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경찰(Midnight Runners, 2017년 作)
작년이었을 것이다. <럭키>로부터 발화된 한국 코미디 영화 부활의 신호탄이 울려 퍼진 것이. 버디무비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 것도 작년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공조>, <더킹>). 필자가 언급한 영화들은 세간의 평가에 상관없이 손익분기점을 넘은 흥행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느냐? 예술품이 아닌 생산품 같은 영화가 올해에도 한국 극장가에 꽤 많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전망. 강하늘, 박서준. 연기자로써 '한창'때를 보내고 있고, 20대 후반/30대 초반이라는 청년으로써 가장 정력적인 시절을 관통하고 있는 이들을 투톱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명확하다. <청년경찰>은 작년의 흥행 법칙의 자장 속에서 탄생한 영화라는 것이.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영화들을 볼 땐 마음속 깊이 솟아오르는 '편견'이라는 놈을 잠재우기가 쉽지 않다. '클리셰'에 대한 병적인 무조건 반사. 이것은 필자가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나 코엔 형제의 신작 혹은 무수히 거론할 수 있는 사랑하는 감독들의 신작들을 맹목적으로 기대하는 감정과 같은 질감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암전이 되기 직전 내가 보게 될 모든 영화를 존중하고 그 앞에 겸손해지기 위해 필사의 다짐을 하곤 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영화의 힘이 내 마음속의 편견이라는 벽을 무너뜨려줄 때'일 것이다. 그 순간은 언제 찾아와도 반갑다. 완전한 전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을 봤을 때 느낀 상큼함,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을 봤을 때의 충만함 정도면 충분하다.
서론이 길었다. 필자에게 김주환 감독의 <청년경찰>은 그런 영화이다. 나쁘지 않음과 좋음의 경계에 놓여 있는 '괜찮은' 영화. 무념으로 마주하던 영화의 쿠데타. 이 영화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선 몇 가지를 걷어 내야만 한다.
'청년경찰(Midnight Runners, 2017년 作)'
맥거핀을 걷어낸다. 그러면 정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준(박서준), 희열(강하늘) 그리고 둘의 청춘스러운 유머. 두 명의 청춘스타가 출연한다는 사실 자체가, 시종일관 지치지 않는 그들의 유머가 이 영화를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미디 대중영화로 둔갑시켜 놓는다. 마치 '따뜻한' 영화인 듯. 혹은 '가벼운' 영화인 듯. 하지만 으레 그저 그런 장르 영화로 넘어가기엔 영화속에 품고 있는 비수가 날카롭다. 필자의 눈에는 두 청춘의 존재 자체가 이 영화의 맥거핀이다. 이들의 케미를 잠시 접어두면 <청년경찰>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한다.
만약 이 영화를 단순한 버디무비로 만들려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현실 고증을 철저하게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힘 있는 사람들의 일에 수사가 집중되면서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공권력의 영합을 많은 영화에서 목격한 바 있다(<추격자> 등). <청년경찰> 속에도 같은 관습을 답습한다. 문제는 그 주체를 '강남'경찰서로 정조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조선족이 등장해 극악무도한 범죄를 자행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보이는 모습을 수많은 영화에서 목격한 바 있다(<신세계>,<아수라> 등). 의문스럽게도 영화는 그들의 집거지를 '대림역' 주변으로 정확히 타게팅하고 있다. 분명히 이는 논란을 일으킬 공산이 높은 선택이다. 이미 영화 속 대림역에 대한 폭력적 묘사에 중국동포들이 불만을 표기한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있으니.
필자는 이러한 설정의 '진위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일반 대중영화를 만드는데 이렇게 직접적인 묘사를 한 감독의 미학이 혹은 의중이 궁금할 뿐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 리얼함은 조금 더 극대화된다. 필자는 임상수 감독의 <나의 절친 악당들> 속 한 쇼트에서 유사 성행위 업소 즉 '귀파방'의 간판이 형형하게 빛을 뿜어내며 놓여있던 장면을 기억한다. 맥락에 관계없는(아무 설명도 없는) 설정이지만 '역시 임상수'라며 무릎을 친 적이 있었는데, <청년경찰>은 한발 더 밀고 나가 그 장소에 대한 설명을 희열의 입을 통해 적극 발언하고, 희열의 눈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기에 이른다. 가족영화로 본다면 불편할 정도로.
중, 고등학생이 가출을 해서 쉽게 큰돈을 구하기 위해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일한다. 가출 청소년이니 납치가 되어도 웬만해서는 알 길이 없다. 납치가 된 가출'소녀'들은 성매매, 난자 적출, 장기적출 등의 입에도 담기 무시무시한 단어들의 사건들에 휘말린다. 이 범죄는 '강남'의 큰 산부인과와 야합하고 있고 심지어 산부인과 의사는 고객에게 8천만 원을 받고 난자를 넘기면서, 납치 주모자들에게는 2천만 원의 돈을 낸다. 본인이 6천만 원의 이익을 챙긴다는 뜻이다. 납치 주모자들은 '대림역'부근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들이다. 누군가 범죄를 직접 목격했어도 어쩔 수가 없다. 경찰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해야 하고, 세상엔 절차가 존재하는 법이고 그 와중에 윗분들의 사건들을 먼저 해결해드려야 하기 때문에.
<청년경찰>에서 (필자가 주장하는) 맥거핀을 다 걷어내면 남는 것은 위의 문단이다. '직접적인 장소'의 묘사, '구체적인 사건의 묘사', '계급 논리, 사회문제가 뒤섞인 범죄 내역'. 마치 신문의 사건, 사고란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현실감.
최근 한국 영화들이 썩은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알고 보면 돈 벌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청년경찰>의 기묘한 점은 주객의 전도에 있다. 세상 운운하면서 돈벌이 수단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마치 대중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체하면서 그 속에 세상을 보여주려는 의도. 낯선 도치.
기준과 희열은 그들이 사복을 입은 '청년경찰'로써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지만 경찰복과 장비로 무장한 '직업경찰'로써는 결국 사건을 해결해 낸다. 감독의 사상은 이 결론에 있다. 결국에 밀고 나가야 할 사람들은 아직 뜨거운 현장의 전투화들이라는 이야기. 열정만 가득 찬 정의로운 사내들이 아닌 사회 시스템 속에 정확한 권한을 부여받은 이들이어야만 한다는 이야기.
수사의 3원칙에 대해 희열과 기준의 답변. 엘리트 희열의 답은 피해자 중심 수사, 물품 중심 수사, 현장 중심 수사라는 정답. 순수한 심성의 소유자 기준의 답은 열정, 집념, 진심이라는 해답. 이들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의 융합에 있다. 철저한 이론과 도덕적 가치관을 결합한 이상적인 인격체. 후자만을 이야기했다면 그러니까 열정, 인본만을 운운했다면 필자는 관습적 결론이라 치부했을 것이다.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이 실제에 적용된다. 웃음을 참으며 배웠던 호신술도, 이론 수업을 들으며 채워나갔던 지식들도. 어쨌든 열정, 집념, 진심도 이론, 규율, 체계의 영역 속에서 공생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잣대.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리얼리즘.
★★★☆ (별 3개 반)
눈요기와 유머를 제거하니 보이는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