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메이커(The Cakemaker, 2017년 作)
샤밧 샬롬. 이스라엘에 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사별한 정인 오렌(로이 밀러)을 추억하기 위해 불현듯 타국으로 건너온 독일인 토마스(팀 칼코프). 그에게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샤밧(안식일)을 혼자 보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찾아온다. 그가 일하는 카페테리아의 여사장 아나트(사라 애들러)가 그를 그녀의 아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토마스는 빈손으로 가기 뭐 했는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여 케이크 하나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달콤한 케이크가 만들어지는 순간들에 상영시간을 할애할 줄 알았는데 웬걸 완성된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가 화면에 잠시 스쳐갈 뿐이다.
제목이 <케이크메이커>인데 반죽을 하는 장면만 드문드문 등장할 뿐 케이크의 풍미를 찬미하는 장면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며 펼쳐지는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들의 파노라마, 케이크를 맛보는 사람들의 오버스러운 리액션들, 마침내 부를 축적하고 사랑의 결실도 이룩하는 그들의 사랑 레시피. 일종의 클리셰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선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말하자면 오피르 라울 그라이저의 <케이크메이커>는 시각화된 미식을 선사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게다가 이날의 저녁식사 직후 아나트가 토마스가 만든 케이크가 담겼던 접시를 관능적으로 핥는 장면, 토마스가 전라의 상태로 의식을 치르며 사별한 정인 오렌을 만나는 착각을 하는 듯한 장면이 연결됨으로써 엉뚱하게도 그들의 리비도와 케이크의 오묘한 조응만이 체현된다.
이렇듯 성적인 맥락으로 읽힐 수 있는 지점에 케이크 만드는 행위가 선, 후행 되고 있는 위치 선정은 여러 지점에서 노출된다. 토마스의 플래시백 속에서 오렌과의 진한 사랑 직후 상의를 탈의한 체 케이크 반죽을 주무르는 토마스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오렌의 옷을 입고 (독일에서 오렌이 그랬던 것처럼) 예루살렘 거리를 조깅 하던 토마스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그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늠름한 군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그의 정력적인 풍채에 성욕이 솟게 된 것일까. 집으로 돌아온 토마스는 땀을 뻘뻘 흘리며 케이크 반죽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급기야 대량 주문을 받은 케이크 제조를 위해 카페테리아 주방에 아나트와 토마스가 둘이 남게 된 순간, 토마스를 향한 아나트의 강렬한 리비도 역시 반죽과 함께 비집고 나오지 않았던가.
그녀의 돌발행동에 대한 토마스의 대응이 보는 이를 당황케 하는 것은 토마스와 아네트 사이에 놓인 오렌이라는 공유점의 존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토마스가 동성애자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그녀와 몇 번 더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의 성 정체성 혼돈의 저의가 불가해하다. 영화의 설명에 따르면 (아마도) 그것이 사별한 정인을 추억하는 토마스의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인데, 하얀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 남녀(토마스와 아네트)가 사랑을 나눌 때 토마스는 오렌과의 사랑의 속삭임(오렌과 아네트의 사랑의 과정들의 묘사)을 떠올리며 교차편집, 보이스 오버되는 오렌의 말과 같은 방식으로 그녀에게 행동한다. 그러니까 토마스는 오렌이 남겼던 모든 체취들을 답습함으로써 그를 추억하고 있노라는 것이다.
이 엇갈린 사랑 이야기에 안타까워하던 것도 잠시, 영화의 태도에 의문점이 생긴다. 결국 <케이크메이커>는 항상 수동적인 위치에 놓여있는 토마스와 능동적 주체인 오렌, 아나트와의 애정 이야기일 것인데, 두 이야기는 닮은 듯 끝내 평행선을 유지한다. 두 사랑 이야기의 육체적 결합의 장면에서 오렌과의 그것은 전라의 상태로 마치 성행위 자체가 중요한 듯 꽤 자극적으로 카메라에 담기는데 반해, 아나트와의 장면은 탈의를 하지 않은 체 집요하리만큼 그들의 상반신에서 카메라가 머문다. 오렌과의 사랑은 점프 컷을 이용해 과정보다는 섹스라는 결과에 치중하는 반면에 아나트와의 사랑은 서로 알아가는 그러니까 시간을 공유해나가는 과정들에 치중된다. 돌이켜 보니 토마스가 처음 이스라엘에 도착해 오렌이 다니던 수영장에 갔을 때 그는 오렌의 빨간 수영복을 입는가 하면 몇몇 남자들의 오묘한 시선을 의식하기도 한다. 마치 토마스가 오렌을 잊지 못해 이스라엘에 온 동인의 실체는 사랑을 빙자한 리비도라는 듯이.
아나트는 독일로 찾아와 카페테리아에서 나오는 토마스를 훔쳐본다. 그녀는 아마도 토마스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토마스는 당장 이곳을 떠나라는 모티(조허 슈트라우스)의 윽박에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은 왠지 아나트와의 이별에 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이성애자가 돼버린 것일까? 그렇다면 우연한 죽음도 성 정체성의 문제도 이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으니 이 사랑은 가닿을 일만 남았다. 만약 정말로 오렌과의 사랑은 육체적인 것에만 치중된 것이고, 아나트와의 사랑에서 비로소 육체와 정신을 모두 포괄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완성된 것이라면 <케이크메이커>는 동성애는 리비도로, 이성애만을 사랑으로 인정하는 보수적 사랑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 (별 3개)
케이크는 리비도와 사랑을 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