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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31. 2024

가도 후회 안 가도 후회하는 깟깟마을

안개가 걷히길 기대하는 건 소용없었다. 나는 오백 원짜리 우비를 뒤집어쓰고 깟깟마을로 향했다. 사파 타운에서 가장 가까운 몽족 마을이다. 포장도로를 걸어서 20분. 가는 길에 아름다운 다랑논이 펼쳐진다던데 뿌연 안개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젠 안개가 웬수 같았다.



입구에서부터 소수민족의상을 빌려주는 가게가 줄을 섰다. 입장권을 사야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입장권이 의미하는 건 여기가 인위적인 관광마을이란 뜻이다. 보통 의상을 빌려 입고 안에서 사진 찍는 재미로 오는 곳이다. 사진 찍으라고 장식해 놓은 자리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원래 꽃과 푸른 잎이 가득했을 테지. 아래로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저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제법 멋있는 장면이 되었겠다.  




시작부터 계단이다. 안개비로 미끌거리는 내리막 계단을 끝없이 내려갔다. 좁은 골목 양쪽엔 온통 기념품 가게들이 차지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해도 너무했다. 관광마을이 아니라 쇼핑마을이라 불러야 옳았다.


몽족이 사는 마을이 있긴 한 걸까. 관광이라도 하게 해 다오. 더 내려갈 필요가 있을지 망설였다. 돌아갈 땐 이 계단을 다시 올라가야 하나? 다른 길이 있으려나? 앞에 폭포 가는 길이란 표지판이 서있다. 아까보다 사람들이 많아졌다. 뭔가 있긴 한가 보다.



작은 강 위에 나무다리가 놓였고 커다란 물레방아가 보였다. 강물은 말라 절반은 바닥이 드러났다. 다리를 건너 폭포 잎에 섰다. 굵은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쏟아져 내렸다. 오 멋있다! 깟깟마을에서 볼 건 이 폭포 하나군. 폭포 아래로 계곡물이 소용돌이쳐 흘렀다.         


물레방아는 장식용임을 자랑하듯 지나치게 컸다. 물레방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마을 사람들을 발견했다. 아니 찍히는 중이었다. 성인 남녀와 아이들 두 명. 은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붉은색 전통옷을 입었다. 하얀 비둘기 떼에 둘러싸여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를 남자가 열심히 그들을 찍고 있었다. 아마 돈을 내고 사진을 찍는 것이겠지.


다리 건너에 깟깟 빌리지라고 쓰여있지만 거기도 몽족이 사는 집은 없었다. 강 주변엔 3층, 4층으로 제법 큰 식당들이 자리했다. 나는 따뜻한 차나 한 잔 마시고 돌아가기로 했다. 다리 앞 카페에 가서 레몬생강차를 주문했다. 이 동네의 유일한 난방도구인 화로 옆에 앉았다. 다른 집은 숯을 태우던데 여긴 나무조각을 넣었다. 으 연기가 내쪽으로 흘러온다.



11시 반. 사진에 찍혀주는 오전 근무가 끝났나 보다. 아이들과 여자가 화롯불 곁으로 왔다. 짙은 화장에 머리

엔 무겁고 화려한 장식을 썼다. 두툼한 패당을 껴입고 화로 앞에서 손을 비볐다. 아이는 재잘재잘 떠들었다. 아이 역시 화장을 했다.


원래 깟깟마을에 살던 몽족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마을을 가득 채운 기념품 가게와 식당에서 먹고 자고 생활을 하는 걸까. 근처에 진짜 그들의 집이 따로 집이 있나. 혼자서 나는 궁금증만 늘어났다.


돌아갈 길이 걱정이었다. 근처 식당 직원을 붙들고 물어보았다. 사파로 가려면 계단을 다시 올라가야 하냐고. 그는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앞으로 계속 가면 쎄옴(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있단다. 휴 다행이다. 직진 방향은 고갯길이었다. 계곡 맨 아래까지 내려왔으니 어쨌든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길엔 왜 나밖에 없지? 앞은 안 보이고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고. 고개 꼭대기에서 서너 명의 청년들과 만났다. 잘 왔구나. 오토바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직진할 밖에. 드디어 출구가 나타났다. 아까 입장권을 샀던 마을 입구와 다른 곳이었다.        


진흙 공터에 오토바이들이 서있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오토바이를 타라고 성화였다. 아무나 골라잡고 사파 타운을 외쳤다. 기사가 부른 차비에서 조금만 깎았다. 그는 땡잡았다는 표정으로 오케이 했다. 나 지금 바가지 썼구나.


그저 춥고 배고팠다. 얼른 따뜻한 밥을 먹고 내 방에서 쉬고 싶었다. 오토바이는 가랑비가 오는 길을 달렸다. 어머 너무 가까운걸. 길을 알았다면 슬슬 걸어와도 되었을 거리였다. 모든 게 너, 안개 탓이다.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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