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도 성격이 있다

책을 많이 읽은 게 아니라, 계속 읽는 이유

by 빼어난 별

책은 늘 집에 있었지만, 내 삶의 우선순위에는 없었다.

눈앞에 있어도 손이 잘 가지 않았고, 내일, 조금 있다, 그렇게 미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방치가 되곤 했다. 삶에 치이고 육아에 치이고 집안일에 치이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 라는 말이 어느새 당연한 변명이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 바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사실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고 해서 당장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괜히 고상한 취미처럼 느껴지지도 했다. 느긋하고 부지런한 사람들만 하는 영역이라고 쉽게 선을 그어버렸다. 나는 그럴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밥벌이를 해야 하고 아이들 학원비를 벌어야 하고, 이 악물고 달려나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고 있었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바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그 선택을 정당화해 온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매번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고된 삶 속에서 몸은 점점 축나고 버거워지는데,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비어갔다. 열심히는 살고 있었지만 발전되는 느낌도, 변화되는 감각도 없이 시간만 흐르고 나이만 쌓여가는 것 같았다. 애써 버텨내고 있는데도 남는 게 없다는 느낌, 그 허망함이 계속 따라다녔다. 그게 싫어서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취미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DIY 명화 그리기에 잠시 빠져보기도 했고, 칼림바를 독학해보기도 했으며, 유치원에서 하는 부모모임에도 참석해봤다. 나에게 맞는 무언가, 아주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제목이 이끄는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빌려오는 김에 기간 연장을 염두에 두고 3주 동안 읽을 책을 욕심내서 4~5권쯤 빌려오게 되었다. 기왕 돈 안 드는 무언가를 찾는 중이었고, 도서관은 그때의 내 상황에 딱 맞는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책을 사두면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내 습관을 잘 알고 있었기에, 힘들게 빌려온 김에 '읽고 반납해야 한다'는 반강제적인 독서를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는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청소를 하다가도, 집안일을 하다가도, 외출 준비를 마치고 5분이 남으면 한 장이라도 더 읽으려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게 3주 동안 빌려온 4~5권을 모두 읽고 반납하게 되었고, 그 경험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시작점이 되었다. 이게 뭐라고, 그 작은 성취가 꽤 큰 성공을 이룬 것 같은 희열로 남았다.


'나도 해낼 수 있구나.'

'이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뭔가는 할 수 있구나.'


그제야 보였다. 그동안 나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너무 쉽게 포기해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얻은 깨달음 하나만으로도 독서는 이미 충분히 값진 경험이 되었다.


1년이 지나 돌아보니, 책 한 권을 대략 17000원쯤으로 잡아 계산해도 1년 동안 약 170만 원어치의 책을 읽은 셈이었다. 물론 출판 작가님들께는 달갑지 않은 독자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삶에서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행동하다 보니 자투리 시간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시간들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움과 목표가 생기며 루틴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다독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책의 권수에만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말 제대로 읽고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 무렵,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1권과 2권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은 '더 읽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왜 계속 읽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 순간부터 내 독서는 권수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독서 습관은 잡았지만, 다독이라는 방식에만 익숙해진 채, 책을 넘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독에 빠진 책벌레가 된 건 아닐지,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질문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한 권의 책을 집중해서 읽고, 다시 읽고, 필사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정독과 재독을 시도했다. 두 권의 책을 1년 가까이 붙잡고 문장을 옮겨 적으며, 그동안 무심히 지나쳐왔던 생각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다고 다독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다. 성에 차지 않는 시간에는 여전히 끌리는 대로 책을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읽다 보니 긍정 마인드와 금융 공부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갔지만, 솔직히 그때까지도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도 욕심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 읽었다. 도서관 반납 기한을 기준 삼아, 돈을 아끼며 공부하는 학생의 마음으로 말이다. 당장은 아무것도 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었고,눈에 보이는 변화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나 스스로도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분명 다독이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내용들, 그냥 스쳐 지나갔다고 여겼던 지식들이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 나 대화가 되네?'

'어? 나 이렇게 많이 알고 있었어?'


재테크 이야기가 나오면 한 주제에서 또 다른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어디선가 읽었던 내용들이 술술 떠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다독의 힘이 이런 거구나. 내가 다독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내 머릿속을 새로운 것들로 채우고 싶었고,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지혜롭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촉처럼 느껴질 만큼 타이밍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을 사야 할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렴풋하게 감이 잡히는 순간들이 생겼다. 다독을 하면서 책만 읽은 것도 아니었다. 집안일을 하며 오디오북을 듣고,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했고, 그 모든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사람마다 성격에 맞는 독서법은 다른 거라 생각한다. 한 권을 천천히 읽는 사람이 있고, 읽고 또 읽으며 매번 다른 감정을 느끼는 재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사유하는 독서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독서록을 통해 한 권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다양하게 많이 알고 싶은 욕심이 커서 다독이 잘 맞았던 사람이다. 그동안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후회도 전혀 없다.


책벌레가 되었을 지 언정, 한 권당 단 한 문장이라도 내 안에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값지다고 느낀다. 그 문장들이 쌓여 마음의 풍요가 되었고, 때로는 물질적인 선택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다독을 선택하고 있다.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많이 배우고 싶고, 그 과정 속에서 나만의 색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감각이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독과 재독이 독서를 더 깊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의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들을 최대한 많이 접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철학에 매번 젖어들기보다는, 다양한 생각을 흡수해 나만의 방향과 나만의 삶의 기준을 만들고 싶어서다. 공허함을 붙잡기 위해 시작한 독서는 어느새 지식이 되었고, 꿈이 되었고, 나를 전략가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은, 생각보다 많이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독서법이나 글쓰기에 관한 책들 가운데에는, 읽는 과정이 유독 편안했던 책들도 있었다.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와『부자들의 서재』가 그랬다. 두 책 모두 어렵지 않았고, 독서라는 주제를 부담없이 풀어내고 있었다는 점에서 먼저 손이 갔다.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는 소설 형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 독서법이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만들었고, 『부자들의 서재 』는 작가가 읽어온 책들을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덧붙여 풀어내는 방식이라 읽는 내내 현실감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들은 '공부한다'는 느낌보다는, 누군가의 독서 시간을 옆에서 함께 듣는 기분에 가까웠다.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독서가 어떤 식으로 삶에 스며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들이었고, 그 점이 유익했다. 그래서 이 책들은 내 독서 여정의 중간쯤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특별히 방향을 바꾸게 만들었다기보다는, 내가 왜 계속 읽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도와준 책들이었기에, 그 정도의 역할이면 충분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읽고 있다.

아직도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