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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29. 2024

사파 가는 길

아침 7시, 사파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나 보다.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꽉 찼다. 나는 호텔 직원이 추천하는 대로 가운데 자리를 예약했다. 의자를 제칠 수 있어 제일 편한 좌석이란다. 물론 제일 비싸기도 했다. 그런데 이미 누가 앉았네? 배웅 나온 여직원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운전기사와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승객들은 기다리는데 버스는 출발하지 못했다. 졸지에 갑질 비슷한 것을 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이건 갑질이 아닌데요? 정당한 제 자리를 찾으려는 건데요? 결론이 쉽게 나질 않았고 나는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에고, 내 돈 내고 산 자리에 왜 앉지를 못 하니?


10분쯤 지났을까. 가운데 앉았던 젊은 아가씨가 일어나더니 뒤로 갔다. 그제야 사람들은 안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9인승 리무진 버스는 두 시간을 달렸다. 그러고 나서 휴게소에 정차. 나는 화장실에 갔다가 코코넛 과자를 하나 샀다. 기사는 아침밥을 사 먹는 것 같았다.


승객들은 버스 주변을 서성였다. 머리에 히잡을 두른 아줌마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한국사람이냐고. 거기서부터 말문이 트였다. 그들은 엄마, 아빠, 아들, 딸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다. 아까 내 자리를 차지한 아가씨가 딸이었다. 왜 그랬니? 하하. 한국에도 가봤다며 서울, 명동, 남산타워, 남이섬 등을 읊었다. 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했다.  


저쪽에 있던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남녀가 한국사람이냐며 반색을 했다. 두 사람은 말레이시아 부부란다. 신기하게도 두 가족이 같은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어떻게 말이 통하냐고 물었다. 인도네시아 말과 말레이시아 말은 거의 비슷해서 대화가 된다는 것이었다. 오호. 편리하겠군.


휴게소를 기점으로 아침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완전히 날아갔다. 우리는 서로 간식을 나눠 먹었다. 같은 아시안이라서일까, 금방 친해졌다. 버스는 휴게소에 한 번 더 들러 6시간 후 사파에 도착. 세상에, 온통 안개바다였다. 분위기 끝내준다. 버스는 나를 먼저 내려주고 다음 호텔로 떠났다.



호텔은 3만 원이란 방값이 미안할 정도로 근사했다. 킹사이즈 침대에 넓은 창, 소파와 책상까지 완벽했다. 나는 책상이 특히 맘에 들었다. 하노이에서 날마다 돌아다니느라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다. 실시간 포스팅을 해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나질 않았다. 사파에선 느긋하게 밀린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안개가 어찌나 짙은지 2미터 앞이 간신히 보였다. 나는 호텔 직원에게 가깝고 맛있는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바로 앞의 식당을 가리켰다. 일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 가장 가까운 건 확실했다. 식당에 가서 메뉴를 펼치곤 깜짝 놀랐다. 제일 저렴한 게 16만 동(8천 원). 물가가 장난 아니다.


딱 봐도 이 집 딸내미로 예상되는 아가씨가 달달한 잎차를 내왔다. 그녀는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알았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질문이 쏟아졌다. 혼자 왔냐, 어디서 왔냐,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 베트남이 왜 좋냐... 유창하진 않아도 한국말이 하고 싶어 죽겠는 얼굴이었다. 이게 소도시 감성이지. 에헴.


그런데 춥다. 앉아있으니 점점 더 추워진다. 식당 안엔 덜렁 화로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다. 그녀는 화로를 최대한 내 옆으로 끌어당겨 주었다. 아가씨, 그걸로는 난방이 안 됩니다. 무릎만 살짝 따뜻할 정도였다. 손발이 시린데요?


안개가 점점 짙어졌다. 기온은 영상 2도. 하노이에 비하면 엄청 추운 날씨였다. 내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보였다. 영하도 아닌데? 더구나 이 안개, 괜찮을까? 왜 갈수록 심해지지?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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