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을 바라보며.
2020년 12월 30일이 되었고, 내일은 2020년이 드디어 떠나가는 마지막 날입니다.
매일 지나가는 하루처럼, 불과 하루의 차이가 별 의미 없는 나날들 속에서도 언제나 그렇듯 12월의 마지막 날은 지나온 365일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1월의 첫날은 우리를 다짐하게 하고 계획하고 하고 기대하게 만듭니다.
알고 말고, 코로나라는 거대한 것이 우리의 삶에 침투해 모두를 힘들게 하고 가둬버리고 지치게 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가 있었어도 없었어도 우리의 삶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던 한해였겠지요.
누군가는 가장 사랑할 아이의 탄생을 맞이한 이도, 누군가는 가장 사랑한 사람을 잃은 해이기도 누군가는 좌절하기도, 또 기뻐하기도 한 해.
그러고 보니 저에게는 "복잡 미묘"한 한 해였던 것 같네요.
저도 무언가를 잃었고 무언가를 얻었습니다.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2020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뒷모습을 그린 그림을 좋아합니다.
뒷모습은 왠지 슬프게 느껴진다는 것이 오랜 문학 속에서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겠지만 그 뒷모습 속에서 그 사람이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상상하게 만드는 그 뒷모습의 힘이 저는 좋습니다. 웃고 있었으면 하고요.
사람들은 슬픈 표정을 숨기려고 뒷모습을 보이지만, 웃고 있을 때는 언제든지 뒷모습을 보여도 좋습니다.
다만 울고 있을 때는 앞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래야 눈물을 닦을 휴지라도 건네드리고 함께 울어줄 수 있잖아요.
독일의 낭만주의 예술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 낀 언덕 위의 방랑자>는 뒷모습을 그린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그는 뒷모습의 화가로 불리기도 하지요.
거대한 자연 앞, 벼랑 끝에 서있는 남자의 뒷모습은 고독해 보이기도, 당당해 보이기도,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안개 낀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뒷모습이기도 합니다.
잔잔하다가도 폭풍우가 몰아치고, 밝은 햇빛과 거친 빗방울을 피할 수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바다는 우리의 삶과 같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우리의 내일처럼 볼확실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안개로 가려진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지요.
올해보다는 더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2021년도 안갯속에서 잘 보이지가 않으니까요.
불확실성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역시나 한 해를 돌아보며 즐거웠다고, 재미있었다고 그래도 살만했다고 진실하게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삶을 촘촘히 채워준 좋은 사람들과 켜켜이 쌓아온 추억 덕분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공감하였고 주고받은 말들로 위로하고 같은 것들로 웃었고 마음이 통하였습니다.
2020년은 떠나가지만 우리의 추억은 온전히 남겨졌습니다.
인간의 진실은 거짓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앞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뒷모습에 있다. 중요한 것은 내게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라는 것이다.
같은 방향, 같은 대상, 같은 이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상대방과 마음이 통하는 기쁨을 맛본다.
미셸 푸르니에 <뒷모습> 중에서
그러니, 사랑하는 동지들.
2020년의 뒷모습을 우리 함께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2021년을 함께 기다려요.
그렇고 말고, 사람의 몸은 본디 그렇게 생겨서
누군가를 '품에 안는다' 고 할 때,
그것은 반드시 그의 등 뒤로 두 손을 마주 잡는 것일 수밖에 없다.
미셸 푸르니에 <뒷모습> 중에서.
저는 본디 그렇게 생겨서,
2021년에는 제가 가진 따뜻한 것들로 누군가의 삶을 안아주고 그 덕분에 나의 두 손을 더 자주 잡는 삶을 살아가길 다짐합니다. 그거면 됐지 뭘 더 바랄 게 있을까요.
더할 나위 없겠어요.
안녕, 2020년!
안녕,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