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아이피(V.I.P. 2017년 作)
내적속박
'기획 귀순'이라는 생경한 단어보다 더욱 관심이 가는 건 VIP(이종석)를 둘러싸고 시종일관 으르렁거리는 남정네들의 발악이다. 박재혁(장동건), 채이도(김명민), 리대범(박희순). 이들은 국정원, 경찰, 북한 공작원이라는 소속만 다를 뿐 공통적으로 조직생활의 하수인들이다. 폭력적으로 말하면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애매한 위치. 시스템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버티고 있는 미생들. 소속에서 이탈되기 직전이거나(박재혁), 이탈되었다가 복권되었거나(채이도), 완전히 이탈되었거나(리대범). 이들이 하는 일이 특수할 뿐 대한민국 직장인들과 다를 게 뭐 있겠는가? 윗 사람들 의중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고, 그래도 버텨보겠다고 아랫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비정해져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로열패밀리'가 아닌 이상 '직업'은 목숨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김광일(이종석)은 중요하다. 그가 남한, 북한, 미국의 국제관계에 트러블메이커(혹은 키맨)라는 고차원적인 이유가 아니라 각자의 생명줄을 연장시켜줄 최후의 보루라는 관점에서 중요하다. 이런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리대범의 행보의 목적도 동일한 성질인가? 그는 사회주의국가의 인민인데?' 넘어온 이상 할 수 없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측을 해본다면 리대범도 결국 북으로 돌아가 직업 재탈환이 목표는 아니었을까 싶다. 단순히 복수만이 목적이었으면 김광일을 보는 순간 처단했겠지. 결론적으로 그들에게 김광일은 자신들의 생명줄을 움켜쥔 'Very Important Person'이다.
특히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자장에 놓여있는 재혁과 이도는 사회 시스템을 완전히 체화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 탈락자의 빈자리를 차지한 대체자이지 않던가(그들 모두 선배를 대체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담배를 뻑뻑 피워댄다. 최전선에서(그러니까 필드에서) 자신은 괴물이라도 되는 양 두 눈에 힘 '빡' 주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나약함을 감추려고 앙앙대는 이 시대의 중년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 까마득한 정글 속에서 버티려니 잠시 뇌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러기에 담배는 안성맞춤이다. 그들에게 담배는 기호식품이 아닌 알량한 해방구다. 즉, 사명감과 투철한 주인의식 따윈 없는 '직업인'.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의 정진수(한석규)가 말했듯 "이게 내 일이니까 하는" 사람들.
이쯤에서 제기해볼 만한 의문. '그들의 차이점은 없는가?'. 답은 각자의 결말이 있다. 일말의 복수심이든, 얄팍한 정의감이든 조직의 궤와 다른 행보를 걷는 채이도와 리대범은 척결 당한다. 이것은 조직에 충성하지 않은 것이 '부덕'인 영화 속 세상이 단죄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리대범의 사망 직후 화면에 비치는 부감과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시점 쇼트의 주체는 영화 혹은 영화 속 세상이라는 입장이다. 반면에 박재혁은 살아남는다. 호형호제하던 선배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데에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던 박재혁. 만약 했다면 서푼짜리 고민. 무엇보다 김광일조차 조직개편이라는 서슬 퍼런 칼날을 피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의 '핏줄'은 결코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다만 연장시켜 줬을 뿐.
그들은 모두 '조직이라는 사회구조'에 속박되어있다.
'브이아이피(V.I.P. 2017년 作)'
외적속박
'이야기를 본다' 와 '이야기를 볼 수밖에 없다'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말이다. 필자는 <V.I.P.>에서 이야기를 볼 수밖에 없다. 아니 '이야기밖에 볼 것이 없다' 그래서 서두에 영화의 이야기에 대한 장광설을 뿜어 내었다. 이젠 외적인 요소를 살펴볼 차례.
'영화는 결국엔 스토리인 것 같아요'. <타짜>, <암살>을 만든 최동훈 감독의 말. '영화에 스토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천국보다 낯선>을 만들던 짐 자무쉬의 미학 혹은 철학. 무엇이 옳은가? 필자는 답을 낼 위치에 있지 않다(답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는 학창시절 죽어라 '문학'은 배워오지만 '영화'는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니 영화를 '서사로만' 읽는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고 늘 관객들은 '반전' 운운한다. 필자가 보기에 스토리에 올인하는 관객보다 더 치명상은 서사에 자신의 미학을 쏟아붓는 감독의 존재이다. 박훈정 감독은 분명히 그런 자장 속에 속해있는 인물이다. 그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V.I.P.>가 주는 '팍팍함'의 정체 파악을 위함이다.
박훈정 감독은 각본가였다. 그러니까 글쟁이. 그의 각본은 주도면밀하다. <V.I.P.>는 <신세계>보다도 <대호>보다도 그물이 더 짱짱해졌다. 실오라기 하나 통과할 수 없는 그물. 그런데 이것이 이번엔 부작용으로 작용한 것 같다. 신선하다기보다는 심각하고, 탄탄하다기 보다는 딱딱하다. 그러다 보니 <V.I.P.>에서는 배우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체스 말처럼 완전히 플롯 놀음에 종속되어 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감독의 예술이니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속박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플롯'으로부터의 속박, '이야기'로부터의 속박. 즉, 캐릭터들 입장에서는 벌써 이중속박 구조 속에 놓여있는 셈이다. 자신들이 뿌리내리고 있는 세상으로부터의 속박과 감독의 자신의 세계 구축을 위한 속박까지. 마치 <모던 타임스>에서 육각 머리 형상 보면 무조건 반사를 일으키던 찰리 채플린처럼 이상하게 배우들의 메커니즘이 부자연스럽다. 한가지 예로 영화의 유머 코드에 거의 조응하지 못한다는 점.
논지를 한번 더 밀고 들어가겠다. 박훈정 감독이 있는 세계도 똑같은 자본주의의 대한민국이다. 무려 제작, 기획, 감독, 각본까지 맡은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이득'을 내야만 한다. 필사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신세계>로 내려오는 그의 각본의 계보로 보건대 <V.I.P.>는 그의 정공법이자 진검이다. 그러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든 무게는 가히 알만하다. 아마도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며 '자본의 압박'에 '역량의 한계점 노출이라는 압박' 등 무수한 압박감 속에서 시달리고 있었을게 자명하다. 결론적으로 캐릭터를 제 손바닥 위에서 놀리고 있는 이조차도 속박에서 피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창조자와 피창조자가 모두 압박받고 있는 <V.I.P.>의 세상은 마치 <인셉션>의 '몽중몽' 구조와 같은 같은 여러 층위의 '속박 구조'를 갖는다. 이른바 '다중 속박 구조'
너무 단단하면 부러지는 법이다. 지나치게 완벽해지려 하면 치명적 결함이 생기는 법이다. '다중 속박 구조'의 여진 혹은 부작용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서늘해지고, 무거워지고, 답답해진다. 필자가 찾았던 팍팍함의 원인은 바로 이런 생태 시스템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감독은 이제 자신의 5번째 장편영화 <마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에서 감독에게 던지는 질문.
'이야기꾼이 되고 싶으신가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음 영화에 전향적인 답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 (별 3개 반)
조직에 속박되고 플롯에 속박된 불쌍한 남정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