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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ep 16. 2020

미술 감상, 친구를 사귀는 즐거움


“미술 좋아하시나요?”     

미술 강연을 할 때, 제가 가장 많이 묻는 질문입니다.

저의 질문에 많은 분들이 “미술은 너무 어려워요”라는 답변을 하십니다.

저는 분명 좋고 싫음을 물었는데 어렵다는 답변은 어려워서 싫다는 말씀이시겠지요.


반면,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미술은 어떻게 감상해야 하나요?”리는 질문입니다.     

저는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요.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그 안에서 나랑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다양한 작품을 보다 보면 알고 싶어 지는 그림과 예술가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첫인상이 좋아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별로였다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사람이 있죠. 그림 감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는 순간 누구의 그림인지 알고 싶어 지는 그림도 있고, 난해하지만 공부할수록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그림도 있습니다.

친구를 사귈 때처럼 열린 마음으로 그림을 대하는 것이 작품 감상의 포인트입니다.

저와 함께 감상을 해보실까요.          


아는 것보다 알고 싶어 지는 것이 먼저다    

      

우리가 길을 지나다가, 혹은 카페에서 우연히 좋은 음악이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음악을 듣게 되는데요, 그 음악의 박자나 리듬, 장조 이런 것을 먼저 궁금해 하기보다는 음악을 느끼며 감상에 젖어들고는 합니다.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하고 옛 추억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우연히 나의 마음을 잡아끄는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면 미술도 음악 감상처럼 느낌으로 먼저 감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그림을 편하게 접하면서 나와 첫 느낌이 통하는 그림을 찾게 되면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누구인지, 언제 그려졌는지 서서히 알아 가시면 됩니다, 알기 전에 알고 싶어 지는 게 먼저입니다. 미술을 지식의 대상으로만 이해하고 접근하면 금세 미술이 싫어집니다.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아름다워야 하네. 세상에는 이미 골치 아픈 일이 너무도 많은데 우리가 또 다른 골칫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     


인상주의 거장,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말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미술 감상에 가장 기대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말이죠. 그는 단 한 점의 우울한 그림도 남기지 않아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불립니다. 어떤 내용의 그림인지 굳이 누군가의 설명이 없이도 힐링을 주는 르누아르의 작품을 감상할 때는 보이는 대로 느끼시면서 햇살 가득한 어떤 날을 상상해보길 바랍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아스네르의 센 강, 1879, 캔버스에 유채 , 92 x 71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그림 속 시간은 몇 월일까? 오늘은 무슨 요일일까? 시간은 2시쯤? 나는 이 곳에 그 사람과 가고 싶어- 여러분은 누구랑 가고 싶으세요?"

오귀스트 르누아르, picking flowers,1875, 런던 내셔널 갤러리

옆 사람에게도 물어보세요.  '둘이 무슨 사이일까?' '무슨 대화를 하는 거지? ' 


나 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그림 속 시간으로 들어가다 보면 한층 더 깊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여유로운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의 분위기 전체를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림 속 주인공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면 그림 속 아름다운 초록빛과 함께 더욱 빛나는 햇빛과 자연, 사랑스러운 천진함, 함께 어울려 나누는 소소한 행복, 즐거움이 묻어나는 여유로운 일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작품이 명화달력에 많이 나오는 이유지요. 달력을 보고 난해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르누아르의 작품 속 행복한 주인공들을 마주하다 보면 그들의 행복이 우리에게도 전해집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즐거운 왈츠를 듣는 기분입니다. 말년에 극심한 루마티스 관절염을 겪으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르누아르의 그림에는 인생의 행복한 ‘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르누아르와 같은 행복한 친구는 금세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지요.      


아는 만큼 ’ 보인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창작의 고통을 산고와 비교할 만큼,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데요. 따라서 그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친구의 얘기를 경청하듯, 그 작가에 대해서 그리고 그림의 배경에 대해서 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어려운 작품도 이해하게 되고 이해를 넘어 감동을 하는 순간도 다가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 역시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예술가입니다. 사실  그의 작품들은 처음 보면 왜 이렇게나 유명할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난해하고 기괴한 그의 입체주의 작품을 보던 한 관람객이 설명을 듣고 그림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얘기하자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30년이나 걸려서 만든 작품을 5분 만에 이해하려고 하다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내가 투자한 시간에 10분의 1이라도 시간을 들여 보세요.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1907, 캔버스에 유채, 243.9cm X 233.7cm,      뉴욕 현대미술관

시간을 들여 그의 대표작 <아비뇽의 여인들>을 감상해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20세기 미술사에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 작품입니다. 

원근법과 명암법에 기초를 두었던 르네상스 미술의 전통을 완전히 부순 최초의 그림이자 입체주의의 최초의 작품으로도 평가받습니다.

사진기의 발명 이후, 보이는 대로 어떤 대상을 그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잘 그려도 사진기의 재현의 기술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카소는 과거의 질서와 고정관념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조형세계를 창조해냈습니다.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완전한 모습을 회화로 표현하기 위해 위, 아래, 옆 등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3차원의 입체형상을 마치 분해도처럼 해체한 후, 2차원의 캔버스에 재구성했습니다.

그림 자체는 썩 훌륭하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이 작품에 담긴 정신은 피카소 이전에 어떤 화가도 시도하지 못했던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비뇽의 여인들>에는 현대미술의 치열한 창조정신이 들어있는 것이지요.

역시 30년에 걸쳐 연구한 그림을 짧은 글로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피카소의 당부대로 시간을 들여 지식을 쌓아 가시다 보면 아는 만큼 더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되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작품은 보는 이의 감상으로 완성된다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인지 각자의 기준이 다른 것처럼 미술 감상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술가의 작품은 관람객의 감상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라고 했던 한 예술가의 말처럼 나의 감성과 지식이 모두 조화를 이룰 때, 더 큰 의미와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흔히들 미술사를 인문학의 꽃이라고 하지요.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관점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줍니다. 나와는 다른 시각을 가진 친구들이 바라본 세상을 함께 나누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여러분도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랑도 친구 하시고요:)



*   

2018년 금천구의사회보 Vol. 4에 기고했던 글을 편집하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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