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란잔 May 25. 2017

정성일 평론가 시네마톡

천국보다 낯선 [쯔욘의 영화한잔]

짐 자무쉬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전작 <영원한 휴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보통 실질적 장편 데뷔작은 이 영화를 꼽곤 하니 말이다. 이 영화는 스토리에서 얻어지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해결이 안 되는 영화이다.(라고 정성일 평론가가 언급했다). 상당히 논리적인 그의 견해를 좇다 보면 짐 자무쉬 본인조차 자신의 영화에서 관객들이 스토리를 보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장 큰 근거는 매 쇼트와 쇼트 사이에 들어 있는 '블랙아웃 쇼트'. 우리가 이야기에 빠져들만하면 차단해버리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잊어버릴만하면 다시 상기 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간 무수히 보아왔던 많은 영화들이 선택한 방법과는 정반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될 텐데, 그 답을 찾기 위해선 '짐 자무쉬는 영화를 가장 시의 형식으로 만든 감독'이라는 한 평론가의 말에 주목해야 한다. '시'라는 장르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리듬(그러니까 운율)일 텐데, 이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우측에서 좌측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에바(에스터 벌린트),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륙하는 비행기 앞의 에디(리처드 에드슨). 수미쌍관을 따르고 있다. 조금 더 부연하기 위해 블랙아웃 쇼트의 다른 활용법을 소개한다. 67개의 쇼트로 이루어진 이 영화에 66개의 블랙아웃 쇼트를 삽입하였는데 마치 이것은 67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시의 구조와 일치하게 된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며 가장 어려웠던 점을 블랙아웃 쇼트의 프레임 수 조절이라고 대답했다. 필름 영화는 1초에 24프레임으로 이루어지는데(인간의 눈으로는 식별 불가하다), 그 블랙아웃 쇼트의 프레임을 초당 24프레임으로 할지 23프레임으로 할지 등 몇 개의 프레임으로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는 말이 된다. 비가시적인 프레임 수의 차이가 분명 관객에게 어떤 리듬을 전달해주리라고 믿었기에. 이 정도면 이 영화의 작법이 시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화의 스토리에 몰두하여 자기만의 소설을 쓰기보다는 영화 자체를 시처럼 느끼는 것이 올바른 감상법이라는 뜻이다.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 1984년 作)'


<천국보다 낯선>은 크게  'The New World(신세계)', 'One Year Later(1년 후)', 'Paradise(천국)' 3개의 단락으로 구성되는데, 영화 속 에바의 행보를 좇으면 뉴욕, 클리브랜드, 플로리다로 이어지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띄게 된다. 정성일 평론가는 1부의 17개 쇼트를 인수분해 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의 무지막지한 쇼트 분해는 이 영화의 가치를 몇 배 상승시켜놓았다.


짐 자무쉬는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미국으로 온 이방인 같은 시각으로 자신의 세계를 축조해놓았는데 <천국보다 낯선>에서는 뉴욕의 화려한 밤거리도, 낭만적이 플로리다의 해변가도 보이지 않는다. Paradise라고 제목까지 명명해 놓은 것치고는 플로리다 앞바다는 꽤나 황량했다. 이로써 그는 '천국'을 보다 '낯설'게 만들어 놓는다. 이런 아웃 사이더적인 그의 근원을 찾기 위해선 정성일 평론가가 소개한 짐 자무쉬가 뽑은 영화 베스트 10 중 두 편을 주목해야 한다. 오스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동경 이야기>는 영화 속 경마에 참여한 Tokyo Story라는 말 이름 중 하나로 등장한다). 할리우드 선배가 아닌 일본 영화 장인에게 존경심을 표한 그의 보편적이지 않은 선택. 이와 더불어 그의 근원 찾기에 화룡점정을 찍어줄 사실은 그가 일본의 '마(魔)'라는 개념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이다. 서양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여백의 미라는 개념. 그래서 그의 영화 속 쇼트 중 분명 빈 공간에도 시선을 주목시키는 모습들을 찾아 볼 수가 있었다. 동양에 심취하고 자국에 관심이 없는 그의 본질은 분명 자신의 영화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럼에도 그에게 '<천국보다 낯선>의 장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냐?'는 질문에는 고민 없이 '코미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이 영화의 한 쇼트, 한 쇼트를 반추해보자. 아이러니와 유머. 진정 그가 시의 형식을 추구했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쇼트들을(시로 치면 연을) 같은 속성의 것들로 축조해 놓은 것이다. 혹자는 이런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다. "영화 전체를 시의 구조로 만들기 위해 세부적인 요소들은 다소 쉽게 만들었군!"  그렇다면 이런 예를 들어 반박하고 싶다. 에바가 들고 다니던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I Put a Spell on You>이었는데, 호킨스는 북부에서 시작해 동부로 퍼져나간 가수이다. 그의 음악 여정은 동부에서 북부로 이동하는 에바의 동선과 정확히 크로스 된다. 에바와 윌리(존 루리)가 멍하니 보던 티브이 속에 흘러나오던 음악은 미국인이라면 단박에 알아챌 꽤나 유명했던 B급 호러물의 음악이었는데, 그들이 리액션 없이 묵묵부답인 이유는 헝가리에서 넘어온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인 것이다. 영화 전체를 기호학에 기반을 두어 정교하고 오밀조밀하게 엮어놓았다. 이유 없는 장면이 없고, 이유 없는 대사가 없다. 그럼에도 간단해 보이는 이유는 세련된 처리 때문이다. 원래 진정한 고수는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천국보다 낯선>을 줄거리에서 감흥을 찾아내는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스토리보다는 영화의 리듬을 느끼게 하려는 짐 자무쉬의 의도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어쨌든 '시'라는 장르에도 '주제'는 있다. 물론 이것이 '이 시의 주제는 무엇인가?'라는 대한민국이 문학을 대하는 정답 찾기적인 자세를 주야장천 학습 받아온 필자의 오판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주제 찾기라는 진부한 행위를 답습해 보려고 한다. 클리브랜드에서 며칠을 만끽하던 에디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분명 새로운 곳인데 너무나 익숙하다고'. 헝가리에서 뉴욕으로 넘어온다고, 뉴욕에서 클리브랜드를 향해 간다고, 클리브랜드에서 파라다이스라고 불리는 플로리다에 도착한다고, 과연 그 끝에 우리가 꿈꿔온 천국이 있을까? 인간은 금방 익숙해하고, 권태에 젖는 동물이다. 화려한 뉴욕커로 산다면 인생은 행복해지는 것인가? 경치 좋은 북미에서 살면 천국을 찾을 수 있을까? 진정한 이상형인 이성과 매일 밤을 함께한다면 평생 천국 속에 살아가는 느낌일까? 오히려 천국보다 낯섦에 당혹감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 기억하자. '일체유심조'


마지막으로 정성일 평론가에게 했던 질의응답을 소개한다.

질문 : 영화 비평을 하다 보면 글이 소설이 되어가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변 : 보이는 것만 쓰십시오.


★★★★ (별 4개)

이 시의 주제는 '일체유심조'




작가의 이전글 다시 BORN '녹터널 애니멀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