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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Dec 16. 2017

GD와 포드

강철비(Steel Rain, 2017년 作)


GD 와 포드 - '강철비(Steel Rain, 2017년 作)'


대한민국 외교 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GD'의 노래를 듣고 머리를 흔들며, '포드'사(社)의 자가용을 운전한다. 우선 포드는 명징한 미국산 자동차이다. 또한 필자는 음악에 대하여 쥐뿔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추측을 해본다면 GD 음악의 기원을 좇으면 어느새 미국의 흑인음악사에 닿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곽철우는 자신이 지각하고 있든 아니든 이미 그의 삶 속에는 어느새 미국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생각해보니 그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있는 노래방의 도우미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희희낙락(喜喜樂樂) 거리기도 하지 않았던가? 처음엔 이질적인 것도 완전히 스며들게 되면 어느새 자연스러워지고 자연스러워짐이 오랜 세월 흐르면 모체와 자체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둘은 애초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반 토막짜리 융합을 이루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스며들었던 객(客)이 어느새 나와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면 그것은 주객의 전도로 발현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판단의 주체성을 잃고, 분별력의 흐릿함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곽철우가 대표하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가 그러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태도이다).


즉, <강철비>는 미국에 젖어있는 대한민국의 일군의 집단들에게서 표출되는 '판단의 흐릿함'을 우려하는 영화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한민국에 스며든 미국'이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타성에 젖어 미국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완전한 표백작용'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GD의 노래를 처음 접하고 '이런 노래가 정말로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냐?'라는 엄철우(정우성)의 의구심에 '그냥 딸이 좋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들어'라고 말하는 곽철우의 맹목성 짙은 태도와 비슷한 흐름의 의식 말이다. 다소 비약적인 비유를 하자면 아이돌에게 맹목적인 열광을 보내는 소녀팬들처럼 '미국이 영원한 대한민국의 러닝메이트'라는 경직되어 있는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라는 문제 제기라고 할까? 결국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명명백백(明明白白) 한 원리를 다시 한번 곱씹으면서도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손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영화. 그렇다 보니 <강철비>는 자연스럽게 '정치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기에 다분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조금 더 심층으로 들어가면 '반미친북'의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면 전작 <변호인>에서 극우주의자들에게 쓴소리를 내었던 양우석 감독의 신작이지 않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니 태도는 강단 있고, 어조는 단호하다. 관객을 부드럽게 어르고 달래고 있지도 않고,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데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지도 않으며,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기 위한 중도의 선택을 하고 있지도 않다. 즉, <강철비>는 변화구란 없는 오롯한 직구의 영화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상당한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의견이 모호한 편보다는 뚜렷한 편이 반론의 칼날을 들이대기 쉽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누군가 나에게 <강철비>의 불편한 부분을 찾으라고 한다면 꽤 많은 부분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여성 캐릭터들의 운용에 있다. 북측의 여성, 엄철우의 처, 강지혜(박선영)는 가부장적인 지아비를 모시는 지순한 여인이었고, 남측의 여성, 곽철우의 처, 최수현(김지호)은 남편에게 우연이라는 선물을 선사해주는 것이 유일한 역할일 뿐이었다. 우리 장군님을 외치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훔치던 북한의 두 소녀 송수미(안미나), 려민경(원진아)은 어떠한가? 한 명은 자신의 피를 수혈해주는 역할이 끝나니 총상으로 사망하여 영화에서 탈락하고, 다른 한 명은 두 명의 철우가 조우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니 소거되었다가 막바지에 잠시 재등장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강철비>에서 벌어지는 중대한 국가적 대사(大事)들을 결정함에 있어 모든 회의와 의사 결정은 남성들로 구성되어있다.


이 점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첫째는 영화 속에서 알게 모르게 묻어 나오는 양우석 감독의 뼛속 깊이 있는 마초 기질 혹은 보수적인 사고관(정치적 입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일 것이고, 둘째로는 일정 부분 플롯의 진행만을 위하여 캐릭터들을(특히 여성 캐릭터들을) 운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남성중심주의적인 사고관, 짙은 정치색, 관객 계몽적 정직한 대사들. 분명 오(誤)가 눈에 뚜렷하게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철비>는 나에게 묘한 울림이 있다. 이 영화는 상당히 단단하다.




서두에 언급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구체화하여 반복하겠다. 우선 <강철비>의 단단함은 우회하지 않고, 시종일관 직진하는 태도에 기인한다. 대통령 임기말이라는 시기 설정을 통해 임기말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이라는 대통령 2인 체제가 가능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대통령은 이런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제안을 하고 있고 있으며, 현직 대통령 이의성(김의성)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미일 동맹'이 '한미 동맹'보다 끈끈한 것이냐라는 과할 정도로 친절한 대사는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라는 무비판적 사고관에 일갈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엄철우의 입을 통해 '그런 이분법적 사고관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소'라는 대사를 통해 '북한의 모든 인물들은 전쟁광이라는 극단적 사고관'을 타파하려 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강철비>는 '남북은 한민족' 그러니까 '우리는 형제요'라는 역사적 관점에서의 사고를 제안하고 있다는 뜻. 각각의 1호를 모시는 남한과 북한의 대표 주자의 이름이 '철우'로 동일한 것만으로도 그것은 명징해진다.


<강철비>를 견고하게 만드는 다른 이유는 극단의 리얼함을 추구하는 전쟁 시뮬레이션에 있을 것이다. 영화라는 예술을 통하여 '북에서 쿠데타가 발생한다면?'이라는 가정법을 현실화하는 일종의 실험 행위를 시행하는 데에 있어 그 과정과 결과가 상당히 현실적이고 촘촘하다. 실제 남북한의 정상들이 선택하기에 충분한 최선의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거대한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결코 뭉뚱그리며 쉽게 넘어가려는 법이 없고 어떤 면에서는 소름 돋을 만큼 날카로운 디테일의 칼날을 들이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북한군이 병원에 침입하여 북한 1호를 암살하기 위한 첩보작전을 벌이는 일종의 '남북한 소전쟁' 장면이라든지, 초반부 권숙정(박은혜)의 산부인과에서 엄철우와의 일기토 후 막힌 숨통을 트이기 위해 자신의 목에 관을 삽입하는 북한군 최명록(조우진)의 행동거지는 상황의 현실감을 배가 시킨다.


결국 이 영화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모든 사안을 지각하는데 있어 한결로만 치우치는 의식 자체 일 것이다. 엄철우가 알고 보니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지금 죽어도 모를 상황이라는 의사의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의아했다. 왜 이런 불필요한 설정을 한 것인가? 설마 그를 자폭 미션에 투입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 마련의 처사인가? 그렇게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을 때쯤 문득 '여기 온 김에 약물중독 치료하고 가'라는 곽철우의 대사에서 잡히는 원인 모를 이물감은 무엇일까?


영화의 시작점으로 돌아가겠다. 엄철우는 시장의 뒷골목에서 약을 구하고 있다. 이후 그는 최수현의 병원에서 마약 진통제를 스스에게 투약하고, 몰래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때까지 우리는 아니 최소한 필자는 그가 마약중독자라고 예단하고 있었고, 곽철우의 약물치료 운운하는 대사를 들은 뒤에는 내 의심은 확신으로 변하였다. 심지어 장르 영화의 특징상 영화의 결말에 그가 병환에서 회복되겠구나라는 낭만을 꿈꿨던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드는 의문. 마약형 진통제와 엄철우라는 두 가지의 연결고리만 가지고 왜 나는 그를 마약중독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나? 이유는 없다. 단순한 나의 선입견이다.


혹시 이것은 일종의 관객 실험적 작법이지는 않을까? 얼마나 우리가 쉽게 편견을 갖게 되는가에 대한 자가 증명법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저변에 깔려있는 심각한 편견적 사고관은 남과 북이라는 쉽게 이분법적으로 치달을 수 있는 관계에서는 더욱 증폭되기 마련이고, 결국 이것은 남북이 서로를 바라보는 현실의 상황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무쇠의 뿔처럼 달려간다. 남북한의 형제애를 전시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결말로 흐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작전을 무사히 마치고 가족과 함께 쿠바에 도착해 재건한 엄철우의 모습과 그의 가족과 단란하게 가족모임을 하고 있는 곽철우의 모습을 보여주며 낭만미(美) 흘러넘치는 결말로 마무리 지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강철비>는 타협하지 않는다. 특히 이 영화가 대단한 강단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밀고 나가, 자신이 벌인 일들에 대해 최선의 대안을 제시한다는데에 있다. 영화는 오롯이 분단국가의 문제는 남북한에 의한 해결만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고, 그 해결책은 '강철비(핵 무장)'를 통한 한반도 전체의 부국강병의 평등화에 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 허황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지식인 다운 발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철비>는 자신의 이야기가 완전한 허구의 영화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배우 김의성은 극중 인물 이의성으로 분하고, 배우 이경영은 극중 인물 김경영으로 분하고 있으며, 영화의 막바지 북한 내각총리로 등장하는 배우 김기현은 본명과 작품 내의 이름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나는 왠지 이것이 자신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기를 원한다는 일종의 염원의 인장을 찍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하튼 문제는 GD와 포드를 좋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GD와 포드를 좋아'만'하는 것이 문제다. 



★★★☆ (별 3개 반)

남성 중심적 사고관, 짙은 정치색, 관객 계몽적 어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고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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