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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Mar 26. 2020

18. 어제는 날치 튀김, 오늘은 날치구이

시라타니운스이쿄 트래킹을 마치고 야쿠시마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오전에 시라타니운스이쿄를 다녀온 다음 기분이 들떠서 멀리까지 나가보고 싶어 졌다.


시라타니운스이쿄 트래킹을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늘의 점심은 뭘로 해야 하나? 주차장에서 차에 앉아 문을 열고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식당을 검색했다. 그 결과 선택한 곳은 KITCHEN&CAFE 히토메쿠리(ヒトメクリ). 간단한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라 선택했다.


힘들게 올라갔던 산길은 내려올 때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얼마나 많은 맞은편 차량을 만나느냐가 운전을 힘들게 하는 포인트인데, 내려올 때는 차를 많이 만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쩌면 올라갈 때 한 번 경험해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에 마음이 더 편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게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던 치킨 까스


구글맵에 목적지를 찍어두고 도착한 식당은 야쿠시마에서 보기 드물게 깔끔하고 스타일리시한 곳이었다. 메뉴판을 보니 저녁에는 맥주와 와인도 팔고, 꽤나 본격적인 요리도 취급하는 곳인 것 같았고, 후기를 좀 읽어보니 유명한 곳이라 인기도 많고, 줄을 서서 먹는 집이라고 했다. 야쿠시마 히토메쿠리(屋久島ヒトメクリ)라는, 그러니까 식당의 이름과 같은 이름의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곳이었고, 편집자겸 발행인인 사토 미호(佐藤未歩)라는 분이 직접 운영하는 곳인 듯했다.


아침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였고 산길을 세 시간이나 걸었으니 배가 많이 고플 만도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식욕이 생기지 않아서 가벼운 음식을 먹으려고 치킨 까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받아 든 접시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양이 너무 많아서 놀랐고, 접시를 구성하고 있는 반찬이 다양한 것에 또 놀랐고, 마지막으로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처음 접시를 받았을 때는 절대로 다 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맛있어서 모든 반찬과 치킨 까스 그리고 쌀밥을 싹 다 비울 수 있었다. 왜 이곳이 야쿠시마의 유명 스팟인지 알 수 있었다. 혹시라도 언젠가 야쿠시마를 다시 찾는다면 저녁에 방문해서 와인과 맥주를 마시고 싶은 곳.


날씨가 좋으니 마냥 달리고 싶었다.


기분 좋게 점심을 먹고 나니 기분 좋게 드라이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내일도 날씨가 이렇게 좋을지는 알 수 없는 일. 꼬불꼬불 산길을 힘들게 운전했더니 시원하게 뚫린 길을 달리고 싶다는 것도 이유였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경치가 좋은 곳이 있으면 차를 세우고 구경하면 되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이었다. 블루투스로 연결해둔 아이폰에서 기분 좋은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날씨는 쾌청했고, 한적한 도로를 따라 액셀을 밟는 것이 상쾌했다.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것이 마냥 좋았던 걸까?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지도를 보니 섬의 정반대 편 즈음이다. 그러니까 야쿠시마는 약 두 시간 정도면 차로 한 바퀴 크게 돌 수 있는 정도의 크기구나(나중에 알게 됐지만, 두 시간보다는 더 걸린다. 중간에 굉장한 난코스가 한 군데 있다). 그나저나 한 시간이나 연속으로 운전했더니 피곤한데? 근처에 어디 차를 세우고 산책할만한 곳이 없을까?


날이 맑으니 드라이브도 좋았지만 산책도 좋네
정말 '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잔잔한 바다
해변에는 산호 조각들이 모래처럼 쌓여있다.
오랜만에 파노라마도 한 컷


마침 차를 세우고 근처를 검색해보니 산책할만한 곳이 있다.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에 공원이 만들어져 있고 야쿠시마 청소년 캠핑장(屋久島青少年旅行村), 산고노하마 해수욕장(サンゴの浜海水浴場), 츠카사키 파도풀(塚崎タイドプール) 등이 모여 있어서 바다를 보며 기분 좋게 산책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큰길에서 벗어나니 주차장이 보였다.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니 통나무로 만든 집들이 보인다. 청소년 캠핑장인 것 같았다. 중간에 공용 수도 같은 것도 볼 수 있었다. 널찍한 잔디밭에서 뒹굴면 기분 좋을 것 같은 곳.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그 언덕을 넘어가니 산고노하마 해수욕장이 나왔다. 산고노하마(サンゴの浜)는 산호의 해변이라는 뜻인데, 바다 거북이가 와서 알을 낳는 곳이라고 한다. 다시 언덕을 넘어 돌아와 산책로의 끝까지 내려가니 지도상에 츠카사키 파도풀이라고 표시된 곳인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풀장'은 없다. 어 그렇다면?? '파도풀'에서 말하는 파도가 실제 바다의 파도를 말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부근의 파도가 아주 잔잔하고 바다가 맑고 얕다. 그래서 파도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꽤 기분이 좋은 곳이라 천천히 산책하고, 잠깐 앉아서 기분 좋은 오후의 햇볕도 쬐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 숙소로 돌아가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고, 멀리까지 나온 김에 한 군데 더 들러보기로 했다.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규모가 큰 폭포였다.
낙차가 88미터. 높이가 높기도 하지만 물줄기가 하나가 아니라서 옆으로도 꽤나 넓은 폭포.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오코노타키 폭포(大川の滝)가 있었다. 별생각 없이 구글맵에 폭포가 하나 보이길래 오전에는 산과 계곡, 오후에는 바다, 마지막으로 폭포까지 보면 참 좋겠군! 하는 생각이었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어 조금 내려가니 엄청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여섯 대 규모의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엄청난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봤더니...


말 그대로 엄청 큰 규모의 폭포였다. 일본의 100대 폭포 중의 하나이고, 낙차가 88미터라는 정보를 새긴 안내석(石)도 서 있었다. 88미터라는 높이도 대단하지만 더 웅장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물줄기가 하나가 아니라서 옆으로도 폭이 넓은 폭포이기 때문이었다. 나 말고도 몇 명의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물소리 때문에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차와 사람은 별로 만나지 못했는데 야생 원숭이들이 자꾸 길을 막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유난히 야생 원숭이들이 길을 막는다. 운전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원숭이를 만나는 것이 더 쉽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다음 날 운전하면서 가장 많은 원숭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땐 사진을 찍을 정신이 없어서 차에서 원숭이를 찍은 것은 이 사진이 유일하다.


오늘도 숙소 관리자 아저씨가 추천해준 곳으로


숙소로 돌아와 차를 세우고, 방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고, 시원하게 샤워를 한 다음,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숙소 관리인 아저씨가 적당한 가게를 하나 추천해주셨다. 가게의 이름은 와카다이소(若大将).


오랜만에(?) 사시미가 먹고 싶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사시미를 작은 걸로 하나 주문했다. 오랜만에(?) 사시미가 너무 먹고 싶었다. 방어, 연어, 고등어, 도미, 참치 등 어찌 보면 뻔한 어종들이긴 하지만 깔끔하고 신선했다. 방어가 좀 어린 녀석이었는지 기름지지 않고 탱글 했던 기억이고, 고등어가 아주 신선하고 고소했다는 기억이다.


날치 사시미도 되냐고 물었지만 튀기거나 굽는 것만 된다고 해서 오늘은 날치구이로


사시미 한 접시를 다 먹어갈 때 즈음 쥔장 아저씨한테 다음 메뉴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날치를 추천해주신다. 혹시 사시미도 가능하냐고 했더니 굽거나 튀기는 것만 된다고 해서 날치구이로 부탁드렸다. 어제 날치 튀김을 먹어 봤으니 말이다.


사세보에서는 날치 육수 라멘, 어제는 날치 튀김, 오늘은 날치구이. '날치'라는 생선을 먹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구워 먹고, 튀겨 먹고, 우려서 먹었으니 참 다양하게 맛을 본 셈이다.


날치도 어쨌든 등 푸른 생선인지라 비린내가 좀 있을 것 같은데, 먹어본 식당 모두 비린내가 나지는 않았다. 고등어나 꽁치처럼 기름지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삼치처럼 퍽퍽한 듯 단단한 살의 느낌인데, 크기가 작아서 그런 것인지 별다른 향이 없어서 깨끗한 느낌이다.


옆 자리에 혼자 여행 온 아가씨, 마침 오늘이 휴일이라 다른 가게에 술 한잔 하러 왔다는 옆 가게 주방장 아저씨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가 담배가 다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쥔장 아저씨에게 담배를 사러 갈만한 곳이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근처에 살 곳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것은 자판기인데, 일본의 담배 자판기는 TASPO라는 성인인증카드가 없으면 담배를 살 수 없다. 결국 쥔장 아저씨는 뭔가 엄청난 결심을 한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따라 나오라고 했다. 밖으로 나갔더니 가게 앞에 세워져 있던 트럭 문을 열더니 나보고 옆자리에 타라는 거다. -0- 결국 술 마시다 말고 가게 쥔장 아저씨가 차를 태워줘서 슈퍼에 다녀왔다.


고맙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져서 몇 잔의 술을 더 마셨는지... 심지어, 숙소로 돌아와서는 관리인 아저씨랑 한잔 더 마시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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