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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May 14. 2017

영화 '탓'이 아닌 음악 '덕'

8 마일 [쯔욘의 영화한잔]

1970년대 중, 후반 베트남전쟁 패배, 경제 대공황, 워터게이트 사건, 냉전 등 미국은 끓고 있었다. 긍정적인 흥분의 끓음이 아닌 붕괴 직전의 흔들림의 끓음. 젊은이들 사이에서 윗세대들의 행태에 반발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억압에 대한 그들만의 표출 방법이었을까? 1980년대 '할렘'을 중심으로 히피, 벽 낙서, 랩을 주종으로 내세우는 음악 등, 왠지 껄렁껄렁해 보이는 문화가 발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을 총칭하여 '힙합'이라고 칭한다. 그러니까 힙합은 태생부터 반항이고 격분이며 억압이다. 그러니 그들의 가사와 퍼포먼스가 당연히 거칠 수밖에 없다.

투팍, 닥터드레, 카니예 웨스트, 제이지 등 힙합의 계보를 눈여겨보면 뾰족한 지점이 있다. 바로 밀레니엄 시대의 '에미넴'. 그는 태생부터 흑인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공간에 당당히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 백인이다.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날고기는 흑인들 사이에서 '역차별'적 요소를 극복하여 당당히 우뚝 선 인물로 보인다. 물론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동의를 하고, 그의 음악사적 공적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더 원거리에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미국 음악사의 다양한 장르들(재즈, 블루스 등)은 흑인으로부터 창발 되었는데, 이것으로 배부른 자들은 그들 자신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음악들의 기원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들이 자신들의 비감을 달래기 위함이었는데 그것을 상업화하여 공전의 히트를 시킨 자들은 백인이었다. 즉, '재주는 곰이 부리고 이익은 다른 사람이 챙기는' 격이었다.

말하자면 흑인들은 힙합의 기득권으로 군림한 것이 아니라 빼앗기는데 넌덜머리가 나버린 자들의 필사적 방호였을지도 모른다. 혹시나 이 영화를 통해서 혹은 여러 사견으로 에미넴을 단순히 영웅화해버리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에미넴의 <WITHOUT ME>에 'I am the worst thing since Elvis Presley(나는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로 최악인 놈이지)'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것이 참고가 될 것이다. (참고로 엘비스 프레슬리는 흑인음악의 백인화를 논하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8 마일(8 Mile, 2002 作)'

1995년 금요일 밤, 디트로이트 8마일 313번가, 한 힙합클럽에서는 매주 랩 배틀이 벌어진다.  야유와 환호가 가득한 흑인들의 공간 속에 백인 남성 한 명이 무대에 오른다. 무대 울렁증이 있는 그는 이미 한 번의 토악질을 한 상태. 결국 비아냥거리는 분위기에 주눅 들어 무대를 뛰쳐나간다. 영화는 지미(에미넴)가 명성을 날리기 전의 시절을 조명한다. 그가 일하는 공장의 프레스 기계처럼 업, 다운을 무한 반복하는 앞이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시절.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보여주었던 영화 <레이>같은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쳇 베이커의 한 시절을 보여주었던 영화 <본 투비 블루>의 방법론에 맥이 닿아있다. 동트기 직전의 칠흑 같은 어둠의 새벽, 기승전결의 '기승' 정도의 바운더리에 있는 그를 영화는 그리고 있다. 8 마일(약 9.7km)은 디트로이트 힙합클럽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백인이 흑인의 음악에 접근하기 위한 정서적 거리의 메타포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지미가 힙합에 다가가는 음악적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8 마일>은 어쩌면 대중들(필자와 같은)이 에미넴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조금은 타파해주고 있다. 그는 혜성처럼 등장해서 남을 폄하하는 디스랩으로 부귀영화를 누린 가수가 아니다. 영화 속 20대 초반의 그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불우한 가정환경,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 예상해 보건대 그의 청소년기도 분명 그리 광명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무대 울렁증까지 있어 자신의 구토물이 옷에 묻기 일 수였다. 그가 버스에 앉아 창밖으로 보는 디트로이트의 황량한 풍광들,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맞아주는 지옥 같은 가정환경들, 그 속에서 행해진 필사의 작곡과 작사들은 훗날 그의 성공에 기틀을 마련한다. 그러니 필자는 그의 성공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억압'의 성격이 닮어있는 음악을 '억압'받고 있는 자가 표현하니 그 시너지는 오죽하겠는가?

영화는 이런 그의 삶을 꽤 객관적인 카메라에 담아내려고 노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8 마일>은 전체적으로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지미가 알렉스(브리트니 머피)와 사랑을 나누는 신(Scene)의 황홀경은 윙크(유진 비어드)와 알렉스의 음침한 섹스 장면과는 분명히 감정적인 대조를 이룬다. 지미의 크루가 파파 덕(안소니 마키)의 크루들보다 상대적으로 정의로워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에미넴을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보기보다는 1인칭 시점으로 묘사하였는데, 그러니까 본인이 작성한 본인의 자서전인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자서전은 무조건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 비판할 거리는 아니다.

문제는 영화적인 기법들에 있다.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카메라는 지구력을 잃고 점점 '무념'의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다. 특히 불길이 휩쌓인 집을 탈출하는 장면, 전 여자친구 집 앞에서 잠시 그녀를 바라보는 쇼트 등 무의미한 인서트들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한다. 편집도 비슷한 입장이다. 힙합 비트와 걸맞은 잘게 썰은 쇼트들을 이어가다가도 어느 순간 리듬은 정체되고 차분해진다. <위플래시> 같은 영화는 편집이 드럼비트와 맞물려 시너지를 발생시키는데 <8 마일>은 음악이 편집을 이끌고 나가는 결과로 점철된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심심한 스토리텔링을 에미넴의 음악이라는 강철의 외피로 꽁꽁 둘러싸놓은 작품이다. 반면에 연기적인 측면에서는 미진함이 없다. 자신의 연기를 자신이 해내는 에미넴 본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주조연의 배우들부터 공장 동료들을 연기한 단역들까지. 음악을 제외하고 이 영화의 힘을 꼽으라면 배우들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잔잔한 초, 중, 후반부를 지나 수미쌍관 구조를 보이는 마지막 랩 배틀 시퀀스의 폭발력은 굉장하다. 아니 당연히 굉장할 수밖에 없다. 이 순간의 영광을 위해 달려온 영화이므로. 영화의 리듬이 아닌 음악의 리듬은 관객의 몸을 흔들게 하고 <미션> 같은 영화에서 느꼈던 음악이 영화를 몰입하게 만드는 기체험을 다시 한번 향유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토록 엄청난 에미넴의 음악적인 힘은 무엇인가? 필자는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에 대한 감각이 그 누구보다 무딘 편이기에 필자가 답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사견을 조심스럽게 말해본다면, 그의 음악이 청자의 귀를 사로잡는 첫 번째 이유는 '톤'이다. 사실 음악의 기술적인 면들을 마스터한 고수들끼리 대결은 '톤'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데, 확실히 그의 목소리는 개성 뚜렷하고 잊히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그의 독창적인 랩 방법론이다. 이번 기회에 그의 주옥같은 명곡들(<Without me>, <Lose Yourself>, <'Till I Collapse>, <Beautiful Pain>, <Business>, <Rap God>, <When I`m Gone> 등)을 다시 탐닉해보니 가사의 라임과 그 라임과 라임을 리듬으로 연결하는 재기에 탄복하게 된다. 끊어쳐낼 때와 얇게 썰어낼 때를 아는 그 센스. 그의 작사 능력과 결부된 그의 랩은 여전히 세련되었다.

<8 마일>의 O.S.T는 오스카 최초 음악상을 수상한 '힙합'이다. 'You better lose yourself in music'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Lose Yourself>의 가사처럼 그의 음악은 나 자신을 잃고 빠져들게 만든다. 만약 당신이 이 영화에 감흥을 받았다면 그것은 영화 '탓'이 아닌 오롯이 음악 '덕'이다.

★★★ (별 3개)

감흥을 받았다면 영화 '탓'이 아닌 음악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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