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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30. 2024

안개바다 속에서 괜찮을까?

사파 둘째 날이 밝았다. 나는 시내구경을 나갔다. 여전히 안개가 가득했다. 이런 날씨에 트래킹이 가능할까? 사파의 백미는 소수민족 마을로 트래킹 가는 건데. 어째 날씨가 심상치가 않았다.


코코넛 카레가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갔다. 주인 아들인 듯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주문을 받았다. 놀랍고 어색했다. 어린아이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작 아이는 아주 능숙한 솜씨였지만.  



여기도 난방시설은 없었다. 화로가 전부였다. 자리마다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다른 손님이 화로를 차지하면 누군가는 추위를 견뎌야 했다. 앉아있는 손님은 다섯 명인데 모두 한국인. 한국인 맛집이 맞는구먼. 음식이 나왔다. 코코넛 안을 파고 뜨거운 카레를 넣어 다시 겉을 구웠다.


다 먹을 때까지 음식이 식지 않았다. 겉을 구운 이유가 그것이었군. 끝까지 뜨겁게 먹을 수 있었다. 따끈해서 국을 먹는 느낌이랄까. 추운 날씨에 딱 맞는 메뉴였다. 뜨거운 거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에 완전 합격이다.


점심을 먹고 길을 건너는데 힘이 쭉 빠졌다. 밥을 먹었으면 기운이 나야지 왜 반대야? 하노이에서 나답지 않게 무리를 했나 보다. 에너지가 방전된 느낌이었다. 입안이 얼얼하고 걸음이 무거웠다. 거리는 안개 더하기 안개. 생전 이렇게 심한 안개는 처음 보았다.


우산 쓰긴 애매하고 그냥 다니자니 슬그머니 옷이 젖는다. 슈퍼에서 1만 동(500원) 짜리 우비를 사서 입었다. 나는 완벽한 비수기에 온 것 같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안개바다에, 가는 곳마다 손님이 없었다. 구글맵을 보고 후기 많고 인기 좋은 카페에 들어갔다. 어허, 나밖에 없다. 전세 내서 좋긴 한데 너무 허전했다.



사파가 예상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어제만 해도 안개에 젖은 동네가 낭만적으로 보였다. 오늘 거리를 구석구석 둘러보니 마사지샵이 두 집 건너 하나. 대형 식당이 즐비했다. 전형적인 관광지의 모습이었다. 하노이보다 조명이 더 휘황찬란하다. 단 손님은 없지만.


작은 산골마을인 줄 알았다. 실제론 믿기 힘들 만큼 관광 도시였다. 트래킹을 안 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듯하다. 포장도로가 이렇게 젖었는데 흙길 트래킹을 할 수 있을까? 신발이 엄망진창이 될 게 뻔하다.



나는 사파 시내 가운데 있는 호수를 돌았다. 안개가 심해서 호수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뿌옇기만 했다. 공포 영화에서처럼 저 안갯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안개에 젖은 풍경 사진만 엄청나게 찍었다. 사진은 분위기 있지만 현실은 암담했다.




사파에서 머무는 기간은 6일. 날씨가 아무리 나빠도 설마 하루 정도는 해가 나겠지? 수익금을 몽족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착한 여행사를 찾아갔다. 혼자 앉아있던 여직원이 핸드폰으로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태도가 어찌나 심드렁한지 손님에게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날씨때문에 트래킹이 되겠냐고 걱정을 했다. 두 코스는 가능하단다. 과연 그럴까? 내 신발로 걷는 건 괜찮겠냐고 물었다. 힐긋 쳐다보더니 괜찮단다. 하나도 믿음이 안 갔다. 그녀는 코스에 대한 설명도 권유도 하지 않았다.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좋은 일 하는 데라고 해서 일부러 왔건만. 어서 빨리 나가줬으면 하는 태도였다.  


겨울 빗속에서 트래킹은 아닌 듯. 그냥 먹고 자고 쉬어야겠다. 이 계절에 6박은 무모했구나. 적어도 늦가을엔 왔어야 했다. 나는 스스로를 탓하며 돌아왔다.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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