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보다, 남은 삶을 대하여

by 빼어난 별

새해가 지나고 오랫동안 연재해 오던 브런치북을 마무리한 뒤,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할지에 대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글을 더 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내가 지금까지 써온 이야기들 이후에 어떤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더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 일지에 대해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 질문의 끝에서 내가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은 의외로 지난 몇 년간 이어져 온 독서의 시간이었다.


사실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글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브런치에서 여러 작가님들의 한 해 독서결산 글을 읽으며,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어떤 책이 기억에 남았는지를 정리해 놓은 기록들 앞에 자연스럽게 오래 머물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페르세우스 작가님안개별 작가님의 독서결산 글은 유독 인상 깊게 남았다.(클릭하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 글들을 읽으며 나는 어느새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한 해의 독서를 정리해 놓은 기록들 앞에서, 나 역시 독서로 시작해 여기까지 꽤 긴 시간을 달려왔다는 사실을 문득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따라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동안 읽어온 시간과 책들이 내 삶 안에서 어떤 흔적으로 남아 있는지,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 묻고 정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그렇게 책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독서 이후의 이야기를 써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때 처음 또렷해졌다.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23년이었다. 그때의 나는 독서를 목표로 삼지도 않았고, 하루에 몇 장을 읽겠다는 계획이나 한 달에 몇 권을 읽겠다는 기준을 세워두지도 않았다. 그저 그 시점의 나에게 손에 잡히는 책을 펼쳤고, 끌리는 제목과 마음이 가는 주제에 따라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경제서를 읽다가 소설로 옮겨가기도 했고, 어느 날은 자기 계발서를 읽다가 또 어느 날은 가족과 삶을 다룬 이야기 속에 오래 머물기도 했다. 그렇게 특별한 의도 없이 이어진 독서는 어느 순간부터 선택이나 결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흐름이 되었고, 더 이상 따로 떼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흘러온 시간이 어느덧 3년, 그 사이에 읽어 내려간 책은 약 430권 정도가 되었다. 물론 오랫동안 글을 써왔거나 평생 책을 가까이해 온 사람들에 비하면 이 숫자는 여전히 새발의 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때는 책을 거의 손에 들지 않던 나에게 이 3년은 분명 많은 책을 흡수해 온 시간이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시작은 아주 소박했다.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읽어보자는 마음이 전부였고, 그 마저도 스스로와의 약속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한 권이 두 권이 되었고, 읽을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기자 욕심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세운 목표는 1년에 100권이었다. 솔직히 쉽지 않았고, 읽어야 한다는 압박과 시간의 한계 사이에서 몇 번이고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목표를 채웠다. 그런데 목표를 달성하고 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100권을 해냈는데, 200권은 정말 못할까. 그건 도전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작은 실험에 가까웠다. 독서를 통해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이 리듬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 지를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세운 두 번째 목표가 1년에 200권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해에 읽은 책은 203권이었다. 숫자 자체보다도 인상 깊었던 건, 그 과정을 지나며 몸에 남은 감각들이었다. 책을 집어 드는 리듬이 생활 속에 완전히 스며들었고, 읽지 않는 날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독서에도 복리가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책 한 권이 다음 책을 부르고, 읽은 시간이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내는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숫자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굳이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읽고 싶은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해에 100권 이상을 읽게 되었고, 그것은 더 이상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북모리 - 책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감성 독서 노트 - Google Play 앱



그렇게 숫자에 대한 집착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읽어온 시간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기록은 남아 있었고, 그 기록을 다시 들여다볼수록 독서는 목표가 아니라 생활의 리듬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


최근에 나는 그동안 읽어온 책들을 다시 꺼내어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목과 저자를 훑어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책들을 다시 펼쳐 키워드를 나누고, 찾기 쉽도록 하나하나 세팅하며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책은 이런 책을 읽었었나 싶을 만큼 기억이 희미했고, 어떤 책은 어제 읽은 것처럼 장면과 문장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 사이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흐릿해졌을지라도, 그 책을 읽으며 만들어졌던 나의 관념과 선택, 삶의 방향 같은 것들은 생각보다 오래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몇몇 책들은 분명히 내 인생의 기준을 바꾸어 놓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다른 각도로 돌려놓았으며, 그 변화가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책을 정리하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지나온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은 기록 자체는 이미 3년 전부터 남기고 있었다. 다만 그 기록은 책의 제목과 저자를 체크해 두는 정도였고, 그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이 마음에 남았는지까지는 적어두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기억에 잘 남지 않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목록만으로는 내가 그 책을 왜 읽었는지, 무엇을 남겼는지 떠올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책을 읽고 나면 짧게라도 내 생각이나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을 함께 남기기 시작했다. 한 번 더 입력하고 정리하는 그 과정이, 이미 지나간 독서의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일처럼 느껴졌고, 읽어온 시간들을 내 안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해주는 방법이 되어주었다.


책을 많이 읽지 못한 달에는 괜히 마음이 쓰였고, 그 마음이 다시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기록이 독서를 압박하기보다는, 조용히 다시 불러들이는 역할을 했다고 느꼈다. 이 방식은 어느새 아이들과 남편에게도 이어졌다. 눈으로 확인되는 기록은 말보다 확실했고, 시간이 쌓일수록 그 힘은 점점 분명해졌다.


1년이 지나 쌓인 기록을 다시 바라볼 때마다 묘한 뿌듯함이 따라왔다. 잘 해냈다는 감정보다는, 그래도 나름의 속도로 잘 살아왔다는 생각에 가까웠다. 그 기록은 단순히 읽은 책의 숫자가 아니라,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흔적처럼 느껴졌고, 그 흔적 덕분에 지금의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순간들도 생겼다. 그래서 꼭 이 앱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 시간을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남길 수 있는 도구 하나쯤은 곁에 두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 매거진에서는 그동안 읽어온 책들 가운데, 실제로 내 삶에 반영해 보았던 책들, 배운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해 보았던 책들, 그리고 분명하게 도움이 되었다고 느꼈던 책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서평이나 독서록을 쓰려는 것은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책을 읽은 뒤 내 삶에 남은 흔적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는 기억에 가깝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체계적인 서평을 쓸 자신도 없기에 그저 내가 겪은 만큼만, 있는 그대로의 경험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갈 생각이다.


독서는 아마 앞으로도 특별한 목표 없이, 오래 이어질 것이다.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이 매거진을 시작하려 한다. 독서를 시작한 이후 재테크 공부와 경제 공부가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다가왔고, 지금은 돈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서 있기는 하지만, 이 시간이 전부 숫자와 결과로만 채워지고 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스스로 사유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점이고, 그 사유를 통해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는 감각이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것들이 삶으로 스며들고, 그 과정에서 내면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 자체가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알아갈수록 세상은 더 선명해지기보다 오히려 모르는 것 투성이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 낯섦 앞에서 멈추기보다는 더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독서는 나를 더 많이 아는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더 많이 묻고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쪽으로 나를 이끌어 왔다. 이 매거진은 돈과 삶을 굳이 나누지 않은 채, 배우고 사유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그 시간을 그대로 기록해 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