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없어도 나는 나일 것이다.
나는 4회의 항암치료를 받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3주 간격으로 4회를 받는 일정이라서 3개월만 고생하면 된다고 나를 위로해 주셨다. 항암을 받게 된다는 두려움이 컸던 나머지 위로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항암 치료 시 주의해야 할 음식, 위장장애, 피부발진, 탈모 등 새롭게 알아야 할 부분이 많았다. 식단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대답하고 집중하는 척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첫 번째 항암 치료 날짜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당연히 거처야 할 치료 과정이었고, 수술을 기다렸던 때처럼 담담해지기로 했다. 치료를 시작하면 먹지 못하는 음식을 하나씩 먹으며 치료날까지 기다렸다. 항암 치료 중에 피해야 하는 음식 중에 하나는 날생선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치료 전날까지 사케동, 카이센동, 모둠회를 먹으면서 음식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한동안 먹지 못한다는 이유로 음식을 먹는 한 입마다 너무 소중했고, 치료를 끝내고 먹을 음식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아련해졌다. 음식에 대해 이렇게까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항암 병동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들로 대기석이 가득 찼다. 나의 항암 치료를 접수한 후 나에게 투약될 약이 조제되고 병실이 배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대기하면서 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만 느리게 흘러가고 있는 느낌. 고작 30분을 기다리는 것이었지만 그 시간이 영원히 가지 않는 듯했다. 항암 병동에서는 각자 배정받은 병실 침대칸에서 약을 투약 받는다. 대략 투약 받는 2~3시간 동안 누군가는 코를 골며 잠을 청하고, 누군가는 옆에 앉은 보호자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가족과 통화를 하고 나서 책을 몇 장 읽거나 팟캐스트를 들었다. 병실은 위아래가 뚫린 커튼으로 5개의 공간으로 나눠졌고, 그중 한곳에 있으니 공간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에서는 내가 분리를 원하는지, 연결을 원하는지 헷갈렸다. 아픈 상황이므로 고립을 원하면서도 아픈 상황일수록 더욱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연결을 찾고 있는 듯했다. 나는 잠깐 홀로였다가 잠깐 홀로가 아니길 바랐지만, 대부분 홀로인 시간이 많아졌다.
투명한 항암약이 혈관을 타고 내 몸에 투약되었다. 약이 몸에 들어올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혈관을 찌른 바늘의 아픔만이 기억에 남았다. 약은 내 몸 구석구석에 흡수되고 침투하여 앞으로 조금씩 몸에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첫 항암 후 1~2주가 지나자 몇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굴 피부가 붉어져서 잡티가 생겼고, 손톱 끝이 검어지고 갈라졌다. 몸에 열감이 있어서 가끔씩 잠에서 깼다. 이런 변화는 부작용 중에서도 아주 미미한 정도였다. 항암 후 발현되는 여러 부작용 중에 가장 힘든 게 위장장애인데 나는 다행히 식욕부진이나 구토, 매스꺼움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발현되는 증상이 많지 않아서 마치 약을 투약한 일이 모두 없었던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탈모가 시작되자 켜켜이 쌓은 안도감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2024년 11월 11일. 날짜의 형상처럼 머리카락이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항암 후 2주 후부터 탈모가 시작된다고 들었는데, 2주라는 시간은 정확했다. 아침에 샤워기에서 낙하하는 물줄기에 머리카락이 닿자마자 순식간에 뭉텅이로 빠지기 시작했다. 빠지다가 아래쪽 머리카락과 엉켜서 귀밑과 어깨 쪽에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머리카락 뭉치를 주렁주렁 매단 채 허연 두피가 다 보일 정도로 기괴한 골룸이 거울 속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섭고 웃겼다. 빠진 머리카락이 욕실 바닥에 마구 흩어져 검은 강줄기가 만들어졌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일. 내 몸의 일부였던 것들이 나를 떠날 때, 그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에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아쉬울까. 미안할까. 후련할까. 신기할까. 한 움큼 빠진 머리카락은 예전에 외국에 살 때 친구가 해준 헤어 커트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비싼 헤어숍 비용 탓에 오랫동안 머리카락을 기르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커트를 부탁했었다. 다 자르고 나서 바닥에 수북이 쌓인 검은 머리카락 형체를 봤을 때 기이하고 섬뜩했다고 기억한다. 그것이 몇 분 전만 해도 내 몸에 일부였던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잘린 머리카락에서 마치 내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섬뜩함의 이유를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17살에 자살 유가족이 되었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상실. 엄마라는 큰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내게 전부였던 세계가 무너지는 인생의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상실감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고 소화하지 못한 채 모든 상황을 겪어냈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적응하며 나만의 생존 방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나는 내가 놓인 상황을 마주하고 나의 외면과 내면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마음을 돌보려고 노력했는데, 신이 생각하시기에 그 노력은 부족했었나 보다. 암이라는 사건을 통해 마음을 더 수련하고 더 정진하라는 계시일까. 나에게 주어지는 상황들이 고난의 미션처럼 느껴진다. 나는 다시 한번 상실이라는 미션을 받았다. 이번에도 계속 마주하고 깨달으며 다시 살아가면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머리카락이 빠진 현재 상황을 비관하는 내가 있다. 왜 자꾸 나에게 시련이 오는 것인지 세상을 한없이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는 내가 싫어진다. 앞으로 하게 될 치료에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내가 무너질까 봐 두려워진다. 내 인생이 때론 안갯속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실한 미션 수행자로서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을 인정하고 내가 나를 힘껏 지켜주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나에게 20년 동안 상실을 극복할 만큼 나는 강하다고, 내 곁에는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나는 내 몸에게 지금까지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웠던 내 정신이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한다. 처음 겪는 상황과 앞으로 겪게 될 상황들을 그리 희망적이거나 절망적이지도 않게, 일정한 마음의 온도를 유지하며 조용하게 대처해 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38년 살면서 처음 보는 모습이 많이 낯설 테지만 최대한 따뜻하게 맞이해보려 한다. 외형적으로 머리카락이 없어도 나는 나일 것이다. 수술 자국이 있어도, 치료로 인해 몸에 이상이 나타난다고 해도 나는 나일 것이다. 외모가 변해도 나의 감정과 정신은 변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없을 때 좋은 점을 생각해 본다. 당분간 샴푸를 자주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샤워 후 머리카락을 말리는 시간이 들지 않는다. 머리카락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더운 여름이 아닌 겨울에 가발과 모자를 쓰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답답하겠지만 보온의 역할로 생각하며 착용하다 보면 그것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소중한 한 사람을 잃는 것에 비해 머리카락을 잃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상실을 한번 겪었다고 해서 다음에 겪는 상실이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상실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다. 상실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실 앞에서 담담해지는 마음이 익숙해질 뿐이다. 나는 상실을 겪은 이후에도 삶이 이어진다는 것을 안다. 앞으로 또 다른 상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날, 이상하게도 내 책의 프롤로그에 실린 글이 생각났다. 나중에 이 글이 이런 상황에서 생각나게 될 줄은 쓸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으리라. 오랜만에 글을 찾아 읽으며 상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 나는 왜 살아야 하나?”에 답하는 기록을 하고 있다.
한 가지 기술 One Art
— 엘리자베스 비숍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것들이 언젠가는 상실될 의도로 채워진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날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라. 문 열쇠를 잃은 후의
당혹감, 무의미하게 허비한 시간들을 받아들이라.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더 많이,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하라.
장소들, 이름들, 여행하려고 했던 곳들을.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이 오지는 않는다.
나는 어머니의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보라! 내가 좋아했던
세 집 중 마지막 집, 아니 마지막에서 두 번째 집도 잃었다.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두 도시도 잃었다, 멋진 도시들을. 그리고 더 넓게는
내가 소유했던 영토, 두 강과 하나의 대륙을 잃었다.
그것들이 그립긴 하지만 그렇다고 재앙은 아니었다.
당신을 잃는 것조차(그 장난스런 목소리와
내가 사랑하는 몸짓을), 나는 솔직히 말해야 하리라, 분명
상실의 기술을 익히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그것이 당장은 재앙처럼 (그렇게 적으라!) 보일지라도.
오래도록 이 시를 마음속에 담아 두고 힘이 들 때마다, 다시 힘을 내야 할 때마다 읽었다. 나에게 주어진 한 가지 기술, 끝내 남을 한 가지 기술. 상실의 기술에 대하여 반복해서 생각했다. 무언가를 잃는 것이 곧 불행이 아님을 받아들이게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고, 내 인생은 절망으로 이어져 불행으로 끝나 버릴 것 같았다. 내가 성장했던 도시를 뒤로하고 다른 도시로 떠났지만, 결국 두 도시 모두를 잃어버렸고, 내가 뿌리내렸던 모든 것들을 잃었다. 그럼에도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려웠고, 나는 계속 살아갔다. 어쩌면 이 시에 담긴 내용을 되뇌고, 반박하고, 인정하고, 의심하면서 작은 삶의 이유라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상실을 부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 시가 늘 나와 함께해 주었다. 아무리 떨쳐 내어도 항상 이 시로 돌아갔고,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