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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May 10. 2024

마지막화. 비로소 나는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0으로 수렴한다는 것은




오래 지내면서 느끼는 건데, 한국은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고 하지만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서 절반만 성공하길 바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 나가서 적당히 적응하되, 거기에 정착해서 살 만큼 너무 성공하면 안된다.


영어도 한국에서 우와 할 정도만 잘 해야하고, 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불편함을 최대한 느낀 다음에 한국으로 돌아와야한다. 그러나 막상 한국으로 돌아가면 "쟤는 외국에 나간다고 난리쳤다가 적응도 못하고 돌아왔더라, 영어를 못하나보더라" 하는 수근거림을 듣기 마련.


그렇다고 여기서 잘 적응하고, 영어도 수월하게 하면 한국을 배신하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든다. 사람들은 '미국사람' 이라고 선을 긋는다. 언젠가는 브런치에서 시간을 내어 제안하기 버튼으로 악플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 "글은 잘 쓰는 것 같은데 미국인이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라, 샌프란시스코 신문에나 기고해라" 라는, 다시 생각해 보면 칭찬이었는가? 싶었는 악플.


이 글을 읽으시며 공감 보다는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다. '너는 박쥐야'라고 하신다면 정말 할 말은 없다. 한국 외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먹고사는 이 모두가 박쥐라면, 북한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사람의 삶이란 이분법적이질 못하다. 나는 내가 현재 살고 있고 남편이 태어나고 자란 이 곳에서 영어를 잘 하고 싶다. 영어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커리어도 쌓아가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나고 자랐으며, 내 원가족이 모두 살고있고 육회와 육개장, 산채비빔밥이 맛있는 한국의 언어를 잊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2개국어로 나누어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0개 국어로 수렴하여 없어지는 기분이 오랫동안 들었다. 수렴하여 모든 것이 없어지는 느낌에 허덕였고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인가.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개인을 만났다. 4개 국어를 하는 사람, 3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 다른 국적의 사람과 결혼한 커플, 그들의 아이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본국의 배신자야"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럼 "이미 다양한 언어를 할 줄 아는 큰 어드벤티지가 있잖아! 좋겠다" 하고 긍정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각각 2개국어를 하는 커플의 아이는 3-4개국어와 문화에 노출되어 자랄 것이다. 남들은 돈을 들여 유학을 가고 여행을 가는데, 집에서 사는 것 만으로도 그런 노출이라니!


나는 왜 나에게만 배신자의 잣대를 내미는가.  


0은 독특하다. 정수도, 실수도, 유리수도, 양수도 아닌 수. 나눌 수 없는 수. 0이라 함은 없는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양을 초월한 의미로도 여겨져 왔다.




비로소 나는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과 경험에서 배워온 것들을 소중하게 다루고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다른 언어를 더 배울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나'를 구성하는 소중한 가치로, 계속 무한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




끝.


그 동안 '0개국어로의 수렴'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도, 혹시 외국에서 살면서 비슷한 느낌이 드셨다면 본인이게 조금 더 너그러우셨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 추천작가 '외국어' 키워드에 떴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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