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하다는 것의 반가움. 전형적인 김탁구식 드라마.
20년 전쯤이었던가 보다. 일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던 게. 당시의 우리나라 드라마들보다 소재가 다양하다는 것이 좋았다. 당시 일본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코스(?)를 쭉 돌다 보면 언젠가 한 번 김탁구, 아니 기무라 타쿠야를 만나게 된다.
당시 일본 드라마의 황금 시간대인 월요일 9시(게츠쿠)에는 제작비를 쏟아부어 최고의 배우와 작가를 총동원한 드라마들이 방영됐고, 김탁구의 드라마는 언제나 월요일 9시였다. 스케일이 큰 드라마 안에서 그의 존재감은 특별했다.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이는 상남자 스타일의 주인공이지만, 남들 모르게 뒤에서는 동료를 챙기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츤데레이고, 결국 집념과 노력 그리고 진심으로 주위 사람들을 하나씩 감동하게 해, 다 같이 힘을 합쳐 꿈을 이루고야 마는,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의 역할을 맞춘 옷 입듯 맛깔나게 연기하는 존재감. 그게 기무라 타쿠야였다.
언제부터였더라? 김탁구의 드라마를 챙겨보지 않게 됐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의 장점이 그대로 그의 단점이 된 것 같았다. 그가 가장 잘하는 연기가 좋아서 그의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모든 드라마에서 그런 모습만을 보게 된다는 것이 지겨워졌달까? 소재가 조금씩 바뀔 뿐 어느 드라마를 봐도 비슷한 연기를 하는 그의 모습이 식상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오랜만이었다. 아마 요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랑 메종 도쿄]라는 드라마가 요리사와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먹방과 음식 그리고 요리 프로그램이 많아진 것처럼 일본에서도 음식과 요리가 유행인 걸까? 그래서 이런 드라마도 만들어진 걸까? 하는 궁금함에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미슐랭 2스타를 받은 천재 셰프가 어떤 사건에 휘말려 나락으로 떨어지고, 3년 뒤 일본으로 돌아와 다시 미슐랭 3스타에 도전하는 것이 전반적인 줄거리. 아무래도 셰프가 주인공이고 레스토랑 이야기가 계속되다 보니 드라마 내내 화려한 프렌치 요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요리 과정부터 공들여서 촬영한 장면들이 계속되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이 즐겁고 어떤 맛일지 궁금해진다.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인 일본 소년 만화의 그것과 비슷하다. 온갖 고난과 역경이 닥치지만, 끈기와 노력으로 마음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소년 주인공의 역할을 가장 잘 해내는 배우 중의 하나가 바로 김탁구다. 여전히 카리스마 넘치는 전형적인 고집불통 츤데레 주인공.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김탁구식 드라마다.
전형적이고 익숙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반가웠다. 오랜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화면 가득 화려한 요리가 가득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얼굴이 익숙한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가 주위에서 받쳐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스즈키 쿄카의 우아하면서도 단단한 연기와 어우러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의 연기가 반가웠다. 그리고 그가 여전하다는 것이 반가웠다.
아, 거기에 더해서 주제가를 야마시타 타츠로가 불렀다는 것 역시,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