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살. 조금씩. 천천히
일 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언제부터인가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훌쩍 지나가더니 어느새 십 년 단위가 금방 지나버렸다. 십 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지난 일 년동안의 경험으로 모든 일이 묻힌 듯하다. 즉각적인 몸의 변화는 예전 기억이 힘을 잃을 만큼 강력했던 걸까. 극심한 애도의 과정 이후 시간과 기억이 뒤섞이는 경험을 다시 하고 있다. 흐르는 시간에 나 혼자만 멈춰진 것 같다가 시간에 끌려 억지로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는 주로 특별했던 이벤트나 활동, 여행 일정으로 한 해를 기억하곤 했다. 하지만 암 환우가 된 이후부터는 한해를 병원 일정과 치료 단계별로 기간을 나눠 생각하게 되었다. 치료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서부터는 몸의 변화로 시기를 구분 짓게 되었고.
1년 동안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 2025년을 민머리로 시작해 지금은 단발머리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1년은 처음 보는 내 모습 앞에서 나의 마음을 더듬거린 시간이었다. 외형만큼이나 내면도 많이 변했을까. 나는 민머리의 갓난아기 혹은 스님이었다가 까까머리의 남자아이나 군인이 되었고, 점차 머리카락이 자라면서 곱슬기가 심해지더니 점점 아줌마 혹은 할머니의 모습이 되어 간다. 1년 사이에 70년 이상이 흐른 듯하다. 외형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오가며 나는 내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묘한 생명체같이 느껴진다. 베토벤이나 <나 홀로 집에>의 악당 마브와 비슷한 행색을 한 나는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받은 것 같다. 길이를 보면 머리카락은 대략 한 달에 1cm씩 자란다. 갑자기 한 번에 10cm씩 자라는 경우는 없고 그저 알아서 자랄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모낭세포의 회복과 머리카락의 성장은 나에게 기다림의 자세를 가르쳐 준다. 머리카락을 잃고 다시 생겨나는 머리카락의 소중함을 알고 나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대중교통이나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머리카락을 생성하고 있는 그들의 몸이 너무 대견하고 귀엽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내 머리카락의 소중함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작년 겨울부터 꾸준히 어깨 재활 운동을 했기 때문일까. 올해 봄에는 두 팔의 움직임이 정상에 가까워질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일 감사했고 즐거웠다. 그것도 잠시, 늦봄부터 손목 통증과 손가락 강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잡고 쥐고 드는 모든 행위가 어려워졌다. 내 손목과 손가락이 건조한 나뭇가지처럼 파스스하고 부스러질 것 같았다. 이런 손목과 손가락 상태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무섭고 막막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겁이 몰려왔다. 올해 여름은 몸의 아픔으로 마음이 한없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시간으로 기억된다. 계절이 바뀌고 몸도 통증에 적응하는지 통증은 때로 강했다가 때로 약해지기도 했다. 무력하게 시간이 흘러 나는 통증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는 듯하다.
한 달에 한 번씩 복부에 주사를 맞고 있다. 처방받아온 주사를 집 근처 병원에서 맞는다. 이 병원의 담당 의사 선생님은 신현준처럼 부리부리한 외모와 달리 아주 얇고 상냥한 목소리를 가졌다. 이미지의 반전 때문일까. 만날 때마다 그가 나에게 건네는 안부가 더 친절하게 들린다. 주사를 놔주시는 간호사님과도 안면을 터서 매달 주사 맞는 날이 귀찮거나 무섭지 않다. 두꺼운 주삿바늘 때문에 1년 사이에 배에 주사자국 별자리가 그려졌다. 한자리에 자국이 남지 않게 이리저리 새로운 자리를 찾는 간호사 선생님의 손길이 유독 따뜻했다. 앞으로 4년간 더 많은 별자리가 내 배에 새겨질 것이다.
재활 목적으로 시작한 필라테스는 곧 100번째 수업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운동을 강도 높게 무조건 땀이 날 때까지 했다면 이제는 조금 하더라도 올바른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는 법을 익히려 한다. 어깨가 앞으로 굽어진 자세를 가졌던 나는 수술 후 당기는 가슴과 겨드랑이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더욱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잘못된 자세를 인지하고 그 자세에 익숙해진 몸을 조금씩 교정한다. 두 발을 단단히 디디고 어깨를 펴서 바르게 서는 것부터 연습한다.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손목과 손가락으로 이어지는 팔의 움직임을 느낀다. 손목과 손가락의 통증이 완화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어깨 자세를 제대로 고쳐 잡는다.
다시 시작한 수영은 물속에서의 호흡과 움직임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었다. 팔의 움직임이 불편할 때, 다시는 수영을 하지 못하게 되는 두려움이 컸다. 두려움의 시간을 지나 다시 물속에서 움직이는 일은 그래서 너무 소중하다. 여름 운동을 다시 시작해서 기쁘지만 나의 겨울 운동이었던 스노보드는 당분간 하지 못할 것 같다. 슬로프에서 넘어지면 내 손목 상태로 내 몸을 일으키긴 어려울 테니. 언젠가는 넘어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눈 위를 부드럽게 내려오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물속을 마음껏 유영하며 조용히 기다리면 된다.
건강한 식사와 운동 그리고 충분한 수면을 지속하는 삶에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신선한 식재료를 사고 요리해서 나를 먹이는 일, 수시로 몸을 움직이는 일, 암 재발을 방지하려면 되도록 저녁 11시 전에는 잠에 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잠이 오지 않는 날에도 나는 나를 11시 전에 재워야 한다. 건강한 삶을 강박적으로 쫓고 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 점검의 재점검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점검이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도록 계속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져서 정신적 평안함을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몸의 변화에 따라 마음이 너울대는 1년이었다. 몸과 마음의 연결을 절실히 느낀 시간이었다. 나의 신체적 자아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마주하면서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앞으로도 이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내 몸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움직임을 살살 찾아가는 중이다. 더욱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는 반대로 가고 있다. 예전에는 빠른 속도에 편승하려는 욕구가 있었지만 이제는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세상의 속도와 반대로 갈 수밖에 없어져 버렸다. 세상이 아닌 내 몸의 속도에 맞춘다. 어쩌면 이제야 원래 느린 내 속도대로, 내 속도에 맞춰 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는 마음의 고통을 잘 참고 견디는 사람이었다. 참고 견디는 것 자체가 내 삶이 되어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몸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무조건 참는 것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몸의 불편함과 통증을 바라보고 온전히 감각한다. 어렵지만 그것들을 보듬고 끌어안으려 한다. 나는 내 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천천히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