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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Apr 19. 2024

미국에서 왜 한국 컨텐츠만 보냐

"그럼 그렇지 미국에서 적응 못해서"

아무리 K-컨텐츠가 유명해 졌다고 해도, 미국에서 접하는 한국의 것들은 한국의 '현재'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LA는 좀 다를 수도 있다) 보통 오랫동안 터를 잡고 비지니스를 운영해 오신 분들은 몇 십년 전에 정착한 느낌이 강하다 보니 더 그런 게 아닌 가 싶다.


식당을 보면 그게 잘 보인다. 보통 그 자리에 오래 있었던 '한국음식' 이라고 하는 식당들은 '순두부/혹은 두부'집, '불판에 구워먹는 고기', '백반스러운 집' 중 하나의 카테고리에 속한다. 물론 이 식당에 가면 한국에서는 흔히 없는, 온갖 것을 다 먹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순두부 집인데 감자탕도 있고, 냉면도 있고, 떡볶이도 있고, 치킨도 있고, 짜장면도 있다. 한식이 그리운 한국 사람들이 다양한 음식을 찾아왔었어서 그런 거겠지만, 보통은 그런 곳에서 주력 메뉴 한 두 개를 빼고는 맛이 없어서 시켜먹고는 후회한다. 한국 홈플러스 푸드코트에서 사먹는 냉면이 반 값이고 훨씬 더 맛있다.


미국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 것들의 90%는 다음의 세 가지중 하나로 볼 수 있다.


1. 한국에서 유행하고 한 텀 이상 지난 것

2. 한국에서 잘 팔리고 남은 것 같은 느낌이 진하게 드는 것들

3. 한국 가수 팬덤만을 향한 제품들


그리고 이게 막 한 국 최신 것, 그리고 한국 게 아닌데 한국을 따라하는 것 까지 한 데 마구 뒤섞여 있다. 예를 들어, 이전 글에서 썼던 재팬타운에는 여러가지 한국 관련 가게들도 많이 있다. 1층에는 2000년대 느낌이 나는 고기뷔페와 인생네컷 부스, 아인슈페너/달고나커피를 파는 지나베이커리가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90년대 느낌이 나는 여러가지 일본 상점들 안에서 한국 제품을 섞어서 같이 파는데, 누가봐도 외국인이 붙여넣기한 한국어 굴림체로 '바나나 우유'라고 써 있는 딸기우유모양 쿠션이라든가, 이름 모를 아이돌 전신 등신대, 케이팝 관광객들에게 팔 법한 아이돌 장신구/화장품, 몇 년 전 유행했던 베스트셀러 화장품, '메이드인 코리아'라고 써 있는데 글씨체가 이상하고 한 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브랜드의 화장품, 그리고 뭔가 허술한 이니스프리 매장이 있다.


정신이 없다.





한국에서의 실제 문화가 어떤 지 그 곳에서 자랐고 이해하는 나는, 여기서 마주치는 한국의 것들이 반갑기는 하지만 아쉬운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 넘어간 '브라이덜 샤워'가 한국에서는 5성급 호텔 + 루이비똥 가방 인스타그램 포스팅이 되어버렸듯이, 태평양 건너 멀리 한국에서 넘어온 것들은 무언가 미묘한 포인트로 조금 덜 한국스럽다. 한국에서 먹는 진짜 돼지갈비 맛을 아는 나는, 여기서 먹는 돼지갈비가 어딘가 조금 아쉽다.


언어도 변한다. 분명히 알아듣는데 다르다. 유투브 등에서 나오는 '한국어'로 된 미국 광고들이 그렇다. 영어로 된 스크립트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분명히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사람이 읽는데, 외국인한테 소매 짧은 한복을 입혀놓은 듯한 느낌이 난다. 영어 억양과 톤으로 "새로 나온 Luxurious Premium 모델을 확인해보세요"- 하는데, "Meet our new luxiurious premium model" 이라는 진부한 영어 문장을 그냥 고대로 번역해 놓은 꼴이다. 이것은 분명히 한국어인데, 내가 알던 한국어는 아니다.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은 이동하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간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언어와 문화를 기억하고 있으면 다행이지, 많은 이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이를 잊어버린다. 오래 전 이민 1세대의 부모들은 어린 자식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했으면 하는 마음에 한국어 쓰는 것을 그만 두거나, 혹은 자식에게 가르치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남편의 친척 중 한인 2세와 결혼하신 분이 계시다. 그 분의 부모님은 한국어를 하시지만, 본인은 약간의 단어들을 제외하면 한국어를 잊어버리셨다. 그 분의 1/2 한국계 자녀는 그냥 한국어/문화에 친근한 느낌만 있을 뿐 그 이상은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사람들인데, 그냥 세월이 지나면서 미국의 메인스트림속에서 한국의 언어와 문화가 자연스럽게 흐려져갔을 뿐이다. 노출이 적고 사용하지 않으니까.




미국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그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같이 사는 사람도 한국인이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한국어, 문화에 대한 노출이 없다보니 이러다가는 정말로 한국어를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펜이나 연필로 한글을 쓸 때는 이유 없이 애틋하고 예뻤지만, 어색했다. 아차, 이러다가는 내가 자식을 낳으면 그 애도 한국어를 못 할 수 있겠구나. 우리 애랑 우리 엄마가 서로 대화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래서 브런치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글로 써내려가야했다. 현실 구어체를 잊지 않기위해 유투브로 한국 예능도 보고 한국유투버도 보고 안 보더라도 틀어놓는다. 공식적인 문서 형식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네이버 뉴스를 살펴본다. 다양한 형식과 스타일의 글을 접하기 위해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는다. 오래 된 한국 노래라도 한국어로 노래를 부른다. 잊어버리지 않아야한다. 나를 위해,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미래에 있을 내 아이를 위해.



새로운 언어가 꼭 기존의 언어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체할 필요는 없다. 내가 영어를 못 해서 여기 프로그램을 못 보기 때문에 한국 유투브를 보는 게 아니다. 글 제목을 보고 "그럼 그렇지 미국에까지 가서 한국 티비프로그램이나 보고 앉아있고 적응을 못해가지고" 라고 생각하신 분이 계셨다면, 사실 그게 바로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 흔히 겪는 안타까운 시선이다.







- 안녕하세요, 해외로 가는 여행으로 인해 다음 화는 휴재입니다. 이 연재는 곧 마지막화가 나올 듯 해요.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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