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머리에도 웃을 수 있었던 이유

여러 정체성과 역할을 맡은 이상한 존재

by 김세연

탈모가 시작된 이후로 머리카락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마치 털갈이하는 동물같이 내가 지나는 곳마다 머리카락이 떨어져 방바닥을 계속 치워야 했고, 입고 난 옷과 베개 위를 매일 정리했다. 약간의 자극에도 머리카락이 한 줌씩 빠져나가자 내 모습은 점점 더 골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민머리가 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지 머리카락이 다 빠지진 않을 거라는 약간의 희망이 있었다. 아래쪽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머리카락으로 남은 항암 기간을 버티자고 생각하기도 했다. 위생적으로나 생활적으로 불편함이 더해지자 마음은 점차 어차피 빠질 머리카락이기에 먼저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머리카락이 무섭게 빠져나가는 일주일을 보내고 항암 가발 업체에서 쉐이빙을 받았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남아 있는 머리카락이 다 사라졌다. 숙인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보자마자 후련함과 어색함에 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까끌까끌한 두피를 만져봤다. 약간의 머리카락이 남아 두피를 찌르면서 따가웠지만 그 감각마저도 새로웠다. 민머리가 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가장 두려운 건 조카의 반응이었다. 내 모습을 이상하게 보고 무서워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머리를 밀고 처음으로 조카 앞에 섰을 때, 조카는 나에게 “이모, 우상혁 같다! 이모도 우상혁 선수처럼 앞으로 높이 멀리 뛰세요.”라고 말하며 웃어주었다. 예상치 못한 조카의 반응에서 한 번, 그 상황에서 우상혁이라는 인물을 떠올린 조카의 엉뚱함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우상혁 선수는 한때 각오를 다잡고자 머리를 밀었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 조카는 스포츠뉴스에서 그 모습을 보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조카는 걱정으로 한없이 움츠려든 나를 한순간에 가볍고 산뜻하게 위로했다. 외모의 변화로부터 남들을 의식하는 건 옹졸한 내 마음이라는 것, 스스로 만든 걱정에 사로잡혀 흔들리는 건 나뿐이라는 것을 조카는 알려주었다. 이번에도 조카의 순수함은 나를 바로잡는다.


자동적으로 과거의 사진 모음을 알려주는 핸드폰 사진 앱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불과 몇 달 전인데 긴 머리카락으로 웃고 있는 내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그 모습이 낯설다. 사진 속 사람은 누구일까. 긴 머리카락을 가졌던 과거의 시간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과 장소 그리고 지나가버린 나라는 사람. 많은 것을 지나온 지금의 나는 나라는 사람과 잘 지내고 있는 것일까. 거울 속에는 까까머리를 한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 그 사람은 분명 나인데 39년만에 처음 만난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모습도 낯설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길어지면 내 모습은 또 달라질 테고, 그 모습에도 적응을 해야 할 것이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신청하러 간 날, 안면인식이 잘되지 않아 주민센터 직원을 적잖이 당황시켰다. 화장실에 가서 모자를 벗고서도 끝끝내 인식이 되지 않아 직원의 확인을 통해 발급을 받을 수 있었다. 민머리의 내가 인식 화면 앞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봐도 인식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무심하게 돌아왔다. 아무리 시도해도 기계는 주민등록증 사진에 있는 오래전 과거의 나와 반려 모자 없이는 외출이 어려운 현재의 나를 동일한 인물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웠나 보다.


외형적으로 변화를 겪으면서 나는 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나는 내가 수술로 암을 제거하고 다음 삶을 부여받아 세상에 새로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느껴진다. 짧은 머리의 나는 영락없는 군입대하는 청년의 모습이다. 제대를 기다리는 군인처럼 완치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병원생활 후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최대한 멀리한다. 크고 작은 욕망이 가지치기가 되어 불같은 감정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것을 비우고 내려놓는 스님이 된 듯하다. 외형이 스님처럼 보이게 되니 생활마저 자연스럽게 정갈해지는 걸까. 조용하고 단순한 생활을 하고 싶어진다. 나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어린아이도 성인도 아닌, 사회인도 종교인도 아닌 모호한 경계에서 나로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스포츠뉴스에서 우상혁 선수를 보았다. 뉴스의 제목은 “우상혁의 부활”이었다. 뉴스 속 그의 머리카락은 많이 자라 지금의 내 머리 길이를 훌쩍 넘어 있었다. 그는 공중으로 높이 도약하여 바를 건드리지 않고 측정 높이를 가볍게 넘어 지면에 착지했다. 온몸으로 환호하는 특유의 세리머니와 함께 스스로 증명해낸 결과를 만끽하고 있었다. 몇 년 사이에 부진한 성적을 딛고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활짝 웃고 있는 그를 보니 머리를 밀면서 했던 다짐을 실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 올림픽의 기록을 새롭게 갱신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그의 뉴스를 보면서 나에게도 지난 노력의 시간을 스스로 인정하며 한 번쯤은 온몸으로 환호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나의 부활은 잘 그려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몸과 마음이 자꾸만 위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머리가 조금 자라 나는 가수 이소라의 헤어스타일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녀는 노래에만 집중하려는 듯 오래전부터 아주 짧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는 다른 헤어스타일이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개성이자 존재감을 부각시키는데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이소라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에는 이토록 짧은 머리의 여자 가수는 없었기에 그녀의 스타일이 굉장히 파격적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녀는 짧은 머리의 여성이 이상하기보다는 카리스마 있어 보인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소라같이 보인다는 말을 듣다보니 이 시기에 나는 그녀의 음악을 자주 찾아 듣게 되었다. 단지 헤어스타일이 비슷해 보인다는 것인데 어쩌면 나는 헤어스타일에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있는 퍼포먼스에 몰입하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아름다움에 기대어 나름의 위로를 얻고 싶었던 것 같다.

배우 김고은은 짧은 헤어스타일로 해외 시상식에 등장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배우라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아주 짧은 머리였다. 새로 맡은 배역 때문인지 아니면 자의로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짧은 머리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당당했다. 여배우가 가진 고정적인 스타일을 깨고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졌다. 매번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짧은 머리로 변신한 모습은 익숙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 자세를 닮고 싶었다.


내 선택으로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 아니라 암 치료라는 외부적인 이유로 인해 머리카락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내 모습이 여전히 낯설었고 이상했다. 부끄러움에 자꾸만 모자 속 깊숙이 나를 숨겼다. 짧은 머리가 되고 나니 유독 짧은 머리를 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을 보며 짧은 머리를 대하는 자세를 새롭게 배운다. 외형적으로 짧은 머리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나는 우상혁이 되었다가 이소라와 김고은이 되어본다. 나는 짧은 머리를 한 배역을 연기하다가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한다. 최대한 높이 멀리 보면서 이 낯선 시간을 가뿐히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런 허황된 상상 속에서 나는 짧은 머리의 새로운 모습을 받아들이고, 짧은 머리로 지내는 생활에 천천히 적응해 나간다. 짧은 머리에도 내가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상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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