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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Feb 14. 2018

낭만 주먹

범죄도시(THE OUTLAWS, 2017년 作)


<범죄도시>에서 유일하게 순수함과 정의로움을 내포한 인물, 소년 왕오(엄지성). 영화에는 소년의 죽음의 여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소년과 유사 아버지 혹은 유사 삼촌의 관계에 있던 마석도(마동석) 마저 장첸(윤계상)을 처단한 직후 왕오의 상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일반적인 대중영화였다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거나, 왕오의 생사에 대해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명징하다. 마석도가 장첸에게 가하는 무차별적인 폭력은 왕오에 대한 복수심 혹은 민간인에게 칼부림을 하는 자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정의감 따위가 아니다. 그의 복수는 황사장(조재윤)을 필두로 한 춘식이파 계원들을 위한 복수이다. 즉, <범죄도시>는 무쇠주먹으로 악을 처단하여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는 히어로물로 보일지 모르지만 엄밀히 따지고 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대부분 폭력배다.


말하자면 춘식이파, 이수파, 독사파, 흑룡파 그리고 금천구 강력반으로 나뉘는 다섯 갈래의 조직폭력배들의 당파싸움만이 존재한다는 뜻. 이 중 마석도의 강력반과 춘식이파는 선, 후배의 관계에 위치해 있다(혹은 형님, 아우의 관계에 위치해 있다). 상대의 낭심을 쥐어뜯으며 완벽히 굴종적 위치로 상대를 꿀리거나, 조직폭력배들에게 형님 소리를 듣는 석도는 명확하게 폭력배 우두머리의 위치로 분하고 있다. 또한 (특히 중국의 조직폭력배들에게) '진실의 방' 등 무법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그의 마음이 두 파벌(한국 조폭, 중국 조폭) 중 어디로 기울어 있나에 대한 방증이 될 것이다.


다소 이질적인 시퀀스. 왜 마석도와 장첸의 첫 접점은 '춘식이파가 운영하는 룸살롱'인가? 업무시간에 유흥업소에서 접대를 받는 경찰이라는 설정 자체에서 이미 그는 경찰 포기 선언을 뱉고 있는 셈이 되고 무엇보다 장첸의 부하들이 황사장 부하의 손목에 도끼를 들이대는 바로 그 순간 그들과 같은 공간에 마석도가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결국 이들은 도상적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선상의 악당이라는 결론이 된다. 마찬가지 입장에서 장첸을 잡기 위해 짜놓은 덫(유흥업소)에 들어가며 '이런 데는 놀러 와야 되는데'라는 멘트를 쉽사리 던지는 그는 그의 무쇠 주먹으로 적들을 고쿠라 트리듯 경찰과 폭력배의 벽을 허물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경찰 무리가 확실히 심상치 않은 이유는 이들은 총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을 산 채로 갈갈이 토막내는 데에 거리낌 없는 자들을 상대하는데, 전반장(최귀화)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총을 소유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연장도 거의 사용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특히 마석도는) 웬만하면 맨몸과 깡다구 하나로 적들을 처단해 나간다. 즉, 이들은 맨손으로 종로를 제압했던 그 시절의 '낭만 주먹'의 계보를 잇고 있는 집단이다. 이 지점에서 마석도 패거리가 춘식이파의 선배급이라는 결론을 단언할 수 있게 된다. 장첸의 최후 처단도 굳이 일대일의 대결을 자청한 마석도의 모습은 결국 우두머리의 대결로 모든 결과가 결정지어지는 주먹들의 암묵적인 규칙에 따른 것이리라.


'범죄도시(THE OUTLAWS, 2017년 作)'



경찰로 변질된 조폭들 혹은 경찰로 둔갑한 조폭들이라는 의견을 조금 더 밀고 나가겠다. 황사장이 장첸에게 하려 했던 복수극을 무마해주기 위해 마석도는 사건 축소를 약속하는 의젓한 큰형님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아우에게 조심하라며 경찰 소유의 방탄조끼까지 건네주는 츤데레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왕오가 석도에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필사의 구원 요청을 할 때, 석도가 통화를 하고 있는 자는 황사장이었다. 그렇다면 크게 봐서 <범죄도시>는 가리봉동을 사수하려는 중국발 조폭들과 본인들의 본토를 지켜내려는 한국발 조폭들의 악전고투를 포착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이 관점을 국가적 측면으로 비약하자면 서서히 좁혀오는 중국과 한국의 간극에 대한 한국민들의 두려움이 <범죄도시>의 근원적 정서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겠다. 마치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그렇게 해석했던 것처럼.


왜 강력반 경찰들은 조직폭력배임을 자처하는 것인가? 혹은 영화는 왜 그들을 조직폭력배와 같은 선상에 위치시키는가?에 대한 의문을 조금 더 고심해보겠다. 쉽게 할 수 있는 답은 상황이 너무 절망스러우니 본인들도 자신들을 악의 세계로 타락시켜야지 그들과 상대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진화론적 변이 혹은 보호색이라는 결론일 것이다. 혹은 최근 등장하는 영화들의 조선족 악인화에 대한 반발 작용적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 즉, 악인은 이곳에도 있다는 세계관. 어떤 이유에서든 디스토피아적인 비정함과 무력함이 뒤섞여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필자는 <범죄도시>의 경찰-조폭 둔갑술에는 대한민국 공권력 구조에 대한 일갈적 측면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전반장의 팀이 26명의 중국발 조직폭력배들을 일망타진하는 데에 유일하게 작용하는 것은 '권력욕'이다. 즉, 팀의 데스크 마석도가 움직이는 이유는 본인이 모시는 큰형님(전반장)의 승진길 탄탄대로 때문이라는 결론인데, 이 길은 명료화하면 조폭이 공권력의 정점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행보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 입장에서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강력반의 막내 강홍석(하준)이 점점 날 것 같은 짐승의 작태로 변이되는 것이 대견스럽다는 듯한 영화의 태도는 필자의 의견을 조금 더 강화시킨다.


이것은 결국 '대한민국은 조폭들이 다스리는 세상'이라는 가담항설에 대한 방증이 된다. 그런 관점에서 전반장이 석두를 황급히 부르며 '뭐 이런 일이 다 있냐?, 서장님이..'라는 외마디 비명에 씨익 쪼개는 마석도의 마지막 미소는 그의 무소불위의 폭력과 조폭 동생, 경찰 동생들을 아우르는 큰형님적 면모 또한 나름의 큰판이었다는 간담 서늘해지는 추측을 가능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종로의 주먹 김두한은 실제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중국의 사회, 경제, 문화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의 진격은 우리나라를 꽤 호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 압박감은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빼앗기는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조직폭력배들에게도 마찬가지이고, 자신들의 일자리와 승진의 기회를 박탈당하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금천구 경찰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들은 본질적으로 조직폭력배라는 같은 혈통을 지닌 자들이다. 


필자의 의견대로 '조폭 우두머리 마석도의 공권력 입성기'라고 본다면 이 영화의 제목 <범죄도시>는 확실히 꼭 들어맞는 제목이긴 하다. 대한민국은 범죄자들만이 양지와 음지에서 판을 치고 있는 도시라는 디스토피아적인 관점에서. 




★★★ (별 3개)

경찰로 둔갑한 조폭 우두머리 마석도의 공권력 입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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