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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Aug 21. 2017

시간을 공유했다는 것과  잘 안다는 것

더 테이블 [브런치 무비패스]

<더 테이블>은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전혀 연관 없는 4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이다. 영화를 본 후 포스터를 다시 보니 남자 배우들보다는 여자배우들이 훨씬 중요한 영화였나 보다. 포스터에는 그녀들의 얼굴만 보이기에. 그래서 필자도 이 4가지 에피소드들을 그녀들의 극 중 이름으로 칭하려고 한다. 서사 순서대로 유진(정유미) 에피소드, 경진(정은채) 에피소드, 은희(한예리) 에피소드, 혜경(임수정) 에피소드라고. 혹은 1, 2, 3, 4 번째 에피소드. 필자가 굳이 각각에 이야기를 명명하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4가지 에피소드를 가지고 짝짓기 놀이를 해볼 심산이기 때문이다. 공통점을 찾기 위해 유진-혜경, 경진-은희(1-4 번째, 2-3번째)로 묶기도 하고. 반대로 차이점을 비교하기 위해 경진-혜경, 유진-은희(2-4 번째, 1-3번째)로 묶어보기도 하겠다.


1-4번 에피소드의 비교. 유진과 혜경의 이야기는 무엇이 닮았나?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제 남자배우들을 거론할 차례이다. 유진과 창석(정준원), 혜경과 운철(연우진). 그들은 한때 사랑을 나눴던 연인이었다. 왜 헤어진 지는 정확히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어림짐작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헤어져 있는'이라는 그들의 현재 상태이다.


2-3번 에피소드의 비교. 마찬가지로 경진과 은희의 공통분모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들의 대화 상대를 거론해야 한다. 경진과 민호(전성우), 은희와 숙자(김혜옥). 이들의 관계는 앞서 언급한 유진, 혜경과는 조금 다르다. 이들은 원래 잘 알던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게 아니다. 경진과 민호는 호감을 갖고 3회 정도 만났던 것으로 보이고 마지막 세 번째 만남은 조금 깊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의 불씨가 피워 오르기 시작할 때쯤 민호는 꽤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는데 명백히 어긋나는 순간이다. 은희와 숙자는 위장결혼 작업을 위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만나는 관계이다. 그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행위는 오롯이 필요에 의한 것이다. 어쨌든 이들은 경직된 관계이다. 문득 떠오르는 민호의 대사. "경진 씨 저 잘 모르시잖아요".


아마 이제 필자가 짝을 나눈 방식을 눈치챘을 것이다.  잘 아는 관계, 이제 알아가는 관계라는 인간관계의 깊이와 넓이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이제 필자가 사유해 보려는 것은 누군가를 안다, 모른다를 쉽게 정할 수 있느냐?라는 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질문을 구체화하면 우리는 누군가와 단순히 오랜 시간 관계 맺음을 행했다고 그 혹은 그녀를 잘 알고 있는 것인가? 상대와의 시간 공유는 정서 공유와 정비례하는 것인가? 그럴 리가.


'더 테이블(The Table, 2017년 作)'

2-4번 에피소드의 비교. 혜경과 운철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인생의 길과 마음의 길이 왜 다를까?" 말인즉슨 사람의 관계 맺음이 자기 뜻대로 안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대사가 이제 4번째 만남을 갖는, 심지어 한 번의 타이밍을 놓친 경진과 민호의 대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서로 동침을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는 혜경과 운철의 대화에서 나온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왜 이별의 종착역은 더 깊은 감정을 공유한 연인의 것이어야 하는가?


"나 혜경 씨 데리고 살만한 돈이 없어". 돈이 문제였을까? 사랑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생각하게 되니 문득 엄습하는 현실. 당신이 말만 하면 지금의 약혼자와 헤어지겠다던 혜경도 운철의 '돈'얘기에 연애라도 하자며 꼬리를 내린다. 반면에 경진과 민호는 돈이 중요하지 않다. 변변한 일자리도 없고, 확실한 비전도 없어 보이는 뭐하나 내세울게 없는 민호. 그가 경진에게 내미는 여행 선물은 중고 손목시계, 허름한 카메라 등이다. 그럼에도 경진은 감동을 받고 그들의 관계는 현실을 초월한 낭만으로 귀결된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왜 그들은 돈과 현실이 중요하지 않았나? 답은 뻔하다. 아직 현실을 고려할 정도로 관계가 깊지 않으니까. 아직 서로 잘 모르니까 현실적인 단계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은' 돈이 중요하지 않다. 혜경과 운철도 분명히 이들처럼 심장 터질 것 같은 첫 만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탑승한 열차는 낭만발 현실행 열차. 그들은 이제 거의 종착역에 다다랐다.


1-3번 에피소드의 비교. 유진과 창석, 그들도 연인이었다. 얼마나 긴밀했던 사이길래 창석은 그렇게 파렴치한 질문을 해대는 것일까? 유진은 자신이 몰랐던 창석의 지질함에 어이가 없는 표정이다.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또 다른 모습. 과연 그들은 다시 만날까? 은희와 숙자. 이들은 만남부터가 거짓을 위한 만남이니 정서적 교감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줄 대체자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숙자는 사별한 딸이 있고, 은희는 사별한 어머니가 있다), 숙자의 딸과 은희의 결혼식이 같은 날 한다는 언뜻 보면 운명적으로 보이지만 단지 우연의 장난인 이유로 마치 유사 모녀의 관계가 되어버린다. 두 가지 비교를 통해 명확해졌다. 누군가와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는 것과 누군가를 잘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

<더 테이블>에서 필자가 구도적으로 유심 있게 본 것은 'The Table' 이 아니라 'The Window'다. 그들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탁자 옆에 거대한 창문. 유진-혜경 에피소드와 경진-은희 에피소드의 또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저 거대한 창문과 카메라의 역학관계에 있다. 분명히 유진-혜경의 이야기에서는 인물들의 역 쇼트를 찍기 위해 상상선을 넘어 카메라는 창문 밖으로 나간다(반대로 경진-은희의 에피소드에서는 카메라는 카페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즉, 그들이 있는 공간 밖에서 유리를 통해서 인물들을 비추는 너무나 비경제적인 쇼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종관 감독은 러닝 타임 70분의 이 영화를 7일 동안 찍었다고 한다. 예측컨대 제작비와 시간이 감독의 편이 아닌 영화이다. 그럼에도 그는 카메라를 밖으로 끌고 나가 자신의 영화적 미학을 밀고 나간다.


도대체 왜?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들의 대화를 유리창을 통해 밖에서 보면 어떤 느낌일까? 그들을 연인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들을 부부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녀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공산이 크다. '소리'의 부재. 이들의 관계가 그렇다. 아니 인간관계가 그렇다. 거대한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것처럼 훤히 다 보이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는데 모르는 형용모순의 관계. 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역설적인 관계. 많은 시간을 공유한 이들의 대화에서는 유리벽을 이용한 단절을 만들어내고, 이제 시작하는 이들의 대화에서는 단절을 없앤 것. 우리의 인간관계에 대한 감독의 관념은 아닐까?


글의 마무리에 와서 필자는 영화의 시작점으로 회귀하겠다. 물웅덩이에 비치고 있는 나무 한 그루, 정체를 알 수 없는 보푸라기, 컵에 맺힌 물방을, 알고 보니 테이블 위에 장식용으로 올라가는 꽃이 담긴 물컵. 카메라가 정확히 보여주기 전까지는 추측만 가능하다. 너희들은 타인의 실체를 진정 끝내 알 수가 없다는 듯이. 내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질감이 바로 이렇다는 듯이.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더 테이블'만 자신의 자리에 우두망찰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 (별 3개 반)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는 것과 잘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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