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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Aug 12. 2017

권력의 맛(혹은 중독의 맛)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쯔욘의 영화한잔]


높은 곳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여 좌, 우, 전, 후방을 널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가까이에 다가와 있을 것이고, 고개를 숙여 저 아래 세상을 보면 많은 것들이 작게 보이니 한낱 우리 인간도 넓은 세상 아래 미물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라는 센치함과 경건함 사이 어딘가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어쨌든 고도가 높아질수록 우리를 내적으로 자극하는 어떤 것들이 생겨난다는 뜻인데, 임모탄 조(휴 키스-번)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우선 본인이 구세주라고 자칭하는 꼴을 보니 이미 권력에 흠뻑 취해있는 것은 자명해 보이고, 굳이 지하수를 그 높은 곳까지 끌어다가 개방하며 감칠맛 날 때쯤 단수를 해버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물을 분사하고 그것을 받아먹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마치 자신의 씨앗을 흩뿌리는 것 같은 정복욕에 사로잡힌 사이코패스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물에 중독되지 말라'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두려움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도 보이는데 그는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임모탄 조는 디스토피아 직전인 이 시대에서 나름 윗세대에 속한다(연령의 측면에서). 방사능에 피폭되어 썩어 문드러진 그의 몸은 시대의 흐름을 직격탄으로 맞은 인물임을 드러내는 방증일 텐데, 아마도 그가 보습제와 산소호흡기 없이는 하루도 살기 힘든 상황이 된대에는 어딘가에 '중독'된 그의 혹은 그보다 더 윗세대들의 전철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중독, 더 많은 물질을 향유하기 위한 중독, 더욱 강한 군사력을 얻기 위한 중독 등. 중독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그는 이렇게 자신의 위치를 끝까지 유지하려는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그의 작태들이 이해가 된다. 인간은 본래 그 옛날 바벨탑을 쌓았던 것처럼 가만히 두어도 중력을 거역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충만한 존재이다. 신분상승이든, 부의 상승이든 어떤 상승이든 간에 비상에 대한 중독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고, 자신의 위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증세가 더욱 심각해질 뿐 다시 내려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이런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에 임모탄 조는 자신의 위치를 땅에서 최대한 높은 곳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이리라.

필자가 보기에 <매드맥스>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상하의 낙차'에서 비롯된 것 같다. 누구는 위에 있고 누구는 아래에 있으니 부자연스러움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 부자연스러움은 대게 시스템의 균열로 이어지니 말이다. 결국에 임모탄 조는 자신이 영위하고 있는, 한편으로는 자신을 보호해주기도 하는 '타자들과의 수직적 관계'를 잠시 뒤로한 채 그들과 같은 높이로 내려온다. 그리고 한없이 일직선인 수평선을 달리기 시작한다. 이 수직에서 수평으로의 전환이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의 동력일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니 위치에너지는 에너지 보존법칙에 의해 다른 에너지로 전환이 되어야 할 것이고, 아마도 그 전환된 에너지는 임모탄 조의 '분노'라는 이름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리라. 그런데 정말로 그가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을까?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Madmax : Fury Road, 2015년 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가장 아가페적인 희생을 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바로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우선 자신이 향하는 길에 임모탄 조의 여인들을 탈출시켜 동행한다는 행위 자체가 희생 충만한 일일 것이다. 그 행위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장면이라면 기름을 전달해주기로 한 집단과의 만남 직전에 자신이 'fool(바보)'이라고 외치면 일단 밟으라고 말하는 순간일 것이다. 일말의 고민 없이 자신의 목숨보다도 여인들의 생면부지를 더 중히 여기는 모습. 퓨리오사 외에도 영화 속의 여성들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이타적이다. 예를 들어 스플랜디드(로지 헌팅턴 휘틀리)가 퓨리오사에게 향하는 총격을 막기 위해 임신한 자신의 몸으로 막아내는 면면들 등.


반면에 그녀들을 좇는 임모탄 조의 부하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동행하는 남자 둘, 맥스(톰 하디)와 눅스(니콜라스 홀트)의 행동만 보아도 기본적으로 남성들의 행동은 이기적인 사고관으로부터 비롯되는데, 맥스는 어쩔 수 없이 이 질주에 참여는 하지만 항상 적개심을 품으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한다. 그는 퓨리오사의 몇 번의 희생정신을 보며 조금씩 이 집단에 동화되기 시작하고 과거의 사건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방화쇠가 발화되면서 본격적으로 팀을 위해 희생한다. 눅스는 상태가 심각하다. 임모탄 조와의 주종의 관계에서 종의 위치였음에도 그 위치에 중독되어버린 답 안 나오는 인물인다. 그 또한 여성의 사랑, 희생 등의 것들에 감화되어 끝내는 자신의 목숨을 타인을 위해 바치게 된다. 말하자면 이 영화 속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희생을 선택하는 도덕적 가치관을 내재하고 있고 대조적으로 남성들은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 학습 받고 나서야 희생을 하기 시작한다는 맥락이다. 그러니 <매드맥스>는 '세상을 지배하는 남자, 그 남자를 지배하는 여자'라는 구문과 딱 들어맞는 여성 우월적 세계관을 두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서두의 질문을 다시 해본다면 최상위층으로 보이는 임모탄 조보다 더욱 상층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라는 존재 아닐까?


이런 희생정신이라는 숭고한 가치의 실현 유무를 차치하고서 생태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기본적으로 여성은 잉태를 할 수 있으니 종의 번영을 위해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고 임모탄 조를 바벨탑에서 끌어내린 것도  하찮은 피 주머니나 한가득 실은 기름 따위가 아니라 자신의 아이를 잉태한, 잉태할 수 있는 여자들이지 않았던가? 퓨리오사와 일행들이 녹색의 땅인 줄 알고 도착한 곳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것도 모두 여성들뿐이었고 무엇보다 임모탄 조의 자리를 계승하는 것이 퓨리오사이니 <매드맥스>의 세계에서는 확실히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세계관에 의거하여 임모탄 조의 후임으로 누군가가 임명이 되어야 한다면 도덕적 가치관을 함양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더 우월한 종이기도 한 '여성'에게 바치는 것이 맞긴 하다. 퓨리오사가 까마득한 최선이 아닌 가능성 적은 차선을 선택하여 다시 원점 시타델로 돌아가는 것이 영화 혹은 감독에 의해 타의적으로 선택된 느낌이 있다는 뜻인데, 분명히 그녀는 전임 군주와는 다르긴 할 것이다. 물과 녹색식물을 공유할 것이고 종의 번식을 위해 인권을 모독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과연 영원히 '중독'되지 않을까? 다르게 질문해 본다면 임모탄 조도 처음부터 '권력의 맛'에 중독된 자였을까? 아마도 처음에는 물의 중독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필요해진 것이 군사력이었을 것이고 점점 그 중독이 심해지며 이것저것 통제하다 보니 자신만의 안정화된 시스템이 구축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욱 '맛'에 심취하여 종족 번식이라는 본능적인 속성까지 '중독'의 영역을 늘려나가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필자는 <매드맥스>에서 중독의 폐해, 중독된 인물의 최후, 여성의 우월성에 대한 증거는 분명히 읽을 수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여성이 권력을 가졌을 때?' 혹은 '여성이 중독된다면?' 에 대한 레퍼런스는 찾을 수가 없다. 권력이란 것은 한번 맛들면 절대로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퓨리오사는 자신의 이성을 언제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시종일관 선두에서 차를 몰며 수평적인 이동만 경험했던 그녀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수직의 하늘 가까이로 향하는 것을 보니 언젠가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괜한 기시감이 든다. 어쩌면 그녀와 결탁해 안온한 삶을 살아볼 수도 있을 맥스가 그렇게 유유히 사라지는 것은 이미 그는 높이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 (별 3개 반)

권력의 맛(혹은 중독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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