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으로 움직이는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통증을 통해 비로소 지금을 살아간다.

by 김세연

유방암 수술 후 팔의 움직임이 불편해질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입원 전에 집 안의 모든 사물 위치를 아래쪽으로 변경해 두었다. 부엌 수납장과 책장 등 위쪽에서 꺼내 사용하던 물건들을 내려놓으면서 팔 움직임의 변화가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팔 움직임에 제약이 있을 때 일상생활에서 겪게 될 불편함을, 몸 구조에서 팔이 가지는 역할의 중요성을 수술 전에는 알지 못했다. 사소한 동작 하나를 하기 위해서는 신체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팔 동작이 불가능하면 일상 속 사소한 행위는 더 이상 사소한 일이 될 수 없었다. 수술 직후부터 나는 내 몸으로 움직이는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을 마주했다. 내 몸의 반응 속도대로 다시 움직임을 배워 나가야 했다.


수술 후 3회에 걸쳐 재활의학과 진료를 받았고, 팔의 가동 범위를 높이기 위해 재활치료실에서 재활 동작을 배웠다. 병원에서 알려준 동작과 유튜브 검색을 통해 찾은 동작을 매일 하루에 3번씩,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실행하려고 노력했다. 팔을 높이 들거나 뒤로 젖힐 때 움직임이 어색했고, 겨드랑이에 당김 현상이 있었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변화도 살펴야 했다. 처음에는 팔로 하는 모든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는 사실이 우울했고, 앞으로 계속하지 못하게 될까 봐 막막하고 불안했다. 대중교통에서 손잡이를 잡는 일부터 팔을 사용하는 운동, 집안일 등을 언제쯤 다시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흔들리는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나에게 자전거를 타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지 생각하면 암담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를 때마다 재활 동작 하나하나를 더 열심히 꼼꼼하게 하려고 했다. 불편감이 빨리 사라지기를, 통증이 지속되거나 유착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재활 동작을 하는 동안 몸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최대한 감각을 세웠다. 나는 오른쪽 가슴에 암을 제거했고, 오른쪽 겨드랑이에만 림프절을 제거했기 때문에 왼쪽보다 오른쪽 팔의 움직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11월부터 2월까지 오른팔에 통증과 이물감이 느껴졌다. 오른쪽 팔을 들면 겨드랑이에 힘줄같이 생긴 띠가 튀어나왔고, 셀룰라이트가 드러나듯 위팔 표면이 울퉁불퉁해졌다. 어떤 날은 위팔이 당기다가 어떤 날에는 아래팔이 당겼다.


2월부터 차차 어깨와 팔에 불편감이 사라졌지만 4월부터 갑자기 왼쪽 손목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을 관여하는 손목 관절이 뒤틀리고 끊어지는 것처럼 찌릿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손목을 건드릴 수 없을만큼 아팠다. 6월부터는 오른쪽 손목마저 통증이 느껴졌다. 오른쪽 손목은 새끼손가락에서 이어지는 손목이 아팠다. 작고 가벼운 것조차 들고 쥐기가 어려웠다. 통증으로 요리와 설거지를 멀리하자 저절로 식욕이 줄었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이 줄면서 활기가 사라졌다. 일상생활의 불편감보다 심리적인 위축이 더 컸다. 팔과 어깨의 통증이 줄어들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새로운 통증을 마주했다. 팔과 어깨 통증 때와 동일한 감정이 시작되었다. 손을 사용해서 잡고 딛고 짚는 모든 행동을 앞으로 하지 못할까 봐 예민해졌고, 통증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상상은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왜 나한테 통증이, 암이, 이런 일이 생긴 걸까?”라는 생각으로 번지면 삶이 무겁게 나를 누르는 듯했다. 몸의 통증보다 마음의 혼란이 더 거셌다. 봄과 여름 사이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전전했지만 딱히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진단받은 병명은 손목 관절 근막통증 증후군, 힘줄윤활막염, 드퀘르벵병이었다. 병명이 생소했지만 모두 손목 통증을 나타내고 있었다. 원인이나 이유가 없는 통증이라 더 답답했다. 별다른 원인이 없었기에 정형외과와 한의원에서는 물리치료와 침술 외에 다른 치료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정형외과에서는 통증이 더 심해질 경우 손목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는 방법을 권유하기도 했다.


스테로이드 주사가 진행 중인 호르몬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지 문의하기 위해 유방외과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손목 통증이 현재 복용하고 있는 항호르몬제의 부작용 중 하나인 다발성 관절 통증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될 정도로 아프다면 환자의 선택에 의해서 주사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증상은 관절에 직접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 치료의 부작용이기 때문에 주사 투약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수 있다. 앞으로 완치까지 4년 더 약을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약을 먹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그로 인한 변화를 모두 내가 감수하고, 수용하고, 적응하고, 보살피며 살아가야 하다는 뜻이었다.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부작용을 이상하다고 제거하려고 하기보다는 부작용을 다스리면서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다발성 관절 통증이란 몸에 어떤 관절에도 통증이 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만약 골반이나 허리, 무릎 관절에 통증이 생겼다면 혼자 이동하는 일이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손목에 통증이 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오른손 잡이에게 오른쪽 손목이 아니라 왼쪽 손목부터 통증이 시작된 것이 나은 일일까. 정반대의 감정이 긍정 회로를 막아서서 저지한다.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실망과 좌절감을 나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통증에 익숙해져서 이대로 손목이 굳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손과 손목을 사용하지 못하면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통증을 견디는 것보다 어쩌면 양가적인 감정 속에서 마음의 균형을 잡는 것이 더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뒤틀리고 끊어질 것 같은 통증에도 괜찮을 수 있을 거라고. 어떤 날에는 통증이 조금만 완화된 것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을 거라고.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오랜 시간 마음의 고통을 견뎌온 나인데 몸의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너울대는 마음의 파도 한가운데 아픈 손목을 움켜쥐고 꿋꿋하게 서 있는 나를 계속 그려보았다.


통증이 완화되기를 바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져보지만 통증은 금세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자살 생존자인 나에게 무기력은 익숙한 감정이다. 나는 무기력이 삶의 의지를 단념시킬 만큼 강력한 감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장 피하고 벗어나고 싶지만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감정이라는 것도 잘 안다. 질긴 애도를 겪은 나는 그만큼 무거운 무기력의 시간을 보냈다. 무기력을 인지하면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고, 자신의 방식대로 빠져나오는 법을 찾게 된다. 사람마다 걸리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언젠가는 무기력에서 빠져나와 무기력에 빠졌던 나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는 날이 오게 되기도 한다. 무기력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다시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몸에 통증을 겪게 되면서 새로 알게 된 부분이 있다. 내가 그동안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정신 건강을 회복하는 일에만 모든 신경을 쏟았다는 것. 문득 정신 건강에 비해 상대적으로 몸 건강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지금까지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론상으로만 알았던 것 같다. 손목과 머리카락의 변화에 마음이 널뛰는 경험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주고받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는다.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무기력이 몸으로 번진다는 것을 깊게 체감하지 못했던 건 지금까지 잘 버텨준 튼튼한 내 몸 덕분이었던 것 같다. 내 몸의 건강을 맹신했는지도 모른다. 몸의 아픔을 경험하면서 몸의 실체를 마주한다. 몸의 미세한 변화에도 감각이 극도로 살아나면서 몸의 감각에 집중한다. 통증을 통해 비로소 지금을 살아가는 느낌이다. 멀리하고 싶은 통증과 벗어나고 싶은 무기력이 나에게 온 이상, 나는 그것들을 감싼다. 잘 되진 않겠지만 감싸려고 노력한다. 힘껏 껴안으며 그로부터 하나씩 배워나가 보려고 한다. 아픔과 통증이 계속되는 몸일지라도 나는 내가 나를 극진히 돌보게 될 것이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일지라도 다시 나만의 생존법을 찾을 거라고 믿어 본다. 믿음을 갖는 노력만으로 나는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나의 오늘 하루를, 지금 이 순간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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