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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Aug 26. 2017

미성숙한 피터 파커, 미성숙한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홈커밍(HOMECOMING)'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이 영화의 온도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고등학교 졸업파티라는 뜻으로 보건대 스파이더맨 그러니까 피터 파커(톰 홀랜드)의 학창시절의 모습에 집중하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소년이 청년이 되는 성장영화로서의 텍스트를 다뤄보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처럼 갑작스럽게 얻게 된 힘에서 비롯된 정체성 혼란이라는 맥락은 동일하지만 조금 더 재기발랄, 유치찬란, 개구적인 느낌이 꽤 많이 가미되었다. 이 '정체성'이라는 측면을 면밀히 관찰한다면 양 갈래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소년이 청년이 되어가는 생태적인 혹은 성징적인 정체성. 그리고 본인에게 갑자기 생긴 어떤 우주적인 힘에 대한 정체성.


첫 번째 관점. <스파이더맨 : 홈커밍>에서 이전의 시리즈들과의 눈에 띄는 차별점이 있다면 피터 파커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 그동안의 그는 교내에서 비주류의 소심남 정도로 그려졌던 것에 반해 이번 영화에서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기는 하나 주체적이고 두뇌가 뛰어나며 소위 말하는 영재로 그려지고 있다(이 묘사는 실제 원작과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현실의 텍스트와 맞닿을 수 있는 질문을 해본다면, 우수한 영재는 또래의 누구보다 빠르게 사회에 나오는 것이 옳은 일인가? 득인가 실인가? 정도 일 것이다. 피터 파커가 아무리 정신적, 육체적으로 동기들에 비해 우수하다고 한들 아직 그는 세상에 나오기엔 어리다. 생태적인 나이, 사회적 나이라는 측면 둘 다. 여기에는 구태의연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추가해 볼 수도 있다. 성인은 똑똑하고 힘이 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자연스러운 성장이 동반되어야 한다. 필자는 가끔 어린 영재들을 미리 대학에 보냈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씁쓸해지곤 하는데 과연 그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인가? 그들은 조금 더 어린 나이에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이론은 습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면에 자신의 나이에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영원히 망실하게 되는 꼴이니 말이다.

나이에는 그 나이에 맞는 환경과 책임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필자는 피터 파커의 마지막 선택을 존중한다. 루틴 하지만 정상적인(그리고 필수적인) 학업을 이수하는 고등학생으로서의 그의 모습 말이다.


두 번째 관점. 자신에게 예상치 못한 파워가 주어졌을 때의 카오스. 영화에서는 이것이 '거미력'과 같은 다분히 피지컬적인 것이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부, 명예, 권력 등이라 치환하여 생각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위치가 격상하게 되면 그것에 취해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될 우려가 늘 내재되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피터는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잠식시킬 정도로 변모하지는 않았지만 어벤저스에 대한 심각한 동경으로 보건대, 자칫 잘못했으면 엇나가 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어떠한 이유로 그가 손쉽게, 예정보다 빠르게 영웅이 되었다면 그의 영웅놀이는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캡틴 아메리카만큼의 견고한 국가관, 가치관이 성립되어 있지 않았고, 아이언맨만큼의 노련함과 자신감 그리고 연륜이 아직은 부족하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슈퍼히어로 로서의 피터 파커의 마지막 선택도 옳았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국가의 대소사에 개입하기보다는 동네의 작은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는 동네 히어로로서의 모습이 나이에 맞다.


'스파이더맨 : 홈커밍(Spider-Man : Homecoming, 2017년 作)'



영화에서 악당으로 등장하는 벌처(마이클 키튼)는 부자들의 경제논리 속의 피해자이다.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터진 새우등이면서 피터가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이런 가정을 해보겠다. 만약 벌처가 미성숙한 영웅이 되어버린 피터를 감정을 다해 설득한다면? 그 순간 피터는 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직 그는 세상에 때묻지 않았다. 세상이 선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선과 악이 분명한 구분이 지어진다고 생각하는 소년이다. 그런데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선과 악은 습자지 한 장의 경계를 두고 뒤섞여 있다. 찬호께이의 소설<13.67>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듯 세상은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고 그 사이에 '회색'이라는 것 이 존재한다. 그래서 아직 순수한 영혼들은 흑과 백을 구별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회색 속에서 분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물론 피터도 마찬가지.


예를 들어 그는 리즈(로라 해리어)의 홈 파티에 초대받은 날 밤 벌처 집단이 만든 무기를 사려는 한 남자를 구한다. 후에 그를 다시 만나 '권총 정도'사려고 했다는 그에게 귀여운 응징을 가한다. 그는 조카 운운하며 마치 자신도 평화주의자인 양 발언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는 '권총 정도' 사서 누군가에게 위해를 혹은 협박을 가하려고 준비하던 인물이다. 그를 이렇게 가벼운 벌책 정도로 넘겨도 되는 것일까? 필자는 피터가 회색 속에서 방향을 잃은 선택을 했다고 판단한다.

또 한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피터는 갑자기 생긴 힘에 지나치게 의지를 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는 이 가면을 벗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두려움이 마음속 깊은 곳에 스며들어 있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를 세상에 풀어 놓는 것은 어른으로서의 직무유기이다 그런 면에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유사 부자관계는 꼭 필요한 것이리라. 그래서 딱 이 정도의 성장과 권한이 아직은 그에게 적합하다. 권한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차 늘려나가면 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왜 피터 파커가 아직 영웅이 되기에 미성숙한지에 대한 필자의 변이다.

마지막 쓴소리. 필자는 서두에 <스파이더맨 : 홈커밍>은 그간의 <스파이더맨>시리즈 보다 더욱 개구지고 소년 미가 넘친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의 다른 판본은 무엇인고 하니 어리고, 시끄럽고, 정신없다이다. 피터와 네드(제이콥 배덜런)가 투 샷으로 등장하는 거의 모든 쇼트는 유머로 시작해 유머로 마무리되는데 과함은 관객을 지치게 하고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러한 면면들을 아직은 미성숙한 피터의 모습을 영화의 형식과 일체화했다고 커버를 쳐주기에는 영화의 마무리가 될 때쯤 허탈감이 심해진다. 마지막 스텔스 비행기에서의 전투. 카메라를 좇으며 무엇을 보아야 할지 전전긍긍하다 보니 벌처는 자멸했고 피터는 유야무야 한층 성장해 있었다.


★★★ (별 3개)

미성숙한 피터 파커, 미성숙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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