로 '하루 종일' 걸려서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한다. 시마바라(島原)에서 이사하야(諫早)까지 시마바라선을 타고 나간 다음, 이사하야에서 구루메(久留米)까지 특급 카모메를 타고, 구루메에서 구마모토(熊本)까지 신칸센 사쿠라를 타야 하니까 총 세 종류의 기차를 타야 한다.


중언부언 말이 많아졌는데, 배가 뜨지 않으면 엄청 복잡하고 귀찮고 힘들고 먼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이다.


어쨌든 오늘 하루 사이에 태풍의 움직임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면 내일의 배가 운항을 할지 안 할지 알 수 있겠지! 일단은 시마바라에 도착했으니 밥부터 먹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 간단하게 파스타로 점심을 때웠다. (우) 숙소의 스위치는 열쇠를 꽂아야 불이 켜지는 특이한 것이었다.


시간이 애매해서 그런 건지 토요일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연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겨우 찾은 곳은 가스토(ガスト)라는 패밀리 레스토랑. 원래 크림 파스타를 더 좋아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토마토소스의 파스타가 땡겨서 맥주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때 시간이 세 시 즈음 됐을 거다.


식사를 마친 다음 하쿠산 호텔로 돌아가 짐을 찾고 체크인했다. 방에 들어가니 특이한 스위치가 보인다. 요즘 호텔에는 '카드키'를 꽂어야 실내의 전원이 들어오는 시스템에 아주 흔한 편인데, 이건 말 그대로 '열쇠'를 꽂아야 실내의 전원이 들어오는 시스템이다. 난생처음 보는 시스템이라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놨다.


한적하지만 잘 정돈된 시마바라의 거리들. 시마바라 성당(왼쪽 아래)은 아주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었다.


내일 태풍이 올 지라도 오늘은 이곳을 구경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호텔에 짐을 간단하게 풀어두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가 시마바라 항구 쪽이라 시마바라의 중심가 쪽으로 가려면 꽤 걸어야 했다. 가는 길에 시마바라 성당(カトリック島原教会)에 들렀다. 실내를 볼 순 없었지만 특이한 외형은 볼 수 있었다.


시마바라의 골목에는 잉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한적한 골목골목을 걸으며 잉어가 헤엄치는 거리(鯉の泳ぐまち) 방면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받은 관광 안내 책자를 보니 시마바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안내 책자에서 볼 때는 골목골목을 따라 흐르는 냇가에 잉어가 사는가 보구나. 하는 정도로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훨씬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흐르는 물이 너무 맑다는 것에도 깜짝 놀랐다.


물이 솟아나는 정원 신메이소(四明荘).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조용하게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다.


골목골목을 걷다가 신메이소(四明荘)라는 곳을 발견했다. 물이 솟아나는 정원(湧水庭園)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곳이었다. 약 300엔 정도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인데 들어가면 차를 한 잔 내어 주신다. 차를 마시면서 일본식 정원에 앉아 잉어와 녹음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잔잔한 느낌이 좋은 곳이라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곳이다. 실제로 정원 한쪽 끝에는 바닥에서 솟아나는 물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시마바라 성터에서는 해자에 물이 가득하다.


정원에서 나와 시마바라 성터(島原城跡)에 들렀다.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이 아쉬운 곳이었다. 성터를 빙 둘러있는 해자에는 연꽃과 함께 물이 가득했고, 언덕을 올라가면 성터에서 바다 건너 구마모토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하아, 이렇게 눈에 보이는 곳인데. 지금은 잔잔한, 저 바다만 건너면 구마모토인데... 태풍 때문에 건너가지 못할 수도 있다니...


시마바라 역에는 자그마치 '잉어' 역장이 있다. 이름은 삿짱.


시마바라 성터에서 내려오면 바로 시마바라 역(島原駅)이 나온다. 사실 '역'을 굳이 방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는 '잉어 역장'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역사에 들어가니 정말 커다란 어항이 있고, 어항 위에는 '역장실'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역장의 이름은 삿짱이라고 한다.


막상 시마바라 역에 도착하니 도저히 걸어서 숙소까지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두 정거장만 기차를 타면 숙소 앞에 내릴 수 있는데! 열차 시간표를 살펴보니 너무 오래 기다려야 다음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기차역 앞에는 보통 택시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택시 승강장에는 택시가 한 대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역 근처에서 사람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했으니까.


택시 승강장에는 택시가 없는 대신 택시 회사의 전화번호가 하나 적혀 있었다. 고민했다. 과연 내가 전화로 택시를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걸어가려면 2Km, 약 20분 정도가 걸릴 거리였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큰 마음먹고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디냐고 물어보는 것 같길래 시마바라 역이라고 했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는 것 같길래 호텔 이름을 말했다. 다행이었다. 별다른 질문 없이 2-3분 뒤에 택시가 도착했다.


완전 대만족이었단 사시미 정식


숙소에 돌아와서는 근처에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호텔 로비에서 식당 소개를 부탁드렸더니 내가 검색해서 찾아본 곳 중 한 곳을 소개해준다. 이자카야 나가타(居酒屋ながた). 메뉴판에 '정식'이 보이길래 사시미 정식을 주문했다. 가격은 900엔. 식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니혼슈와 소츄를 한 잔씩 더 마셨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비용이 꽤 많이 나온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음식'을 그리 많이 시키지 않기 때문에 주메뉴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가 않은데, 한 잔씩 주문하는 술의 가격이 저렴하지가 않다. 한 잔에 최소 500엔에서 800엔 정도. 그걸 여러 잔 마시니까 결국 합계 금액이 비싸진다. 한국에서는 혼자 밥 먹을 때 소주 한 병만 주문하면 되니까 3~4천 원이면 되는데 말이다.


굳이 쓸데없는 첨언을 하자면, 비싼 술을 마실 때에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클래식한 바에 가서 위스키를 한 잔씩 마실 때는 한국보다 2~30%, 심한 경우 50% 이상 저렴한 위스키도 많이 볼 수 있다. 아마 일본의 바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일단 여기까지.



호텔에 돌아와서 TV를 보는데 아오이 유우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방영하길래 한 컷 찍어봤다. 아오이 유우가 학교 선생님 역으로 나온 먼저 태어났을 뿐인 나(先に生まれただけの僕)라는 드라마인 것 같았다. 아직 이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안경 쓴 아오이 유우의 모습을 보며, 미야코 섬에서 가져온 시쿠와사를 섞어 하이볼을 마셨다.


바람은 점점 강해지고, 날씨는 나빠지고 있다.


오늘, 태풍이 지나가려나?

내일, 배가 출항할 수 있으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11. 한적한 느낌이 좋은 이사하야(諫早) 산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