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바이, 웬디(Please Stand by, 2017년 作)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마치 <슈렉>의 고양이 푸스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이는 강아지 피트의 등장은 보는 이를 무장해제시키기는 한다. 위기의 순간들이 봉착해도 용기를 잃지 않고 꿈을 향해 전진해나가는 웬디의 모습이 대견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특히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영화의 특유의 쾌활함이 가장 빛을 발하는 지점은 종반부 LA 경찰이 웬디를 어르고 달래기 위해 <스타 트랙>의 언어를 구사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은 정말로 폭소 유발 넘버원이다. 이 정도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다 추린 것 같다.
줄거리도 장점에 대한 나열만큼이나 단명하게 요약된다. <스타 트랙> 의 광적인 팬 웬디(다코타 패닝)가 시청자 참여 스토리 공모전에 시나리오를 제출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떠난다는 이야기다. 발달 장애가 있는 그녀가 600km가 되는 거리를 홀로 가게 된대에 가장 큰 동인이라면 현재 머물고 있는 장애인 보호시설을 떠나 친언니 오드리(엘리스 이브) 부부와 함께 살면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카를 돌보면서 살고 싶다는 소망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의 2박 3일 동안의 로드무비는 자신이 아이 양육에 충분한 능력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성장 무비이기도 하다.
사실 웬디가 홀로 400 페이지가 넘는 각본을 작성했다는 사실만으로, 600km가 되는 거리를 횡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언니가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타파하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바이, 웬디>는 상큼한 영화의 분위기와는 이질적인 위기의 순간을 삽입해 놓는다. 애완견 동반 탑승 금지 버스에 피트를 몰래 데리고 탄 것이 걸려 허허벌판에서 승차거부를 당하고, 우연히 만나게 된 젊은 부부에게 강도를 당하며, 뜻밖에 얻어타게 된 버스 운전사가 졸음운전을 하다가 교통상황을 당하기도 한다. 일반인에게도 쉽게 발생하기 힘든 일들이 이제 처음으로 홀로 세상으로 나온 웬디에게 불과 2박 3일 동안 줄지어 발생한다는 것이 다소 황당하기도 하다. (아마도) 단출한 이야기를 90분가량으로 늘려놓기 위함 일 것이고 기승전결 뚜렷한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한 갈등 축조를 위함이기도 할 테고.
이렇게 인공성이 베어 있으니 감동은 저해될 수밖에 없고, 그녀의 성공의 순간이 민숭민숭, 뜨뜻미지근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조금 의미 있게 볼만한 지점이 있다면 웬디의 로드무비에 놓여있는 몇몇 사람들의 특성이다. 웬디의 장애를 눈치채고 초콜릿 가격을 더 받으려고 하던 가게의 주인, 버스 터미널에서 웬디에게 잘 곳이 있냐고 안타까운 듯 물어보지만 정작 노상에서 잠든 웬디에게 이불 한 장 덮어주고 사라지는 직원, 웬디가 돈이 없다고 말하자 차갑게 말을 끊고 다음 손님을 외치는 직원. 문제는 발달장애가 아니라 '악인은 아니지만 딱히 선인도 아닌 그저 그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 늘 상존하는 인물들. 혹시 나일지도 모르는 인물들.
스코티(토니 콜렛)의 아들 샘(리버 알랙산더)은 웬디가 <스타 트랙>에 광적인 사랑을 보내는 데에는 그곳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반은 인간, 반은 외계인이라 모두가 어떤 지점들이 부족한 생명체들. 그런 설명이 어디에 있냐는 스코티의 말에 샘은 원래 그냥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웬디가 왜 발달장애가 되었나? 그녀는 왜 다른 것인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우리는 타자와 내가 생김새가 다르게 생겼다고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그냥 원래 그런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장애는 단순히 다른 형질일 뿐이다. 마치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이 있고, 키가 작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 잠재적 장애인이다.
★★☆ (별 2개 반)
작위적인 한마디 '우리 모두 잠재적 장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