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란잔 May 11. 2017

무게를 견뎌라!

매트릭스 2 - 리로디드 [쯔욘의 영화한잔]


시작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의 액션이다. 딱 붙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소재의 옷을 입고, 전방위로 유영하는 카메라의 조력을 받으며 마치 한편의 춤사위 같은 액션 신(Scene)을 선보이는데, 외관적으로 섹시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관객들의 집중도를 사로잡기 좋은 방식이다. 사실 첫 스타트를 강렬하게 하여 순간 몰입도를 증가시키는 방식은 할리우드의 주 종목이다. 무수하게 많은 영화들을 예로 들 수 있지만 막 떠오르는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정도. 각설하고 이러한 세련된 몸짓은 <매트릭스> 시리즈의 특장점이다. 그동안의 할리우드의 액션이 근육질 남성들의 무식한 힘자랑이 고작이었다면, 이 시리즈에서는 '합'이라는 것을 중시하기 시작하여 액션을 한 차원 이상 업그레이드해 놓았다.


1999년 워쇼스키 형제(지금은 자매)가 처음 세상에 이 영화를 내놓았을 때 우리는 열광했다. 고차원적인 액션뿐만이 아니라 종교, 철학을 근간으로 하는 개념들이 뒤엉켜 있는 독창적인 세계관, 동, 서양의 정서를 황금비율로 배합해놓은 멋들어진 스타일까지. 그런 연유로 필자를 포함한 다수의 팬들은 2편의 출물을 대단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게 모르게 우려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1편을 뛰어넘는 2편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특히 그것이 1편의 대성(大成) 이후라면 더욱더 부담스러웠을 것임을 알기에. 결론적으로 <매트릭스> 시리즈도 1편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나 보다. '소탐대실'. 전체적으로 확장되고 비대해졌는데, 그것이 과잉으로 치닫는 부작용을 발발하기 시작한다. 물론 모든 것이 '과오'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다. 단지 공적에 비해 점유율이 높을 뿐이다.


'매트릭스 2 - 리로디드 (The Matrix - Reloaded , 2003년 作)'




재장전 된 <매트릭스 2>는 본격적으로 인간들이 기계를 피해 숨어 살고 있는 세계 '시온'을 배경으로 한다. 자신이 'The One'인지 아니면 조금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 뿐인지 아직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한 네오(키아누 리브스), 그와의 사랑을 확인하고 몸과 마음의 정을 통하는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 늘 뒷짐을 지고 선글라스를 낀 체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 그리고 네오의 어긋난 데칼코마니와 같은 또 다른 문제적 인간 스미스 요원(휴고 위빙)까지. 다시 만난 그들이 반가운 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시온'의 위치를 파악한 기계 집단은 센티넬(해파리의 형상을 한 기계)을 보내 인간의 씨를 말리려 한다. 마지막 인류를 지키기 위한 같은 목적으로 함장 모피어스와 사령관 록(헤리 레닉스)을 중심으로 갈등이 발발하는데, 맹목적인 믿음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가능성 희박한 이성적 판단으로 행동할 것이냐? 첫 번째 선택의 딜레마가 등장한다. 한편 네오는 다시 한번 오라클을 찾아가고, 점점 더 매트릭스의 코어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또한 거대한 선택의 딜레마 앞에 서게 된다. '인생은 b(irth) 와 d(eath) 사이 c(hoice) - 샤르트르'라고 했던가? 결국은 답을 정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1편에서 시작된 선 문답들은 2편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시온의 상의원 하먼(안소니 저브)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물을 정화하는 장치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알고 있다." 말하자면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 논지는 오라클(글로리아 포스터) 과의 대화에서도 맥을 같이하는데, "너는 이미 선택을 했어.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해!" 즉, 매트릭스의 태도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결과는 정해지고 그 이유를 찾는다는 '역'인과관계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금수저, 흙수저 대란의 대한민국을 보건대, 애초에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그러니까 선택되는 것들 : 국적, 가족, 신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매트릭스 2>에서는 '믿음'의 본질 또한 고찰할 거리로 다가오는데, '보이지 않는 실체를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이 뇌리를 스치게 된다. 특히 이것은 종교적 관점에서 조명할 때 가장 유의미해지는데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믿음'이라는 것을 신앙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로 설파한다. 그러면 이 영화는 무조건적인 믿음에 대해 호의적 입장인가, 적대적 입장인가? 영화엔 의문을 완벽히 해소할 답은 없다. 다만 필자는 호의적 입장이라고 추측한다. 원래 종교라는 것은 이해를 시키고 믿게 하는 것이 아닌 우선 믿고 이해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이것은 필자가 앞서 언급한 '역'인과관계(원인과 결과가 전복된)와 동일한 맥락으로 적용 가능하게 되고 영화의 주인공조차 '이해하기 위해 믿는' 태도를 보이는 설정은 이 영화가 맹목적 믿음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방법이 괄호를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기에 필자의 확고한 어조라기보다는 개인적 사유 정도라고 여기면 되겠다.


문제는 이런 담론들을 양산시키기 위한 영화의 방법론이 1편과 같이 영화를 즐기는 과정 속에 잘 녹아있다기보다는 둥둥 떠다니며 뜬구름 잡는 분위기만 형성하고 가슴까지는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고, 이것이 필자가 서두에 언급한 과잉으로 치닫는 부작용이다. '너무 거대한 것을 펼쳐놓아서 수습하는 과정이 어설퍼지는 경우라고 할까?' 중후반부 키메이커(랜달 덕 김)의 등장과 절대자와의 만남 등은 다량의 정보 홍수에 다소 피로감이 밀려오게 된다. 많은 것을 담기에 그릇이 너무 작든지, 그릇의 크기보다 과용해서 담으려고 한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의 쾌감은 반박할 여지없이 공적이다. 1편에 이어 잘빠진 서양인들이 보여주는 동양의 무술은 우리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부감과 슬로모션 등을 뒤섞은 편집의 작법은 흥분을 한층 업 시킨다. 특히 고속도로 카체이싱 장면은 기적적이다. 실제 고속도로 세트를 건설하여 촬영하였다고 하는데 트리니티의 오토바이 역주행, 트럭 위의 일기토 등 차와 차 사이를 활공하는 면면들은 탄복스러웠다. 이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를 보고 있으면 '1편의 흥행이 얼마나 감독의 영향력에 조력했는가?'. 다시 한번 영화라는 예술의 산업적 특징을 통감하게 된다. 또 다른 인상 깊은 시퀀스는 네오와 스미스의 1대 다(多) 장면이다. 하늘을 비행할 때의 눈에 띄는 CG가 옥에 티라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이 군무에 매료되어 그 정도 오점은 금방 잊힌다. 특히 이 장면은 주성치의 <쿵푸 허슬>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








네오와 스미스는 매트릭스라는 시스템 속에 버그 같은 존재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리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기보다는 특수한 몇 명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소수라고 잘못된 존재라고 볼 수는 없다. 원래 10명 중 2명이 정상인 집단에서는 2명이 틀린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 우리네 세상이기도 하니까.


그들은 항상 선글라스와 정갈한 의상을 착용하고 있다. 쥐어터질지언정 옷매무새는 항상 다잡고 있다. 기계와 인간의 운명을 건 전쟁이라는 거대한 난제에도, 디스토피아적 세상에 대한 비감 속에서도 그들은 맥락 없이 이 모습을 유지한다. 필자는 기어코 멋을 추구하고야 마는 워쇼스키 감독의 우아한 고집을 지지하는 바이다.


★★★☆ (별 3개 반)

힘겹게 견뎌낸 1편의 무게








작가의 이전글 생물학보다는 사회학에 한 표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