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았는데,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by 빼어난 별

삶이 무너지지 않아도 사람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나는 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가족을 위해 산다는 말은 언제나 옳았고, 그래서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조용해졌다. 말수가 줄어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안쪽으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 조용해진 시간의 끝에서, 처음으로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건 4년 전이다.


그때의 나는 마음이 복잡했고 무기력했고, 자존감은 바닥에 가까웠다. 삶은 무채색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잘 살아가고 있다는 말과 달리, 내 안에는 정작 내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모습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 누군가의 뒤에서, 누군가의 필요를 먼저 챙기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이제 와서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법을 잊어버린 듯한 모습으로 서성이는 이들. 가족을 위해 산 시간이 너무 길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을 놓쳐버린 사람들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 자신을 밀어 넣는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채, 자꾸만 더 깊은 곳으로 숨으려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덜 아플 것 같아서, 삶 앞에서 한 발짝씩 물러나는 선택을 반복하는 얼굴들. 포기라기보다는, 너무 오래 버틴 끝에 잠시 몸을 숨긴 것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들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걸. 나는 무너지지 않았을 뿐,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는 걸. 나는 가족을 사랑했지만, 나를 방치하는 방식으로 사랑했다. 가족을 위해 산다는 말 뒤에 숨어, 나 자신을 부르지 않은 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걸.


경력 단절 이후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일들은 늘 비슷했다. 집안일과 육아, 그리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재택일을 동시에 붙잡으며 살아왔다. 집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고, 이것도 놓지 않고 저것도 놓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거의 15년.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내 삶을 살았다기보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준 시간에 가까웠다. 하루는 늘 무사히 지나가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 무렵, 내가 책에서 가장 먼저 찾기 시작한 건 지식이 아니었다. 이미 읽은 습관은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더 많은 아는 사람임 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붙잡고 싶었던 건,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하루를 버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 삶을 내가 붙잡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손이 간 건 마인드와 행동에 관한 책들이었다.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보다, 어떻게 다시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마음을 다잡는 법, 생각을 정리하는 법, 오늘을 살아내는 태도를 연습하는 법 같은 것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보다, 그 안에 적힌 문장들을 내 하루에 어떻게 옮겨볼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해졌다.


처음부터 거창한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책을 읽고 나면, 그날의 나를 조금 다르게 다뤄보게 됐다. 생각을 적어보고, 감사한 일을 떠올려보고, 마음을 붙잡는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보는 식으로. 아주 사소한 행동들이었지만, 그 작은 반복 속에서 내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바꾸기 전에, 이미 내 안에서는 방향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삶이 바뀌는 건 언제나 마음부터가 아니라, 행동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할 때라는 걸. 그 변화는 아주 작았고 조용했지만, 그전과는 분명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를 채찍질하는 내가 등장했다. 책을 읽을수록 나는 더 작아졌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 전혀 다른 멘털을 가진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저마다 본인들의 성공담이나 경험담, 평범한 사람들이 감히 따라 하기 힘든 일들을 해낸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 마인드와 자기 계발서에는 늘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았다. 성공담은 때로 나를 자극하기보다, 오히려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하와이 대저택의 유튜브를 보게 됐다. 거부감이 없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몇 마디가 남았다.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더 마인드>를 펼쳤다. 그 안에는 이미 여러 번 들어본 말들이 반복되어 있었다. 책을 읽어라, 긍정적으로 살아라, 걱정하지 말고 행동하라. 다 아는 말들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흘려보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가 걸렸다.

나는 알고만 있었을 뿐, 그 흔한 행동은 전혀 해보지도 않았다는 것.

그 깨달음은 둔탁한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남았다.


그날 이후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다이어리를 쓰고, 감사일기를 쓰고, 긍정 확언을 하고, 필사를 했다. 대단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가까웠다. 지금의 삶을 여기까지 몰고 온 첫 계기였다.


처음엔 정말 어색했다. 확언을 하면서도 내 마음은 전혀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능력자다" 같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도, 속으로는 계속 웃음이 나왔다. 혼잣말이 들릴까 봐 문을 닫고, 거울 앞에 서서 말했는데, 정작 그 말을 제일 못 믿고 있는 건 내 표정이었다.

'뭐래는 거야.'

스스로 생각해도 좀 웃겼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지는 않았지만, 생각이 안 따라와도 말부터 계속했다. 행복하지 않아도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했고, 확신이 없어도 "나는 능력자다"라고 되뇌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설득했다기보다 나를 가스라이팅하듯 같은 말들을 계속 쌓아 올린 셈이었다. 그렇게 내 머릿속 생각의 뇌세팅부터 바꾸려고 애써 나갔다.


어느 순간부터였다.

내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한 기운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정확히 뭐라고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여전히 같은 집, 같은 육아, 같은 일상이었는데, 생각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좋은 일들이 겹치듯 생겨났고, 감사할 일이 늘어났다. 생각지 못했던 돈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변화는 설명보다 체감으로 먼저 다가왔다.


마인드와 자기 계발서의 성공담들을 읽으며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이렇게도 생각했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했구나.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장면들을 책을 통해 들여다보며, 나는 오히려 나를 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잘 되는 법을 배우기보다. 나를 다루는 법을 조금씩 익혀가는 쪽에 가까웠다. 나를 더 사랑하는 방법을, 아주 늦게 다시 연습하기 시작한 셈이었다.


하루하루 일에 치이고 삶에 치여, 생각할 시간조차 사치라고 느꼈던 날들을 다시 돌아보고 되었다. 목적과 목표라는 말이 갑자기 거창하게 들리지 않기 시작했고, 자신감도 마음속 다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다. 예전과 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데도, 나를 대하는 태도만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무채색이던 삶에 옅은 색이 스며들고, 그 색이 조금씩 짙어지는 과정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책을 읽었을 뿐인데, 정말 그뿐이었는데 말이다. 목표가 생기고, 삶의 방향이 생기고, 꿈이라는 말이 다시 입에 붙기 시작했다. 행동력이라는 것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그렇게 따라왔다.


물론 늘 같은 상태는 아니다. 한동안은 눈 뜨는 순간부터 오늘도 잘 살아보는 싶다는 기운으로 하루를 시작하다가도, 아무 일도 없는데 마음이 가라앉는 날들이 찾아온다. 계절 때문인지, 몸의 리듬 때문인지, 감정은 해마다, 분기마다 오르락내리락한다. 요즘 들어서는 아직도 내 마인드가 완전히 단단해지지는 않았다는 걸 자주 느낀다.

그래서 다시 책으로 돌아온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방황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그걸 별것 아닌 일처럼 넘기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긍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싶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금융 공부 책을 내려놓고, 다시 마음에 관한 책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어느 순간, 조금은 숨을 고른 나를 발견하곤 한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다시 돌아왔다는 이유로.




그렇게 읽어온 책들이 쌓였다. 숫자를 세어보니 72권이었다. 많다고 하기엔 애매하고, 적다고 하기엔 분명한 시간들. 그 책들은 나를 단번에 바꾸지는 않았지만, 분명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더 마인드>는 철학적으로 깊다기보다,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진 책이었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것들을 내가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책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나를, 그냥 따라 하게 만들어준 계기였다. <부자의 언어>는 처음엔 솔직히 지루했다. 그런데 끝까지 읽고 나니, 마음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감각이 남았다. 그래서 이 두 권을 모두 필사를 하고, 다시 읽고, 문장마다 내 생각을 붙이며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그 외의 책들 역시 내게 어떤 '비법'을 준 건 아니었다. 다만 같은 일상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주었다. 손바닥을 뒤집듯 삶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더 이상 예전처럼 나를 방치하지 않게 되었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자만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버티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나를 알아가며 근거 있는 자신감을 키우는 행동을 쌓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돈이 돈을 벌게 되는 삶을 살고 있다. 완성된 모습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나를 모른 척하며 살지는 않게 되었다.


그렇게 읽어온 책들 가운데, 유독 오래 남아 있는 책들이 있다.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행동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실제로 영향을 준 책들이다. 부자의 언어, 더 마인드, 운을 부르는 습관, 운을 읽는 변호사, 세상 끝의 카페와 다시 세상 끝의 카페, 부자의 그릇,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더 해빙, 조셉 머피의 잠재의식의 힘, 노잉 같은 책들이다. 지금도 문장 몇 개는 설명 없이 떠오를 만큼, 내 안에 각인되어 있다.


이 목록은 추천을 위한 기록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시기와 태도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에 가깝다. 그 책들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든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나를 방치하지는 않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