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대하는 나만의 커스텀 온도
장마가 찾아왔다. 오늘도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질 만한 것들을 떠올린다. 노릇노릇 잘 부쳐진 해물파전이라든지 살짝 뭉개지는 듯, 피아노 음색이 나른한 재즈음악이라든지 눅눅한 마음을 다독여줄 따뜻한 커피나 차 같은 것들을 자주 떠올린다.
비 오는 날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비 오는 날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꺼내어 생각해 보는 일은 꽤 즐겁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비 오는 날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데,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온기를 빼앗기는 것.
비가 몸에 닿아 젖게 되면 몸의 온기를 빗물이 뺏아가기 때문이다. 몸이 차가운 편인 나는 몸의 온기를 빼앗기면 마음마저도 온기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그 느낌이 좋지 않다. 반작용 때문일까. 그래서 비 오는 날이면 기분 좋은 것들이 떠오르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내가 겨울을 싫어하고 여름을 좋아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겨울이 얼어붙을 것처럼 춥기 때문에 몸을 따뜻하게 데워 줄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고, 또 반작용의 일환일지 모를 그 작용들이 나를 따뜻하고 아늑한 기분이 들도록 해줄 것들을 계속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름을 좋아할 것 같지만 사실 여름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여름이 가져다주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푸릇푸릇한 청춘의 느낌. 청량한 느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라는 사람은 분위기를 잘 타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여름만 되면 유독 드러나는 취향이 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얼음 두 개 넣기.
다들 여름에 무슨 따뜻한 아메리카노라며 놀라지만, 차가운 음료를 잘 먹지 않는 나로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얼음 두 개만큼 딱 맞는 온도도 없다.
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이유는 내가 비 내리는 날을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 몸의 온기를 잃기 싫어서다.
나에게 몸의 온기를 잃지 않는 것은 마음의 온기를 잃지 않는 것과 맞닿아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나처럼 에너지가 간당간당한 사람들은 조그만 어려움에도 온기를 쉽게 잃는다.
하루를 시작해서 잠들기까지의 시간을 살아가다 보면 나 자신의 눈치와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나의 능력치를 사용하느라 마음의 힘을 잘 잃어버리게 되는데, 이럴 때 따뜻한 차 한잔은 마치 마법의 물약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면 그만큼 마음의 힘도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다.
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마음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마음을 차갑게 만드는 일이 많은 이곳에서, 마음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여름에도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럼 왜 얼음 두 개를 넣느냐고?
너무 뜨거우면 오히려 그 열기 때문에 혼미해지니까.
마음의 온도도 같다. 너무 뜨겁게 있다 보면 스스로를 상하게 하기 마련이다.
이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딱 얼음 두 개 정도의 온도로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을 대하면 어떨까.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을 기분 좋은 관계로 지켜나가기 위해서.
물론, 커피와 사람마음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뜨거운 여름날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얼음 두 개. 인생을 대하는 나만의 커스텀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