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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May 03. 2024

미국인 남편은 그럼 한국어 해?

이건 다른 의미로다가 0개국어로의 수렴

티브이에 나오는 외국인들은 참 한국어를 잘 한다. 어휘도 얼마나 좋은지. 한국어 특성상 한자어들은 소리는 비슷하더라도 뜻은 다른 경우가 많아서 어려운지라 한국인들도 어려워하는데.


어디선가 돌아다니는 짤을 본 적이 있는데, 파브리?나 전현무 같은 사람들이 말 하는 걸, 방송 피디가 잘 모르는 단어라 자막에다가 비슷하게 들리는 다른 단어를 써 놓았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상황을 나도 얼마전에 나 혼자 산다를 보다가 발견했는데, 어느 장면에서 출연자가 뭘 막 심혈을 쏟아 섞어내자, 전현무가 "쟤는 이제 조제(여러 가지 약품을 적절히 조합하여 약을 지음. 또는 그런 일)를 하네" 라고 했는데, 자막에는 "제조(원료에 인공을 가하여 정교한 제품을 만듦)"로 나왔더랬다. 분명히 약을 만드는 것 같은 상황에 빗대어 이야기싶었던 것 같았는데 말이다.


무튼, 한국어는 미국인 입장에서 참 배우기 어려운 언어다. 최근 나는 스위스 여행을 하면서 조금 배워야겠다 싶어서 한 달 간 듀오링고로 독일어를 설레설레 공부(?)해 봤다. 물론 단어에 왜 여성/남성/중성이 있고 그걸 다 외워야되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그것 외에는 사실 영어를 안다는 점 만으로도 시작점이 훨씬 저 앞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알파벳이 비슷하거니와, 단어들이 스펠링은 달라도 소리는 비슷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들어 스위스에서 기차를 탔을때 전광판에 'Nachste Halt' 만을 보고 남편은 그게 '다음 역'이라는 점을 알아챘다. 'Nachste(내슈타)'는 다음이라는 뜻의 'Next(넥스트)'과 거의 비슷하게 들리고  'Halt'는 영어로도 멈춘다는 뜻이니, Next stop(다음 역)이나 마찬가지인 셈.



이런 유럽언어의 가계도는 다음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Illustration created by Minna Sundberg, author of the webcomic Stand Still. Stay Silent.

나무에서 보면 영어는 불어보다는 독일어와 더 가깝다. 스페인어와 포르투칼어는 갈라져 나온 가지가 아주 이웃해 있어서, 실제로도 스페인어를 할 줄 알면 포르투칼어는 따로 배우지 않아도 대강 이해할 수 있다고 할 만큼 비슷하다. 유럽 사람들이 3개국어는 우습게 하는게 이런 이유다.



한국사람들이야 자라면서 영어에 대한 노출빈도가 높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친밀감이 높지만, 정말 한국어에 1도 노출이 없었던 남편에게 이는 정말 어려운 언어였다. 한국인과 연애하는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에(혹은 그외 동 아시아에) 관심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내남편은 정말 전.혀. 관심이 없는 순 토종 하얀사람이었으므로 연애 초반에 나는 남편에게 본인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 그 어떤 한국의 것도 거의 권하지 않았다. 얘는 나랑 연애를 하는 거지 한국이랑 연애를 하는 게 아니니까.


연애를 한 지 한참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중국어를 배워봐야겠다고 흘려가며 얘기했다. 나는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다. 내색은 하지 않고 이유를 물었다. 그냥, 쓸모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처음으로 한국에 관련해서 따졌다.

"너는 한국인이랑 만나면서, 내가 온 나라나 언어에 대해서 더 배워봐야겠다는 말은 단 한 번도 안 해봤으면서, 갑자기 중국어가 웬 말이냐?!"


물론 머리로는 이해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중국문화권 밖 가장 크다는 차이나타운이 있다. 직업 등을 구할 때에도 만다린(중국어)이나 캔토니즈(광동어?)를 우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지금은 알게 되었지만 홍콩계 사람들이 회사에 꽤 있기도 했다.


그래도 섭섭했다. 나랑 그냥 밥이나 먹자고 만나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꽤나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때였다. 내가 푸시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관심이 생기겠지 했어서 배려했는데, 냅다 다른 동아시아 언어를 배운다니 실망스러웠다. 물론 이 작은 언쟁으로 구남친이 바로 한국어를 배운다거나 하진 않았다. 중국어를 배우지도 않았다. 그는 정말로 '그냥' 한 말이었다.


그가 정식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건 약혼을 하고나서 즈음이었을까, 샌프란시스코에 한국정부에서 운영한다는 한국센터를 발견하고 거기서 코로나 시작할때 쯤 까지 수업을 들었다.


다행히, 공돌이 남편은 한글을 엄청 마음에 들어했다. 한글은 그야말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글자를 만들어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낸 엄청난 발명품. 과학과 인문학의 집약체 그 이상의 것. 쉽게 배워서 쓰고 읽기 쉬운 데다가 몇 백년 밖에 안 된 비교적 어린 글자이기 때문에 규칙성이 일정한 편이다. ㄱ은 ㄱ로만 발음되고, 그래봐야 ㅋ랑 혼동하는 정도이지, 갑자기 ㅊ가 되거나 ㄴ가 되지 않는다. 전 화에서 다룬 적이 있듯이, 영어에서 C가 ㅋ(carrot)였다가 ㅊ(cello) 였다가 ㅅ(celery)가 되는 혼란의 도가니가 아니다!





그러나 한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한국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초반의 한글뽕은 남편이 한국어를 배우도록 도움을 준 것은 맞으나 금방 어려움에 직면했다. 소리로 ㅂ/ㅍ, ㅈ/ㅊ, ㅡ/ㅜ같은게 헷갈리는 건 나도 이해를 하겠는데, ㅏ, ㅓ, ㅗ를 굉장히 헷갈려했고, 아직도 그러하다. 한국인 입장에서 이건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한국어 단어를 확실히 많이 알게 되었고, 들으면 10-20%정도 대강 감으로 때려맞추는 정도이지,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남편은 애초에 언어에 소질이 잘 없는 사람이다. 애초에 기본 언어를 잘 해야 외국어도 잘 하는데, 남편은 컴퓨터랑 잘 놀고 수학도 좋아하지만 언어는 젬병이. 영어로 출발했으면 다른 유럽 언어가 더 쉬웠을 텐데,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배웠고 캘리포니아에서 노출이 많게 자랐는데다가 시아빠가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하는 와중에도 본인은 꿋꿋하고 우직하게 스페인어를 못한다(웃음). 그냥 왜 한국인이 학교에서 제2 외국어 배워서 자란 정도로만 한다.


못하는 건 못 하는건데, 웃긴건 발음과 억양이다. 스페인어 발음이 나보다 더 구리다. 스페인어 tres(3)는 "뜨레스"인데 자꾸 "투뤠스" 이런다. 총체적 난국으로다가, 본인만의 이상한 '외국어 억양'이 있는데, 이 외국어 억양은 영어가 아닌 모든 언어에 적용된다. 영어 억양도, 스페인어 억양도 아닌 굉장이 이상한 음률과 박자가 생겨나는데, 이게 한국어에도 적용이 된다. 차라리 언어를 못하면 한 글자씩 천천히 말하면 될텐데, 본인 욕심인지 영어를 빠르게 말하는 습관인지 우르르 쏟아낸다. 문제는 문장 전체를 그렇게 빠르게 말할 숙련도가 못 되다 보니, 한 단어는 빠르게 했다가 다시 느려졌다가 하는데 거기에 음 높낮이까지 더해졌다고 보면 된다.

"고양이는 음식을 먹어요"로 예를들면,

"고야니(빠름)↗️는➡️(늘어짐) 움쉬글(빠름)➡️(늘어짐) 머거요↗️" 이런 식. 나는 이런 억양이 너무 이상해서 참을 수가 없다 ㅋㅋㅋㅋ 손발이 오그라든단 말이다!


여기다가 가끔은 '외국어'모드에서 혼동한 나머지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섞어서 말하기도 한다. 멕시코 갔을 때 그랬다. 그러고는 본인이 낄낄대면서 얘기한다. 나 방금 스페인어로 대답해야되는데 한국어랑 섞어서 말했다고. 내 머리에서는 '외국어'로 뭉뚱그려 혼동하는 모양이다고.





가끔은 내가 집에서 한국어를 안쓰는 탓인가 싶기도 하다가도, 모르겠다. 배우자에게 운전은 배우는 거 아니라고 하는 것 처럼 애들은 가르쳐도 남편은 못 가르치겠다. 남편에게 반말을 해야 하는지 존댓말을 해야하는 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남편에게 한국말을 쏟아내는 경우는 내가 뭔가 답답할 경우라 반말로 너무 따지는, 존중하지 않는 것 같이 들리는데, 그렇다고 동갑인 남편한테 존댓말을 쓰기도 이상하다.


결국엔 내가 더 한국말을 많이 하는게 맞는 거 같긴 한데 남편한테 한국말이 안 나온다. 못 알아들으니까 ㅠㅠ 내가 미국에서 사니까 영어를 하는 것 처럼, 남편도 한국에 살면 한국어를 더 잘 하게 될까?






이 글은 브런치 메인 에디터 최신 픽과 다음 여행맛집 탭의 ‘외국생활’키워드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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